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 골프 인비테이셔널에 합류한 그렉 노먼(상단). 팻 페레즈, 더스틴 존슨 등(하단).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에 합류한 그렉 노먼(상단). 팻 페레즈, 더스틴 존슨 등(하단).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한밤에 도로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차를 몰고 마주 돌진하며 누가 겁쟁이인가를 가리는 게임이다. 충돌 직전 먼저 방향을 트는 사람이 지고 겁쟁이로 낙인찍힌다. 누구도 겁쟁이가 되지 않으려면 부딪혀 자멸하는 길밖에 없다.

서양에선 닭이 겁이 많은 동물로 여겨져 겁쟁이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자동차 마주 달리기 게임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1950~1960년 미국과 소련의 극단적인 군비경쟁에 차용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과도한 경쟁을 뜻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PGA투어와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의 대결이 치킨게임을 보는 듯하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전주(錢主)인 LIV 골프가 거액의 상금을 미끼로 PGA투어의 대형선수들을 끌어들여 대회 개최를 강행하자 PGA투어는 LIV 골프 참여선수에 대한 제명조치와 함께 상금을 올리고 문호를 개방하는 방안 등을 내놓고 있다.

 

라틴어 L(숫자 50)과 IV(숫자 4)를 결합한 LIV는 아라비아 숫자 54를 뜻한다. 파72 18홀을 모두 버디로 마무리하면 낼 수 있는 스코어가 54다. 토너먼트도 3일간 54홀 플레이로 끝낸다.

LIV 골프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공공 투자 펀드(public investment fund), 소위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골프 리그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 새로운 골프 리그를 만든 표면적 이유는 펀드 운용을 통한 수익사업이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골프 리그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의도로 읽는다.

 

911테러에 참여한 19명의 테러리스트 중 15명이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인 데다 워싱턴 포스트의 저널리스트 지말 카쇼기 살해 배후로 사우디 왕세자로 지목되는 등 사우디아라비아는 서방국가에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LIV 골프에 가담한 필 미켈슨에 대한 미국 골프 팬들의 반감이 극에 달한 것도 이런 시선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PGA투어 선수들에게

LIV 골프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상금이 두둑하다. 우승상금이 PGA투어보다 두 배가 넘고 컷오프도 없다. 올해 치르는 8개 대회 중 7개 대회의 상금은 매회 2,500만 달러, 이 중 2,000만 달러는 개인전 상금으로 1위는 400만 달러, 꼴찌인 48위도 12만 달러를 받는다. 500만 불은 4명 1개조 12개 팀 중 1위 팀 300만 달러, 2위 팀 150만 달러, 3위 팀에 50만 달러가 돌아간다. 

마지막 8번째는 대회는 특별 이벤트로 총상금이 무려 8,000만 달러다. 동시에 7개 대회 종합 성적 1~3위에게 각각 1,800만 달러, 800만 달러, 400만 달러 등 3,000만 달러의 보너스가 지급되고 5,000만 달러는 단체전 1위 팀에 1,600만 달러, 12위 팀에게도 100만 달러씩 지급된다.

 

이밖에도 모든 대회가 끝난 뒤 개인전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린 선수에게는 1800만 달러(약 225억원)의 보너스가 주어진다. 시즌 대미를 장식할 팀 경기에도 5000만 달러(약 626억원)의 상금이 걸려있다. 개인전과 팀 경기를 모두 합쳐 리그 전체의 총상금은 2억5500만 달러(약 3100억원)나 된다. 

대회 참가 교통비(비행기 티켓)에 호텔 숙박비, 캐디와 지원인력을 포함하는 4명분의 비용도 주최 측이 대준다. 

 

3일간 54홀을 돌고 대회 수가 적은 것도 선수들에겐 큰 매력이다. 거의 매주 4일간 72홀을 돌아야 하는 PGA투어 선수들로선 외면할 수 없는 유혹이다. 참가선수가 48명으로 제한돼 컷오프도 없다. 대회 수도 올해 8개, 내년 14개로 계획돼있어 PGA투어의 절반 수준이다.

오죽했으면 팻 페레즈가 LIV 골프에 참여하며 “로또를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을까.

 

LIV 골프의 총대는 ‘백상어’ 그렉 노먼(67·호주)이 맸다. 호주 PGA투어에서 활동하다 1980년대 초 PGA투어에 합류한 노먼은 디 오픈 2회 우승을 포함해 PGA투어 20승에 각종 대회에서 91승을 올린 역전의 노장이다. 

1986~2004년 사이 331주 동안 세계랭킹 1위를 지켰고 한 해 평균 최저타 선수에게 수여하는 바이런 넬슨 상을 5번이나 받고 3번 상금왕에 올랐다. 2001년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그는 코스 설계, 골프의류 사업, 부동산 개발, 와인 및 외식사업으로 부를 쌓아 호주의 100대 부자 안에 들어있다.

 

2022년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포트랜드에서 우승한 브랜든 그레이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2022년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포트랜드에서 우승한 브랜든 그레이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대회 진행이 어려울 것이란 PGA투어 측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LIV 골프는 1, 2차 대회를 치렀다.

지난달 9일부터 영국 런던 인근 센투리온GC에서 열린 1차 대회에선 남아공의 살 스워첼이 우승했고 6월30일~7월2일 미국 오리건주 포트랜드에서 열린 2차 대회에서 역시 남아공의 브랜든 그레이스가 우승, 개인 상금 400만 달러와 단체 준우승 상금 37만5천 달러의 거금을 챙겼다.

골프팬들이 외면할 것이란 예상이 없지 않았지만 미디어들은 LIV 골프 관련 뉴스를 쏟아냈고 중계방송도 이뤄졌다. PGA투어에 익숙했던 골프 팬들에겐 LIV 골프 중계방송이 다소 생소했겠지만 PGA투어에서 뛰던 유명선수들이 LIV에서 어떻게 경기하나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필 미켈슨, 더스틴 존슨, 케빈 나, 리 웨스트우드, 마르틴 카이머, 이언 풀터, 세르히오 가르시아 등이 LIV로 자리를 옮겼다. 
필 미켈슨이 LIV 골프로 이적하는 조건으로 2억 달러를 받았다는 소문이 도는 등 PGA투어나 유러피언투어에서 뛰든 선수들 대부분이 거액의 보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유명선수들의 LIV 합류가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타이거 우즈는 LIV로부터 10억 달러 제안을 거절했고 프레드 커플스는 PGA투어를 버린 필 미켈슨과는 말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에 합류한 팻 페레즈, 테일러 구치, 그렉 노먼, 더스틴 존슨, 패트릭 리드.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에 합류한 팻 페레즈, 테일러 구치, 그렉 노먼, 더스틴 존슨, 패트릭 리드.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유명선수들의 대거 이탈에 PGA투어와 DP투어(유러피언투어)는 공동전선을 펼치고 있으나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PGA투어는 유러피언투어 프로덕션의 지분을 15%에서 40%로 늘리고 5년간 DP 월드투어의 상금 인상을 보장한다고 발표했다. 내년부터 DP 월드투어의 시즌 상위 10명에게 PGA투어 출전권을 주겠다고도 했다. 

PGA 2부 투어인 콘페리투어의 시즌 상위 25명에게 주던 PGA투어 진출 티켓도 내년부터 30명으로 확대하고 폐지했던 퀄리파잉스쿨도 부활해 상위 5명에게 투어 카드를 주기로 했다. 유망주들이 LIV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LIV 골프 참여 선수에 대한 징계에서도 온도 차가 있다. PGA투어는 LIV 골프대회 개막과 동시에 참가한 PGA투어 선수를 징계했다. 그러나 DP 월드투어는 10만 파운드(약 1억 5700만원)의 제재금과 오는 7일 개막하는 스코티시 오픈 출전금지를 알리는 서한을 보냈는데 선수들이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LIV 골프의 출범으로 PGA투어와 DP 월드투어가 휘청대는 모양새다. 선수들이 과연 돈의 유혹을 뿌리치고 의리를 지킬 수 있을지, 라이더컵 등 미국과 유럽 대항전 같은 대회가 유지될 수 있을지 치킨게임을 지켜보는 골프팬들이 더 불안하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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