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투어 제네시스오픈에서 다시 대결하는 필 미켈슨과 타이거 우즈.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지난 12일(한국시간) PGA투어 AT&T 페블비치 프로암 대회에서 역전 우승한 필 미켈슨(48)은 세월에 휩쓸려가는 많은 골퍼들에게 불가사의한 화두(話頭)를 던진다. 취미로 즐기는 아마추어 골퍼는 물론 삶의 거의 전부를 거는 프로골퍼들에게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그의 맹활약은 용기와 함께 자괴감을 안긴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체력을 타고난 골퍼라 해도 4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하강 곡선을 그리기 마련이다.

40대에 접어든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대표적 퇴조 현상이 스윙 스피드의 감소와 퍼팅의 난조다. 스윙 스피드 감소는 비거리와 직결되고 퍼팅의 난조는 스코어를 앗아간다. 거센 뒷물결에 밀려가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지만 젊은 선수들과의 대결이 힘에 부치고 추락을 거듭하다 결국 은퇴의 길을 찾는다. 

40을 한참 지나 오는 6월 16일이면 만 49세가 되는 필 미켈슨이 오히려 비거리가 늘어나고 경기내용이 더욱 원숙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의 경쟁력의 금맥을 나름대로 추적해봤다. 

그는 3년 전부터 스윙 스피드가 빨라진 것을 두고 꾸준한 연습과 체력 단련, 식생활 개선 덕분이라고 말했다. 매일 6마일(약 7.6km) 달리기와 점프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비방(?方)이라고 할 것도 없다. 골프선수라면 기본적으로 이 정도는 다 하기에 공통분모에 가깝다. 
의지와 연습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아쉬워할 최경주(48)가 PGA투어에서 다시 한번 승리를 보태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는데도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면 설득력이 약하다.

그의 일곱 살 아래 동생 팀 미켈슨(41)은 형 미켈슨의 장점으로 뛰어난 유연성(flexibility)을 꼽았다. 그는 형 미켈슨이 AT&T 페블비치 프로암대회에서 아리조나 주립대 후배인 폴 케이시(41·영국)를 3타 차이로 따돌리고 역전 우승하면서 이 대회 최고령 우승자가 되는 등 지난 11개월 동안 2승을 거둔 결정적 요인은 자신보다 월등한 유연성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동생의 주장대로 미켈슨의 뛰어난 유연성을 인정하지만 이것이 그의 노익장의 결정적 요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미켈슨의 비상과 타이거 우즈(43)의 부활은 비슷하면서도 성격이 다르다.

타이거 우즈는 그렇게도 절치부심하며 필드 복귀를 시도하다 42세가 되어서야 승수를 보태며 화려한 황제의 귀환을 알렸다. 2013년 8월 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우승한 뒤 무려 1,876일 만인 지난해 9월 PGA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챔피언십에서 감격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우즈는 불꽃 같은 골프 역정을 이어가다 곁길로 접어들면서 나락의 길로 떨어졌다. 나락에서 헤매면서 자신의 가야 할 곳은 골프코스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우즈는 결국 필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샘 스니드가 세운 PGA투어 통산 82승과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대회 통산 18승 기록이 자극제로 작용했다. 현재 우즈의 PGA투어 통산 우승은 80승에 메이저대회 우승기록은 14승이다. 우즈의 화려한 부활 원동력은 대기록 도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켈슨의 골프 여정은 타이거 우즈처럼 불꽃같이 화려하진 않았다. 가파르진 않지만 꾸준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우즈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골퍼로 자리잡았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가이드로 골프를 시작한 것은 우즈와 마찬가지다. 차이라면 우즈가 전문가의 지도를 받았다면 미켈슨은 아버지의 지도를 받았다는 것이다. 생후 18개월 때부터 해군 조종사였던 아버지의 지도로 골프를 익혔다. 원래 오른손잡이였지만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는 아버지의 자세를 거울을 보듯 그대로 따라하는 바람에 왼손잡이가 되었다고 한다. 

아리조나 주립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것은 요동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를 좋아하지 않은 골프선수나 골프팬이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것을 보면 그의 성정, 인간미가 전해진다. 라이더컵, 프레지던츠컵, 던힐컵 등 각종 대항전에 단골 미국 대표선수로 참가한 것은 그의 사교성, 친밀감, 신사다움을 증명해준다. 

미켈슨, 타이거우즈와 동반 라운드를 했던 양용은(47)의 회상이 인상적이다. 
“미켈슨은 우즈와 대조적이다. 그는 진짜 신사다. 자신의 플레이에 관계없이 항상 웃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우즈는 마음의 움직임과 플레이의 변화에 따라 그대로 표정으로 드러난다.”

우즈가 너무 일찍 개화하는 바람에 골프가 아닌 딴 데 한눈을 팔았다면 미켈슨은 한눈팔 겨를이 없었다. 늘 골프기량을 개선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게을리할 수 없었다. 남다른 가족애가 밑바탕이 되었다.

4년여의 열애 끝에 아내 에이미와 결혼한 미켈슨은 1999년 US오픈과 첫 아이의 출산일이 겹치자 “출산 조짐이 보인다는 연락이 오면 대회를 포기하고 바로 귀가하겠다”며 무선 호출기를 착용하고 경기할 정도였다. 다행히 아이는 대회 다음날 건강하게 태어났고 미켈슨은 준우승으로 아내를 위로했다. 
2006년 마스터스에서는 유방암을 앓고 있는 아내를 위해 유방암 예방캠페인용 핑크 리본을 모자에 달고 경기했다. 우승 퍼트를 한 뒤 미켈슨은 두 딸 아만다 브린, 소피아 이자벨, 아들 이반 새무엘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내와 1분여 동안 긴 포옹을 해 골프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2009년에는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투어생활을 과감히 중단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US오픈을 앞두고 큰딸의 졸업식이 열렸는데 미켈슨은 딸의 졸업식을 지켜본 뒤 그날 밤 바로 3800km를 날아 대회에 참가했다. 2016년 US오픈 때는 둘째 딸 소피아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연습 라운드를 포기하고 개막 직전 저녁 대회장에 도착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는 내가 어떤 경기를 하든 상관없이 나는 특별한 감정에 쌓인다.(When I'm with them, they make me feel special regardless of how I play.)”는 그의 고백은 가족 사랑의 순도(純度)를 느끼게 한다. 

미켈슨의 마음속엔 가족이 최우선이고 그 다음이 골프였음을 알 수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40대에도 왕성한 힘과 의욕을 샘솟게 하며 44승이라는 위대한 탑을 쌓아 올린 원동력인 셈이다. 

특히 그에게 이번 우승의 의미는 예사롭지 않다. 100년 전 포르투칼 이민자인 외할아버지 알 산토스가 캐디로 일한 페블비치에서 거둔 다섯 번째 우승이다. 마크 오메라의 최다승기록과 동률이다. 
메이저대회 중 유일하고 품에 안지 못한 US오픈이 올 6월 페블비치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의 꿈도 가질 만하다. 메이저 5승을 기록 중인 그는 마스터스(3승)와 디 오픈(1승), PGA 챔피언십(1승)에서 정상에 올랐지만 아직 US오픈은 준우승만 6회를 했을 뿐이다.

외할아버지는 그에게 1900년 발행 1달러짜리 은빛 주화를 물려주었다. 미켈슨은 이 주화를 본뜬 모조 주화를 마커로 사용해왔는데 페블비치에서 열리는 대회에서만은 꼭 이 주화를 사용해왔다고 한다. 오는 6월 페블비치에서 열릴 US오픈에서 그의 가족 사랑과 할아버지의 영혼이 깃든 은빛 주화가 어떤 마술을 발휘할지 기대된다. 

6월까지 갈 것도 없이 이번 주 15~18일(한국시간)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인근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리비에라CC에서 열리는 PGA투어 제네시스 오픈에서 펼쳐질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의 경쟁구도가 흥미롭다. 올 PGA투어에서 두 선수가 동반 출장하는 것은 처음으로 지난해 11월 900만 달러를 놓고 1대1 대결을 펼친 이후 3개월 만이다.

지난달 열린 데저트 클래식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1라운드에선 60타를 기록, 자신의 최소타 타이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미켈슨은 AT&A 페블비치 프로암대회에서 우승하며 무서운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지난해 9월 투어 챔피언십 우승으로 황제의 부활을 알린 우즈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하는 짐을 지고 있다. 더욱이 리비에라 골프코스와는 악연이 깊어 코스 극복이 우선과제다. 
우즈가 16세 때 아마추어 신분으로 PGA대회에 처음 출전한 코스가 리비에라다. 그동안 9차례나 이곳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했지만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이밖에 이 대회 통산 네 번째 우승을 노리는 버바 왓슨을 비롯, 세계링킹 상위 10위의 톱랭커들이 출전하고 페블비치 프로암에서 공동4위에 오른 김시우(24)를 비롯해 최경주(49, 배상문(33), 강성훈(32), 이경훈(28), 김민휘(27), 임성재(21)가 참가한다. 지난해 KPGA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출전권을 얻은 이태희(35)도 PGA투어를 경험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