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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섭의 포시즌 골프] 티 타임 간격 6분을 경험해보셨습니까?
김윤섭 프로 ·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 KPGA 준회원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고객님! 뛰세요!"
필자가 수도권 근교 골프장에서 근무하던 2000년대 초반까지 코스에서 심심찮게 들렸던 소리다. 당시 경기진행이 지연된 팀은 구두경고 후 시정이 안되면 가차없이 퇴장당했던 시기다. 지금 골프장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불과 10여 년 전에는 비일비재했다.
(지금 생각하면 고객들에게 죄송하지만) 한번은 진행이 늦어 퇴장 조치된 팀에 유명 일간지 기자가 포함돼 있었다. 당연히 며칠 후 해당 골프장에 대해 좋지 않은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이용객이 감소한 게 아니라 오히려 골퍼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 그 골프장에선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한 효과가 있었다. 당시엔 골프장 수보다 이용객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일 것이다. 다른 기업이나 타 서비스 업계에선 고객만족, 고객감동을 외칠 때 골프장은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혹시 티 타임 간격 6분을 경험해보셨습니까?"

요즘 골프장에서 타임 테이블을 짤 때 보통은 7분 간격이고, 명문 골프장은 8분 또는 9분, 드물게는 10분 간격도 있다. 6분 간격이라면 4인 플레이에서 단 한 명도 실수 없이 티샷하고, 세컨샷까지 완벽히 이루어져야 다음 팀이 제시간에 맞출 수 있다. 하지만 '골프는 골프다'. 프로도 어려운 첫 티샷을 주말골퍼가 한 번에 성공시키는 건 쉽지 않다. 좌청룡, 우백호~ 볼은 골퍼의 마음을 배신한다. 그 순간 애가 타들어가는 건 진행요원과 캐디다.
1부 9홀 기준일 때, 6분 간격으로 23팀을 받아놓았기 때문에 OUT코스 첫 팀이 출발해 2시간 후 IN코스에 도착해도 3팀을 기다리게 돼 있다. 6분 간격으로 한치의 착오도 없이 진행됐을 때 얘기다. 만약 딜레이가 심해져 제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IN코스에 들어가기 위해 4~5팀을 기다려야 한다. 골퍼들은 흐름이 끊기는 더딘 진행속도에 짜증날 수 밖에 없고, 진행요원은 당연히 "멀리건 NO! 고객님 RUN!"을 외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필자가 진행요원이었을 때 골퍼들이 각자 클럽을 들고 볼이 있는 곳으로 뛰는 모습을 보면 뒤에서 터지는 폭탄을 피하기 위해 뛰어가는 병사들 같았다. 그럴 때는 '이렇게라도 팀을 받아야 많은 사람들이 그나마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지금도 필자는 비기너분들을 모시고 필드에 나가면 본분을 망각하고 라운드의 상당부분을 진행속도에 신경을 쓰는 트라우마가 있다.

골프장경영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월 기준, 우리나라에 운영중인 골프장은 회원제(227개)와 비회원제(210개)를 합쳐 437개다. 건설중인 골프장과 미착공이거나 추진 중인 골프장을 더하면 대략 550여 곳이다. 머지않아 600개가 될 수 있다. 1990년대 말 150여 개에 지나지 않던 골프장 수가 4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최근엔 골프인구가 골프장의 증가 추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연간 총 내장객수는 1990년대 1천만 명에 비해 2012년 2천5백만 정도가 골프장을 이용한다. 당연히 홀당 이용객수는 줄어 말로만 듣던 ‘대통령 골프’를 경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래서인지 최근 수도권 골프장을 제외하면 주중에 경기진행을 타이트하게 하는 골프장은 많지 않다.

캐디의 입장에서도 가장 큰 스트레스는 진행이다. 내장객이 많은 골프장은 캐디가 필수이고 진행의 상당부분을 담당한다. 경력이 많은 캐디라도 진행 압박 앞에서는 감정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요즘은 서비스의 질이나 고객만족으로 캐디를 평가하지만 예전엔 진행 간격 유지로 평가했다. 물론 배토나 대기 등 평가 부분은 다양하지만, 그만큼 진행이 중요한 항목이었다. 경기진행이 골프장의 매출과 연관이 크기 때문이다.

골프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일까? 자연 그리고 여유. 아무리 경치가 좋고 시설이 좋아도 여유가 없으면 즐거운 라운드가 아니다. 물론 라운드 진행속도는 골퍼로서 당연히 신경 써야 할 의무다. 같은 시설을 나 혼자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팀이 멀찌감치 나갔는데도 빈스윙 세 번씩, 경치 구경, NO OK, 멀리건을 남발할 수는 없는 것이다. 
OUT, IN 동시 티 오프 시스템에서의 라운딩 시간은 밀리지 않는 것을 가정할 때 상대적으로 진행속도가 느린 여름철엔 5시간 20분 정도 걸리고, 그 외에는 4시간 40분이면 충분히 여유로운 진행이 가능하다. 앞팀과의 간격이 12분 이상이면 벌당번을 주던 시절에 홀별 플레이 시간을 계산해보면 숏트 홀 10분, 미들 홀 12분, 롱 홀 15분에, 이동시간 빼고 그늘집 들리는 시간을 빼면 9홀에 1시간 50분씩 나온다. 9홀에 2시간 20분을 할애하면 플레이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

진행 속도에 지나치게 신경 쓴다고 신중하게 스윙할 기회를 잃는다면 라운드가 끝나고 후회하게 된다. 최근 골프장에서의 경험이나 사진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골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이나 IT기기의 발전도 원인이 있겠지만 골퍼들의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것이다. 골프는 자연과 밀접한 운동이다. 자연에서 맑은 공기, 따사로운 햇빛, 좋은 경치를 즐기고 동반자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이 모두가 골프의 일부분이다. 진행시간에만 쫓겨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라운드의 또 다른 즐거움을 놓쳐버리게 될 것이다. 골프한국(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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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날짜 : 2013-12-16 17: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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