▲2021년 DB그룹 제35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 경쟁을 벌인 박민지, 박현경 프로. 사진제공=KLPGA


[골프한국] ‘KLPGA투어가 LPGA투어보다 재미있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골프 팬들이 많겠지만 20일 막을 내린 DB그룹 제35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를 보면 틀린 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 톱클래스 여자골퍼들이 모인 LPGA투어가 기량의 수준이나 대회 규모, 대결의 다양성 등에서 KLPGA투어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제35회 한국여자오픈에서의 박민지(23)와 박현경(21)의 대결은 근래 지구촌에서 벌어진 경기 중 같은 날 끝난 JLPGA투어에서의 신지애(33)의 역전 우승과 함께 보기 드문 명승부로 손꼽을 만했다. 

17~20일 충북 음성 레인보우힐스CC 남·동코스(파72·6,763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오픈은 최종 라운드에서 박민지와 박현경이 챔피언조로 묶이면서 불꽃 튀는 대결이 예견됐었다. 

올 시즌 벌써 4승을 거둔 박민지와 지난 4월 메이저인 KLPGA 챔피언십을 2연패한 박현경의 만남은 ‘용호상박(龍虎相搏)’ ‘용쟁호투(龍爭虎鬪)’가 될 수밖에 없었다.

둘 사이는 각별하다. 최혜진과 함께 아마추어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17년 멕시코에서 열린 제27회 세계 아마추어 골프선수권대회에 참가해 우승한 주역으로 서로 절친이다. 동시에 직전 대회인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스에서 박민지가 우승할 때 박현경은 준우승에 머물러 경쟁관계이기도 하다.

▲2021년 DB그룹 제35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박민지 프로가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제공=KLPGA

올 시즌 8개 대회에 참가해 4승을 거둔 박민지는 그야말로 못 말리는 ‘폭주 기관차’다. “폭포 쏟아지듯 최대한 많은 우승을 하고 싶다”는 박민지는 메이저 우승이 없는 게 아쉬운 터여서 한국여자오픈에 유독 집착했다. 마찬가지로 직전 대회에서 박민지에게 막혀 우승을 놓쳤던 박현경으로선 빚을 갚을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1타 차 선두와 2위로 만난 두 선수는 마치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고수 검객처럼 한 치의 양보 없이 공방을 주고 받았다.

공동 선두 9차례, 역전을 3번이나 주고받은 경기는 17번 홀까지 균형이 깨어지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은 마지막 파4 18번 홀에서 깨졌다. 드라이브샷을 러프로 보낸 박현경은 어쩔 수 없이 2온을 포기하고 레이업을 선택했고 박민지는 144m를 남기고 과감하게 핀을 노렸다. 클럽을 떠난 공은 홀 1m 가까이 떨어졌다. 

중계팀들은 과감한 샷에 감탄했지만 박민지는 나중에 실수였다고 털어놨다. 안전하게 그린의 중앙을 노렸으나 실수로 살짝 클럽이 닫히면서 드로우가 걸렸다는 것이다. 핀을 바로 보고 같은 샷을 했다면 공은 해저드에 빠졌을 것이라며 좋은 결과를 운으로 돌렸다.

박현경이 파 퍼트를 놓친 뒤 ‘행운의 미스샷’으로 버디 퍼트를 성공한 박민지는 타수를 2타 차로 벌리며 2주 연속 우승으로 시즌 5승, 통산 9승을 쌓았다. 메이저 우승이란 훈장도 달았다.

상반기 중 5승을 올린 것은 KLPGA투어에서 박민지가 처음이다. 2007년 신지애가 세운 한 시즌 최다승(9승) 기록 경신까지 욕심낼 만한 상황이다.


▲2021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니치레이 레이디스 골프대회 우승을 차지한 신지애 프로. 사진제공=KLPGA

우연처럼 시즌 최다승 기록 보유자 신지애는 같은 날 일본 지바현 소데가우라CC(파72)에서 열린 JLPGA투어 니치레이 레이디스 토너먼트 마지막 라운드에서 선두에 4타 뒤진 공동 9위로 출발했으나 하루에 6타를 줄여 선두 전미정(39)과 동타를 이룬 뒤 4차 연장에서 버디를 잡아 우승을 차지했다. 

신지애는 지난해 11월 토토 재팬 클래식에서 프로 통산 59승째를 올린 지 약 7개월 만에 우승, 한국 여자 프로골퍼 최초로 60승 고지를 밟았다. 2005년 고교생 신분으로 KLPGA투어 SK엔크린 인비테이셔널 우승을 포함하면 프로 대회 우승 61승째다.

2006년 KLPGA투어로 데뷔한 그는 국내 투어에서만 20승, 2009년부터 해외 투어로 무대를 옮긴 이후 LPGA투어 11승과 JLPGA투어 25승, 유럽여자골프(LET)투어 2승, 아시아와 대만여자프로골프투어에서 각 1승씩을 거둬 통산 6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골프의 묘미는 수성(守城)과 공성(攻城)이 활발할 때 나타난다. 일방적인 승리는 재미없다. 승리를 고루 나눠 갖는 것도 재미가 덜하다.

타이거 우즈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그로 인해 PGA투어는 물론 세계 골프산업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우즈 스스로 수성과 공성의 원인을 제공하고 그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이다.

골프 팬들은 압도적인 선수의 등장에 환호하지만 계속 군림할 땐 식상해 한다. 도전장을 내미는 선수가 나타나 저항세력과 수성세력이 공방을 펼칠 때, 부딪히는 칼날에 불꽃이 튀길 때 구경꾼은 환호하고 손에 땀을 쥔다. 

박민지와 박현경은 시나리오처럼 이를 재현했다. 여기에 파이팅 넘치는 장하나, 비장의 무기를 갈고 있는 이정민이나 최혜진 등 잠재력 넘친 선수들이 풍부하니 공방전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박민지와 박현경은 KLPGA투어의 명작품을 공동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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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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