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나연 프로. 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많은 골프 팬들에게 최나연(31)은 화사한 나비의 이미지로 살아있다. 

가녀린 듯한 몸매에 나비의 날갯짓 같은 부드럽고 우아한 스윙, 수채화 질감의 엷은 미소, 여자무술인을 연상케 하는 사뿐사뿐한 걸음걸이 등. 나비 중에서도 날개 상단 끝 작은 검은 얼룩무늬를 제외하곤 투명에 가까운 연노랑 날개를 가진 노랑나비를 닮았다. 

나대지 않는 다소곳한 태도까지 더한 전형적인 여성스러움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그의 팬이 참 많았다. 연말 시상식 때를 빼곤 바지를 고집하는 것에 의아해하는 팬들이 없지 않았지만 이때문에 그를 외면하진 않았다. 특히 그의 스윙은 PGA투어 선수들에 의해 가장 닮고 싶은 스윙으로 뽑힐 정도로 간결하고 정갈했다. 

이런 최나연이 언제부턴가 LPGA투어 무대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매년 LPGA투어에 새로운 한국선수들이 진출, 많은 승수를 쌓으며 도도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바람에 최나연의 부재(不在)가 부각되지 않았지만 많은 골프팬들은 그가 왜 LPGA투어 중계화면에서 사라졌는지 궁금해했다. 그는 결코 이런 식으로 스러질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시절은 물론, KLPGA투어에서의 활약에 이은 LPGA투어에 진출한 뒤의 그의 행적은 화려했다. 

2004년 17세의 아마추어로 KLPGA투어 ADT캡스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깜짝 우승하면서 프로로 전향한 그는 국내 투어에서 3승을 거둔 뒤 20세가 되던 해인 2007년 LPGA투어 퀄리파잉 토너먼트에 도전, 공동 20위에 올라 LPGA투어 자격을 확보했다.

데뷔 해인 2008년 그는 우승은 못했으나 톱10에 9차례나 오르는 등 맹활약했다. 데뷔 동기인 대만의 청 야니(29)가 1승을 올리고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2위 등의 탁월한 성적을 올리는 바람에 아쉽게 신인상을 놓쳤지만 데뷔 첫해에 상금 1백만달러를 돌파했다. 

2009년부터 그는 LPGA투어에서 우승 퍼레이드를 이어갔다. 2009년 2승, 2010년 1승, 2012년 US여자오픈을 포함해 2승을 올렸다. 2010년에는 18홀 평균 최저타수상인 베어트로피와 상금왕도 차지했다. 이후 2013, 2014년을 우승 없이 보낸 그는 2015년 2승을 올리며 누적상금 1천만 달러를 돌파했다. 

지금에야 최나연은 이때가 그의 정점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허리 통증이 심각해지면서 대회 출전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출전해도 컷 통과가 벅찼고 기권하는 일도 빈번했다.

결국 최나연은 올 4월 LPGA측에 병가신청을 내고 휴식을 취하며 재활 치료를 하고 있다. 주니어시절부터 지난 20여 년간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프로골퍼 생활의 벨트에서 내려와 자신을 돌아보며 재기를 모색 중이다. 혼자서 유럽여행을 하며 민박에서 다른 여행객들과 어울리기도 하며 삶을 보는 시야를 넓히기도 했다. 친했던 카리 웹(43·호주)으로부터 “절대 서두르지 말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마라.”는 격려 전화를 받은 그는 내년 3월 복귀를 목표로 강도 높은 담금질을 실천하고 있다. 

과연 최나연이 내년 시즌 LPGA투어에 복귀해 재기에 성공할 것인가. 잘 나가던 선수가 하루아침에 추락, 슬럼프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아 최나연의 재기 성공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최나연과 함께 2008년 LPGA투어에 데뷔, LPGA 통산 15승을 올리고 무려 109주 동안 세계 여자골프 랭킹 1위를 지켰던 청 야니가 이렇게 추락할지, 지난해까지 JLPGA투어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이보미(30)가 길고도 가혹한 슬럼프에 빠질지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타이거 우즈와 함께 1인자 자리를 다투며 PGA투어 통산 11승을 올린 데이비드 듀발(47)이 재기의 고개 한번 들지 못하고 사라진 것 역시 불가사의한 일이다. 

골프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마련이다. 추락해서 영영 사라지는가 하면 타이거 우즈처럼 끈질긴 사투 끝에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기도 한다. 

그래도 최나연에게 다행인 것은 슬럼프에 빠진 원인을 알고 처방도 받았다는 점이다. 허리 부상과 심리적 압박감에서만 벗어나는 길만 제대로 찾으면 터널의 끝을 찾을 수 있다. 데이비드 듀발이나 청 야니처럼 부상도 아니고 심각하다고 할 정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데도 정체 모를 ‘입스’에 발목이 잡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는 정말 대책이 없다. ‘이유도 없이’ ‘왜인지 모르게’ 벌어지는 일은 속수무책이다. 

‘노랑나비 최나연’이 성공적으로 LPGA투어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는 많다. 

우선 최나연 자신의 작은 소망을 이뤄야 한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전성기 때의 명예회복은 바라지 않는다. 골프를 하면서 행복을 찾고 싶다”고 털어놨다. 이 소박한 소망을 이뤄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꿈을 안고 LPGA투어에 뛰어들어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날개를 접은 선수들을 위로하고 현재 LPGA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과 진출을 꿈꾸는 선수들을 위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와야 한다.  

‘노랑나비’의 춤을 그리워하는 팬들의 공허를 채워줘야 할 책임도 그의 몫이다. 보조개가 살짝 파이는 맑은 미소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그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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