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투어 최경주와 내년 JGTO에서 뛰게 될 양용은. 사진제공=KPGA
[골프한국] 유목시대는 흘러갔으나 유목주의는 현대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물과 목초지를 찾아 가축을 이끌고 이동하며 생활하는 유목민(nomad)은 사라지고 있으나 유목민의 생활방식은 현대에 더 번성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목민이 물과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듯 현대인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구현하기 위해 기존 관습이나 전통, 가치관, 철학에서 벗어나 다양한 직업과 직장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기존의 가치나 철학을 부정하고 경계를 뛰어넘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학문적 자세를 뜻하는 의미로 유목주의(nomadism)란 용어를 등장시킨 뒤 이 용어는 학문분야는 물론 현대사회의 변화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자라잡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란 저서를 통해 “태초에 인간은 노마드였다”며 “신인류의 대안은 노마드에서 찾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는 21세기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은 노마드의 삶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 예측은 그대로 적중하고 있다. 
 
프로골프의 세계에도 바야흐로 유목시대가 열리는 분위기다. 요즘 젊은 세대가 유목주의를 주장하는 철학자들의 예측대로 한 분야, 한 직장에 정착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 옮겨 다니듯 프로골퍼들도 한 무대에서 안주할 수 없는 환경으로 변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투어나 일본 투어, 실력이 특출할 경우 미국의 PGA투어에서 기반을 잡을 수 있었으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 무대에서의 정착(定着)이 불가능해졌다.    
새로운 목초지와 물을 찾아 이동하는 유목민과 다름없이 프로골퍼들도 새로운 활동무대를 찾아 지구촌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국 남자골프의 지평을 확장하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해온 최경주(47)와 양용은(45)이 골프의 유목시대를 맞아 개척자다운 용기를 실천하고 있다.
PGA투어에서 시드를 잃어 유러피언 투어와 아시아 투어를 전전해온 양용은은 최근 JGTO(일본프로골프투어)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1위로 통과해 내년 시즌 일본무대에서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
3년 후 PGA의 시니어투어인 챔피언스투어 진출에 대비하고 있는 최경주는 최근 호주 PGA투어 ISPS 한다 뉴질랜드오픈 출전을 확정, 목초지를 넓히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최경주의 출전 소식을 전한 호주 PGA투어 측이 “타이거 우즈 이후 뉴질랜드 오픈에 출전하는 가장 유명한 외국인 선수”라고 상세히 소개해 앞으로 호주 PGA투어에서 자신의 목초지를 넓힐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셈이다.
 
최경주와 양용은이 정글에서 밀려날 때를 대비해 노마드의 길을 선택했다면 더 젊은 세대들은 생존 자체를 위해 과감히 노마드의 길로 나서고 있다.
왕정훈(23), 이수민(23) 등은 일찌감치 좁은 KPGA투어를 박차고 유러피언 투어로 진출, 나름대로 입지를 굳혔고 2016년 2017년 KPGA투어 대상을 차지한 최진호(33)도 내년시즌부터 유러피언 투어에 뛰어들어 새로운 영역 확보에 나선다.    
고교 진학 대신 프로생활을 선택한 16세의 골프신동 김민규는 올해 EPGA 3부터 투어 상금랭킹 2위를 차지, 내년부터 EPGA 2부 투어 풀시드를 확보했는데 이를 기반으로 EPGA투어는 물론 PGA투어 진출을 노리고 있다.

KPGA투어를 뛰면서 겸업이 가능한 JGTO에도 양용은을 포함해 10명이 진출할 예정이고 JGTO에서 활약해온 임성재(19)와 PGA투어에서 뛰다 국내로 돌아온 김비오(27)는 내년 시즌 PGA투어에 제한적 출전자격을 얻어 활동무대를 넓힐 계획이다.
국내 무대는 한정돼있는데 배출되는 선수는 넘쳐나는 상황에서 앞으로 프로골퍼의 길은 더욱 험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목생활에 필요한 경쟁력과 지혜를 갖추지 않고선 프로골퍼로 생존해나가는 일 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