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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어니 엘스가 던진 화두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골프한국] 아마추어 골퍼들이 동경해마지 않은 부드러운 스윙을 구사하며 골프를 신사의 스포츠임을 언행으로 실천해온 진정한 골프신사 어니 엘스(47)가 ‘구성(球聖)’으로 추앙받는 영원한 아마추어 바비 존스(1902~1971)를 떠올리게 하는 일화를 남겼다.

어니 엘스는 지난 5월25일 영국 서리주 버지니아 워터의 웬트워스 클럽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BMW PGA챔피언십 첫날 경기 12번홀(파5)에서 이글을 기록하고도 스코어카드에 파로 기록했다.

사연인즉, 이 홀에서 두 번째 샷이 그린 옆 벙커 주위로 날아가 깊은 러프에 빠지자 그는 같은 조의 동반선수들(저스틴 로즈, 매튜 피츠패트릭)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의 상태를 살펴본 뒤 다시 원래 자리에 놓고 칩샷을 했는데 그대로 홀인이 되어 이글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이 홀의 스코어카드에는 이글이 아닌 파로 기록해 제출했다.

경기를 마친 뒤 그는 “뭔가 마음에 걸려 개운하지 않았다"며 "공이 너무 깔끔하게 맞았는데, 처음에 공이 놓여있던 자리에 제대로 놓고 친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진해서 2벌타를 부과한 이유가 ‘처음 공이 놓인 자리에 제대로 놓고 친 게 아니라는 느낌’이라는 그의 설명에 많은 골퍼들이 숨이 멎는 전율을 느꼈다.

아마추어 골퍼는 물론 수많은 프로골퍼들도 주변에 지켜보는 사람이 없거나 중계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경우 보다 유리한 경기를 위해 남이 눈치 채지 못할 가벼운(?) 부정행위를 일삼고 렉시 톰슨처럼 집에서 중계방송을 지켜본 시청자의 지적으로 하루 지나 무려 4벌타(오소플레이 2벌타, 스코어카드 잘못 기록 2벌타)를 받아 우승을 놓치자 여기저기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공을 원래 자리에 제대로 놓은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는 이유로 스스로 2벌타를 매긴 것은 보통 골퍼로선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골프 사가들이 20세기 최고의 골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지성파 아마추어 골퍼 바비 존스는 1925년 US오픈에서 골프사에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1타차 선두를 유지, 우승을 목전에 둔 존스는 러프에서 어드레스 하는 사이 볼이 움직이자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지만 경기위원회에 이 사실을 자진 신고했다. 그리고 2벌타를 받아 결국 우승을 놓쳤다.

이 사건을 두고 매스컴들이 존스를 칭송하는 기사를 쏟아냈는데 그는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이다. 여러분들은 내가 은행 강도를 하지 않았다고 나를 칭찬하려는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일화를 두고 그의 친구이자 언론인인 O.B 킬러 기자는 “나는 그가 우승하는 것보다 그를 더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그가 우승한 것보다 그가 벌타를 스스로 부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1타가 없었더라면 존스의 우승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멋있는 것이 바로 존스의 이 신고사건이었다.”고 기록했다.

어니 엘스의 자진 불타 부과 사건은 바비 존스의 자진 신고 사건을 뛰어넘는 사례로 골프사에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골프의 순수성을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를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191cm 95kg의 거구로 부드럽기 이럴 데 없는 스윙을 구사해 ‘빅 이지(Big Easy)'란 애칭을 얻은 어니 엘스는 1969년 PGA투어에 입문해 2012년 최고의 메이저대회인 디 오픈을 비롯해 PGA투어 통산 19승, 유러피언 투어와 남아공투어, 아시안투어 등을 포함해 무려 70승 이상을 올린 살아있는 전설이다.

이런 선수가 동반 선수들로부터 상황을 알리고 옆에서 주시하는 가운데 샷을 날린 뒤 ‘뭔가 제대로 한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이유로 스스로 2벌타를 부과했다는 것은 그가 머리에 담고 있는 골프의 순수성, 신사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케 한다.

이를 두고 지나친 결벽증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진정 골프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면 라운드 중의 ‘꺼림칙함’이나 ‘개운치 않은 느낌’이 유발하는 부작용을 떠올려 본다면 어니 엘스의 선택과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남이 알든 모르든(대개는 모른 척 할 뿐 동반자들은 거의 다 알고 있다) 은밀한 부정행위 뒤에 좋은 결과를 얻기는커녕 남몰래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자책과 불편함 때문에 오히려 더욱 경기를 망친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을 터이다.

“골프라는 스포츠가 원래 그런 것이다. 공이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다면 나 스스로 견디기 어려운 법"이라는 어니 엘스의 실토는 골퍼로서 최고 수준의 고백이 아닐 수 없다.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입력날짜 : 2017-05-29 16:1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