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가 PGA 투어 2018-2019시즌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2차전 BMW 챔피언십 골프대회 4라운드 18번홀 그린에서 경기를 마친 뒤 갤러리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이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1950년대 미국 프로골프의 슈퍼스타였던 켄 벤추리(Ken Venturi, 1931~2013)는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어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그의 명성도 시들고 그의 이름조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져 가고 있었다. 

이대로 잊혀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1964년 US오픈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했다. 최근 성적이 시원찮아 초청자 명단에서도 빠져 어쩔 수 없이 지역 선발대회를 거쳐 출전권을 따야 했다.

그는 왕년의 슈퍼스타라는 생각을 잊고 지역 선발대회에 참가했다. 몸 상태가 엉망이었던 벤추리는 “하느님, 저를 이 지경에서 데려가지 마십시오. 제가 다시 우승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제가 아직도 열심히 배우고 연습한 대로 골프를 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만 허락해주십시오!”하고 기도했다.

그가 지역 선발대회 마지막 라운드를 위해 클럽하우스를 나서는데 한 남자가 자기 아들에게 “저 사람이 켄 벤추리란다. 왕년의 슈퍼스타지.” 하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벤추리는 그 남자가 자기를 ‘왕년의 슈퍼스타’라고 소개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했다.

파3의 꽤 긴 16번 홀에 서니 본능적으로 안전하게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부자의 대화 내용이 생각났다. 자신이 여기서 주저하며 물러서면 여생을 계속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3번 아이언을 꺼내 깃발을 겨냥해 샷을 날렸다. 원 온으로 버디 퍼트는 놓쳤으나 3위를 차지, US오픈 출전권을 얻을 수 있었다.

US오픈은 워싱턴DC의 콩그래셔널CC에서 열렸다. 마지막 3일째 날엔 하루에 36홀을 도는데 무더위와 습한 공기로 벤추리는 심한 탈수증과 열사병으로 시달렸다. 14번 홀에서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고 17번 홀 그린에서는 2피트짜리 퍼트를 놓고 홀이 세 개로 보여 버디를 놓쳤다.

전반 18홀을 끝냈을 때 US오픈 의무관은 그에게 18홀을 더 도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며 경고했다.

그러자 그는 “이미 나는 죽어가는 몸입니다. 특별히 찾아가 죽을 곳도 없습니다. 제발 이곳에서 죽도록 놔두세요”라고 말하고 후반 18홀을 돌기 위해 일어섰다.
클럽 멤버인 한 의사가 얼음주머니와 비상약과 소금 등을 챙겨 따라나섰고 USGA회장 조셉 C. 디이도 벤추리를 보살폈다.

10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섰을 때 리더보드 맨 꼭대기에 벤추리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USGA회장이 그를 격려하기 위해 “스코어가 궁금하지 않은가?”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벤추리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스코어를 유지할 수 없어요. 그저 있는 힘을 다해 한 샷 한 샷 할 뿐입니다.”라고 말하고 리더보드를 외면했다.

17번 홀 티 샷을 한 후 벤추리는 여전히 1등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거의 혼수상태에 빠졌다. 
“회장님, 저에게 지연 플레이로 벌점 두 타를 주십시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습니다. 천천히 걸어갈게요.” 

회장이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이봐 여기서부터 18번 홀 그린까지는 내리막길이야. 얼굴을 들고 힘 있게 걸어 보라구. 그래야 갤러리들이 챔피언의 얼굴을 볼 게 아닌가?”
18홀에서 우승 퍼트를 마친 벤추리는 그린에 쓰러져 울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하느님 제가 US오픈에서 우승했습니다!”라고 외쳤다.

그가 사투를 벌이며 생애 첫 메이저 우승컵을 끌어안은 장면은 60년대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벤추리는 그해 2승을 추가하며 ‘올해의 선수상’을 획득,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후 2승을 추가해 통산 14승을 기록하고 1967년 은퇴, 2013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1965년부터 마지막 36라운드를 하루에 돌던 것을 하루 더 늘려 나흘간 72홀로 치르도록 일정이 변경된 것도 열사병으로 쓰러진 켄 벤투리 덕분이다.
은퇴 이후에도 방송 진행자로 필드를 지키다 2013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켄 벤투리보다 19년 앞서 태어난 벤 호건(Ben Hogan, 1912~1997)은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고도 불굴의 재활을 통해 위대한 선수로 부활한 대표적인 예다.

텍사스 시골에서 태어나 1931년 프로로 전향해 1946, 1948년 PGA챔피언십을 우승하며 당대 최고의 골퍼로 인기가 치솟던 호건은 1949년 승용차를 타고 가다 버스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충돌 순간 조수석에 탔던 부인을 보호하려 운전대를 돌리는 바람에 부상이 더 컸다. 다리 정맥의 혈액 응고로 다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골프가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는 눈물겨운 재활을 거쳐 이듬해인 1950년 US오픈에서 출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고 현기증과 싸우며 기적 같은 우승을 차지했다. 

이미 1948년 US오픈에서 우승한 그는 1950년에 이어 1951년, 1953년 등 US오픈만 네 번이나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1953년 디 오픈과 US오픈, 마스터스에서도 우승했다.

18홀 평균 최저타 선수에게 수여하는 바든 트로피를 3번이나 받았고 다섯 차례나 상금왕에 올랐다. 메이저 9승을 포함해 PGA투어 통산 63승을 올렸다.

교통사고 후 재활에 집중하면서 대회 참가를 줄여 매년 4~5개 대회에만 참가한 것도 재기 성공의 비결로 꼽힌다. 

왼손잡이였으나 왼손잡이 골프채를 구할 수 없어 오른손잡이 클럽으로 연습한 그는 수많은 연습을 통해 자신만의 스윙을 개발, ‘모던 골프’라는 명저를 남겼다.
벤 호건의 감동적 재기 스토리는 ‘Follow the Sun(태양을 좇아서)’란 영화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과연 벤 호건이나 켄 벤투리 같은 골프영웅들처럼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지난해 최고 기량의 지구촌 스타골퍼 30명이 참가한 투어 챔피언십에서 전성기의 모습을 재현하며 정상에 오른 데 이어 올 4월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황제의 귀환을 선포했던 타이거 우즈의 최근 골프 행보가 염려스럽다.

우즈는 플레이오프 1차전인 노던 트러스트에 참가했으나 중도 하차했다. 1라운드에서 4오버파 75타로 부진했던 그는 2라운드를 앞두고 근육 염좌를 이유로 기권을 선언했다. 

“상태가 좋다”며 플레이오프 2차전 BMW 챔피언십에 참가했으나 최종전 진출에 실패했다. 노던 트러스트에서 기권했어도 페덱스컵 포인트 랭킹 38위로 BMW 챔피언십 출전이 가능했던 우즈는 BMW 챔피언십에서 11위 이상을 올려야 투어 챔피언십 출전이 가능했는데 최종합계 7언더파 281타, 공동 37위에 머물렀다. 

우즈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은 지난달 열린 디오픈 챔피언십에서 드러났다. 허리가 온전치 않은 그는 걷는 자세도 불편했고 신발끈도 주저앉아서 맬 정도였다.  

미국 현지 언론은 우즈가 허리 디스크를 긁어내고 위아래 뼈를 고정하는 수술을 받은 뒤 극적으로 선수로 돌아왔으나 이 수술은 일종의 땜질 처방으로 오래 가기 어렵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디스크에 압력이 심해지면 더 큰 부상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일부에선 우즈가 이런 몸 상태에 비해 출전하는 경기가 너무 많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투어 챔피언십 출전은 좌절되었지만 우즈는 쉬지 않는다. 일본에서 열리는 PGA투어 조조 챔피언십에 참가해야 하고 로리 매킬로이 등과의 이벤트 매치도 준비 중이다. 프레지던츠컵 미국팀 캡틴을 맡은 그는 스스로 선수로 뛰고 싶어 하고 있다.

타이거 우즈는 샘 스니드의 PGA투어 최고기록(82승)에 1승 차이로 다가섰고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최다승기록(18승)에도 3승을 남겨두고 있다. 그는 지난 4월의 마스터스 우승을 통해 샘 스니드의 기록 돌파는 시간문제이고 잭 니클라우스의 기록도 넘을 것이란 기대를 안겼다.

물론 우즈가 지금껏 이룬 업적만으로도 가장 위대한 골퍼의 한 명으로 기록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 이상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더라도 경기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골프 팬들에겐 축복이다. 팬들은 우즈가 몸을 혹사시켜 더 이상 골프코스에 나올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벤 호건, 켄 벤추리, 잭 니클라우스와 아놀드 파머가 은퇴 직전까지 진정한 골퍼의 멋진 모습을 지켜냈듯 타이거 우즈도 역사적 대기록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기를 고대한다.
대기록 도전의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불굴의 의지로 도전하는 우즈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골프 팬들에겐 축복이기 때문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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