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클래식 허윤경·장수연 따돌려… 박성현은 공동12위

[골프한국 조민욱 기자] 작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으로 피날레를 장식한 선수는 베테랑 크리스티 커(미국)였다. 당시 38세의 커는 우승을 확정한 직후 18번홀 그린에서 어린 아들 메이슨과 장난을 치며 즐거워했고, 이 장면은 골프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엄마 선수가 단 두 명. 10년 넘도록 우승이 없었던 안시현(32·골든블루)과 홍진주(33·대방건설)는 올해 나란히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진기한 기록을 남기며 '엄마의 저력'을 보여줬다.

우승 직후 축하 꽃잎 세례받는 홍진주. 사진제공=KLPGA



완연한 가을의 정취가 느껴지는 6일, 경기도 용인의 88골프장(파72·6,598야드)에서 펼쳐진 팬텀 클래식(총상금 6억원) 마지막 날 3라운드.

공동 선두로 출발한 홍진주는 1번홀과 9번홀(이상 파4)에서 보기를 기록, 전반에 2타를 잃는 등 좀처럼 타수를 줄이지 못해 선두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막판 16번과 17번홀(이상 파4)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내면서 기어코 연장에 합류하는 뒷심을 발휘했다. 이븐파 72타.

사흘간 최종 합계 6언더파 210타의 성적을 적어낸 홍진주는 동률을 이룬 허윤경(26·SBI저축은행), 장수연(22·롯데)과 함께 연장에 돌입, 18번홀(파5)에서 서든데스 방식으로 세 차례나 거듭된 플레이오프에서 살아남았다.

1차와 2차 연장전에서 승부를 내지 못한 셋은 라이트까지 켜고 3차 연장전에 나섰고, 마지막 순간 집중력을 잃지 않고 파를 지킨 홍진주가 우승컵과 상금 1억2,000만원의 주인이 됐다.

최종라운드 18개 홀에서 2타를 줄이고 연장에 합류한 장수연은 세 번째 샷을 그린을 훌쩍 넘기는 바람에 보기를 범했고, 지난달 결혼해 시댁과 남편의 든든한 응원에 힘입어 2년 만의 우승에 도전했던 '새댁' 허윤경은 1.2m 파퍼트를 놓쳤다.
하지만 홍진주는 8m 거리에서 친 버디 퍼트를 홀에 바짝 붙여 파를 성공시켰다. KLPGA 투어에서 10년 만에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챔피언 퍼트를 집어넣은 홍진주는 환한 미소를 지었지만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골프 선수로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지난 1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는 "마지막 퍼트 할 때부터 눈가에 눈물이 고여서 볼도 잘 안보였다"고 털어놨다.

우승 확정후 기뻐하는 홍진주. 사진제공=KLPGA



2003년 프로에 데뷔해 2004시즌부터 KLPGA 투어에서 뛰었던 홍진주는 2006년 9월 SK엔크린 솔룩스 인비테이셔널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2년이 넘는 무명 시절의 설움을 날렸다. 첫 우승에 이어 같은 해 10월 한국에서 열린 LPGA 투어 코오롱-하나은행 챔피언십마저 제패해 미국행 진출권을 따낸 '신데렐라'였다.

이듬해 부푼 기대를 안고 미국으로 진출한 홍진주는 그러나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쓸쓸하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내 무대에 복귀하기 위해 2009년 '지옥의 관문'인 시드전까지 치러야 했다. 그러나 KLPGA 투어에서도 하위권을 맴돌 정도로 녹록하지 않았다. 돌파구를 찾던 그는 2013년 일본에 건너갔다. 하지만 거기서도 아픈 경험만 쌓고 돌아와야 했다.

홍진주는 포기하지 않고 더 바쁘게 살았다. 골프장에서 우렁차게 엄마를 부르는 세 살배기 아들과 놀아주느라 월요일에도 쉴 틈이 없지만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피로는 덜 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올해부터 선수회장으로 KLPGA 당연직 이사를 맡아 수시로 이사회에 참석한다.

KLPGA 투어 시드권을 가진 선수 중 최고령인 홍진주는 하지만 '현역 선수'라는 사실을 잊어본 적이 없다. 2016시즌 28차례 출전했을 정도로 대회를 빠진 적도 거의 없고, 다른 선수가 그렇듯 우승을 목표로 성실하게 뛰었다. 특히 올해 6월 한국여자오픈에서 엄마 선수 안시현이 12년 만에 투어 정상에 오르자, 홍진주 역시 "나도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자극을 받았다.

지난 시즌 상금랭킹 37위로 시드를 유지한 홍진주는 올해 메이저대회 한국여자오픈,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우승 경쟁을 펼쳐 건재를 과시했다.

이번 대회에서 첫날 1타 차 2위로 스타트를 끊은 뒤 둘째날 공동 선두에 오르자, 좀처럼 우승에 대한 바람을 드러내지 않은 홍진주도 "이번에는 우승하고 싶다"는 욕심을 밝혔다. '다시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지난주까지 시드권 확보가 아슬아슬한 상금랭킹 53위였던 홍진주는 이번 우승으로 2년 시드권을 확보했고 상금랭킹 27위(2억2,875만원)로 도약했다.

한편 허윤경은 투어 통산 4번째 우승을 앞두고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지만, 부상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며 부활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 상금랭킹 2위에 오른 그는 지난해부터 무릎이 아파 힘든 시기를 보냈다. 장수연은 3차 연장전에서 나온 아이언샷 실수로 시즌 3승 기회를 날렸다.

1라운드 때 단독 선두에 나서 시즌 8승 기대를 부풀렸던 1인자 박성현(23·넵스)은 2타를 잃어 공동 12위(2언더파 214타)에 그쳤다.

박성현이 오는 11일 개막하는 최종전 ADT캡스 챔피언십에 출전하지 않기에 대상은 이번 대회 도중 감기 몸살로 기권한 고진영(21·넵스)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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