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참으로 묘한 속성이 있다. 상식을 뒤집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골프 스코어와 의욕은 반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다른 일은 대개
의욕과 성과가 비례하 는데 골프는 욕심이 들어가는 만큼 구질이 망가지게
된다. 흔 히 마음을 비우고 치라고 하는데 이게 또 마음대로 안된다.

내 마음이 나를 조종하는 것이지 내가 내 마음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골프 불가사의는 또 있다. 노래방에서는 노래를 잘 하는 사 람이 인기가 있다.
그런데 골프는 잘하면 기피 대상이 된다. 아마 대부분 내기 골프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래방에서야 남이 부르는 노래를 느긋하게 즐기기만 하면 되지만
필드에서는 아무리 땀 흘리며 애를 써도 고수에게 계속 돈을 잃게 되면 기분이
좋을리없다. 얼마전 재무부 장관을 지낸 이용만 선배와 라운드를 했다. 이날따라
롱 퍼팅이 쏙쏙 들어가서 버디를 세 개나 잡았다.

스코어도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어서 77타를 기록했고 내기 돈도 땄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볼을 안 집어넣으려고 톡톡 치니까 퍼팅이 쏙쏙 들어가고 드라이브
샷을 벙커를 향해 때리니까 그 냥 넘어가 버리는데 어떻게 합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다음부터는 아이언을 한 번호 높거 나 낮은 클럽으로 잡고 정상
스윙 하세요. 그러면 매 홀 길거나 짧거나 할 테니까 자연스럽게 조정이 되잖아요.
예전에는 다 그렇게 했어요!”

이 말에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여름 휴가차 용평에 다녀왔다. 버치힐에서
라운드를 하는데 첫 홀부터 버디가 나오더니 전반에만 버디 세 개가 나왔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샷이 좋았다. 당연히 내기에서도 일방적 일 수밖에 없었다.
한 타에 1만원씩이었다. 그런데 평소 점잖기로 유명한 U 회장이 티샷 할 순간에
캐디에게 휴대폰을 가 져다 달라고 했다. 볼 먼저 치고 전화하라고 했더니
이런 답변이 나왔다.

“지금 경찰에 전화하는 거예요. 사기 도박 골프 얘기만 들었 는데 오늘 확인했으니까
신고는 해야지요.” 그래서 합의해 핸 디캡 조정을 다시 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내 볼이 잘 맞을 때 마다 캐디에게 휴대폰을 가져다 달라는 통에 모두
배꼽을 잡았 다. 그야말로‘경찰 부를래? 핸디캡 조정해 줄래?’였다.

다음날은 늘 점잖고 품위를 잃지 않는 신사인 H 회장이 동 반자였다. 이날도
볼이 잘 맞아서 78타를 쳤다. 18홀이 끝나 자 이 분이 평소와 다른 표정으로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 했다. “그동안 즐거웠고 감사했습니다. 이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겁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이 말을 전했다. “그러니까 볼을
살살 치든지, 딴 돈을 빨리 돌려드려야지 그 렇게 눈치가 없어요?” “당신 말이
맞아. 그런데 경찰 부른단 말보다 그동안 즐거웠 다는 말이 더 무섭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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