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LPGA 투어 손베리 크릭 LPGA 클래식 골프대회에 출전한 박성현 프로. 사진제공=Gabe Roux/LPGA


[골프한국] 아프리카 초원이나 열대의 정글에서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맹수들의 사냥 성공률은 얼마나 될까. 

포식자의 상층부를 점령하고 있는 고양잇과 맹수들의 사냥 성공률은 대략 20% 내외다. 시속 100km를 넘나드는 치타가 30%로 성공률이 가장 높다고 하지만 잡은 먹이를 다른 맹수나 들개 하이에나들에게 자주 빼앗겨 성공률은 20%대로 떨어진다. 이 같은 성공률도 맹수들이 고도의 집중력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결과다. 

다큐멘터리에 찍힌 사자 무리의 먹이 사냥 장면을 보면 전혀 사자답지 않다. 소심하고 비겁하고 결단력도 없어 보인다. 

약하기 짝이 없는 임팔라 영양을 사냥하는데도 무리 중에 제일 약한 녀석을 목표로 정한다. 그리고 임팔라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풀숲에 몸을 숨기고 바닥을 기어 접근한다. 거의 10미터까지 접근, 먹이가 정신을 놓고 있을 때 기습적으로 공격한다. 조금이라도 서둘거나 부주의하면 임팔라를 추적할 수 없다. 

포식자의 최상층부를 차지한 고양잇과 맹수들이 눈에 띄는 대로 먹이를 공격하는 이른바 ‘닥공’(닥치고 공격)을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마도 맹수들은 멸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달리는 속도나 지구력에서 맹수들은 피식자들의 상대가 안 된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추적해서 사냥하는 것은 맹수들의 전공이 아니다. 무리가 협업하지 않는 경우 먹이를 뒤쫓아 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 먹이나 마구 쫓다가 사냥에 실패하고 결국 지쳐서 쓰러진다. 새끼들에게 줄 먹이를 잡지 못하는 생존 능력을 잃는다. ‘닥공’의 최후는 자멸이다. 

세계랭킹 1위 박성현(26)이 8일(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오나이다 손베리 크릭에서 열린 손베리 LPGA 클래식에서 2주 연속 우승 도전에 실패했다.

직전 대회인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시즌 2승 LPGA투어 통산 7승을 거두며 세계랭킹 1위를 탈환한 박성현은 여러모로 2연승이 유력시 되었다. 원래 장타인 데다 정확성까지 가다듬어 1인자의 자격이 충분했다.

3라운드 14번 홀까지 단독 선두로 쾌속 항진하다 15번 홀(파5)과 16번 홀(파4)에서 더블보기와 보기를 기록하며 흐름이 흐트러졌다,

펑샨샨(30·중국), 아리아 주타누간(24·태국), 재미교포 티파니 조(33)와 함께 4명이 공동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에 들어갔으나 박성현은 3라운드의 실수 여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펑샨샨과 아리아 주타누간, 양희영(30), 티파니 조, 김효주(24), 월요예선을 거쳐 출전한 재미교포 노예림(18)이 맹타를 휘두르며 근래 보기 드문 각축전을 펼쳤다. 결국 마지막 홀 버디로 펑샨샨이 최종합계 29언더파 259타로 아리야 주타누간을 1타 차이로 누르고 10번째 LPGA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29언더파는 지난해 김세영(26)이 세운 LPGA투어 72홀 최저스코어(31언더파 257타)에는 2타가 모자라지만 펑샨샨 개인 최고 기록이다.
양희영, 티파니 조가 25언더파로 공동 3위, 김효주가 24언더파로 5위, 박성현은 노예림과 함께 23언더파로 공동 6위를 차지했다. 

LPGA투어의 쟁쟁한 톱 랭커들에 주눅들지 않고 인상적인 경기를 펼친 노예림은 훤칠한 키(175cm),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떠올리는 뚜렷한 이목구비, 나이를 의심케 하는 다양한 샷 능력으로 미뤄 당장 스타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박성현의 2연승 좌절은 3라운드 15, 16번 홀에서의 실수가 결정적이었다. 특히 15번 홀의 더블보기는 쉽게 버디를 할 수 있는 홀인 것을 감안하면 한꺼번에 세 타를 잃은 셈이었다. 미스샷 여파가 다음 홀로도 이어져 네 타를 날려버린 것이다. 

이 순간 2017년 그가 US여자 오픈에서 우승한 뒤 가진 기자회견 내용이 떠올랐다.
그는 우승 직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로부터 “‘닥공’이라는 별명이 있던데 뜻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공격적으로 경기한다고 해서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닥공’의 한국어 뜻을 묻는 질문에 통역이 “Shut your mouth and attack”라고 설명하자 미디어 센터에 웃음이 터져 나왔었다. 

이때 외에도 박성현은 자주 자신의 공격적 스타일을 내세우며 공격적 플레이를 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박성현은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에 너무 집착하다 경기 흐름을 잃고 2연승이라는 작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실패했다.

팬들은 공격적인 플레이에 환호하지만 그 실패에 대해선 책임지지 않는다. 백수의 왕, 밀림의 맹수도 안 하는 ‘닥공’을 박성현이 고집할 이유가 없다.

웬만해선 드라이버를 잡지 않고 아이언 티샷을 날리는 아리야 주타누간에게서 진정한 맹수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또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동반 경기자와의 관계다. 펑샨샨과 티파니 조는 3, 4라운드를 함께 경기했는데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의 샷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로가 적대감 없이 호감을 가지고 있으니 경기 내용도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게 돼 있다. 펑샨샨이 압박감 없이 멋진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펑샨샨 자신과 티파니 조의 역할이 한몫을 했다고 본다.

4라운드에 함께 경기한 양희영과 노예림도 좋은 케미가 느껴졌다.

박성현은 3라운드에서 노예림, 4라운드에서 아리야 주타누간과 한 조로 경기했는데 동반자와 말을 주고받지도 않고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어린 교포선수가 놀라운 경기를 펼치는데 격려도 하고 덕담을 나눌 수 있을 텐데 완전한 타인이었다.

자신과 함께 세계의 최강자 중의 한 명인 아리야 주타누간에 대해서도 가벼운 대화도 나누고 상대방의 좋은 플레이에 박수도 보낼 수 있을 텐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간혹 주타누간이 본의 아니게 박성현의 길을 막았을 때 합장을 하며 미안함을 표시했다. 

여전히 통역을 통해 인터뷰를 소화하는 그를 보며 자신을 존재케 하는 나라의 언어는 익히는 게 예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2019년 LPGA 투어 손베리 크릭 LPGA 클래식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펑샨샨. 사진제공=Gabe Roux/L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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