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엘킹턴은 거침없는 입담으로 유명하다. 1995년 PGA 챔피언이 자신의 이름을 단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나 소셜미디어에서 논쟁에 휘말리게 된 것도 다 그런 솔직함 때문이다. 그건 득일까, 실일까? 그의 머릿속을 한 번 제대로 들여다봤다.

엘킹턴은 논란을 일으킨 발언에 대해 “모든 트윗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고 말했다.
1995년에 엘킹턴은 리비에라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 우승으로 가장 큰 상을 챙겼다.
안녕하십니까, 친구들. 엘킹턴이 친구인 팻 페레즈와 함게 '시크릿 골프'를 촬영하고 있다.
엘킹턴은 2010년에 아흔여덟의 나이에도 멋진 플레이를 펼쳤지만, 두 번째 메이저 우승을 손에 넣지는 못했다.
스티브 엘킹턴은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에서 북동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토바코로드 골프클럽의 연습장에서 스윙에 한창이었다. 그의 오른쪽에는 손에 타월을 든 여든 살의 윌리 밀러가 있었는데, 엘킹턴이 투어에 들어와서 처음 호흡을 맞췄던 캐디였다. 왼쪽에서는 무더운 5월의 오후에 엘킹턴에게 도전장을 던진 사람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195센티미터의 거구를 자랑하는 클럽 프로 크리스 브라운과 실력 있는 회원인 지미 마틴이었다. 세 사람은 <스티브 엘킹턴과 함께 하는 시크릿 골프>에 나갈 세 홀 매치를 벌일 예정이었다(엘킹턴의 표현을 빌리자면 “난타전”).

두 번째 시즌이 CBS 스포츠 네트워크를 통해 방송되고 있는 이 저예산 프로그램에서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는 엘킹턴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골프와 관련된 이야기를 발굴한다. 그날 연습장에서는 로리 맥길로이와 조던 스피스가 화제에 올랐다. 엘킹턴은 밀러에게 이 두 스타 선수 중 1명의 가방을 들라면 누굴 택하겠냐고 물었다. 캐디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침에는 이 선수랑, 오후에는 저 선수랑 나가겠네.” 사람들은 신이 나서 웃어댔다.

본연의 역할로 돌아온 엘킹턴은 노련한 심야 토크쇼의 진행자처럼 초대 손님들의 티를 꽂고 볼을 올려줬다. 물론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늘 기품을 유지한다. 20년 전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던 그는 10승을 거두며 투어에서 활동할 때보다 최근에 트위터에서 벌어진 논란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그는 이게 속상하다. 그는 자신이 부당하게 표적이 됐다면서 “이제 그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언제나처럼 솔직했던 엘크는 토바코로드의 클럽하우스에 앉아 자신을 향한 비난에 답했으며, 요즘 프로들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골프계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위치를 평가했다.


은퇴하고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는데, 전국을 돌아다니며 TV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생활의 매력이 뭔가.
호주에서 자랄 때 우리 가족은 나라브리라는 곳에서 골프를 했다. 호주에서도 아주 작은 클럽이었다(시드니 북쪽으로 약 480킬로미터 거리). 내가 열세 살 정도였을 때, 형과 나는 그 클럽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가 아버지에게 이사를 가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라브리를 떠나 와가와가(시드니 남서쪽)라는 곳으로 가게 됐을 때 우리는 정말 슬펐다. 개성만점의 그 사람들과 헤어지게 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말했다. “아들아,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와가와가에도 멋진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야. 어길 가든 골프코스가 있고,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있단다.”


사람들에 대한 그런 관심이 TV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뭐였나.
우연이었다. RFD-TV 사람들과 프로암에서 함께 플레이를 하다가 시작됐다. 그들은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교습 프로그램은 하고 싶지 않았다. 개성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PGA 투어에는 개성 있는 사람이 없나.
거기서는 많은 사람들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가 힘들다. 나도 투어에서 활동할 때는 이런 식으로 행동한 적이 없다. 가족을 부양하고, 집도 짓고, 대출금도 갚아야 하기 때문에 훨씬 스트레스가 심했다. 이건 분명하다. 골프계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이 요즘 활동했다면 언론에 난도질을 당했을 것이다. 샘 스니드는 왈도프 아스트리아에서 개최된 라이더컵 만찬 때 점잖지 못한 농담을 하곤 했다. 요즘 같으면 그게 어떻게 전파될까? 요즘 선수들은 말을 많이 하면 비난을 당하고, 말을 충분히 하지 않아도 비난을 당한다.


제이슨 더프너, 팻 페레즈와 친하다. 그밖에 요즘 투어 선수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선수는 누가 있나.
개인적으로 더스틴 존슨의 플레이를 좋아한다. 그는 늘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필 미켈슨은 중압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플레이를 정말 잘한다. 로리 맥길로이도 대단히 인상적이다. 조던 스피스, 제이슨 데이는 한두 가지 샷, 이를테면 톰 와이즈코프가 했던 것 같은 부드러운 샷이 더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와이즈코프는 필요할 경우 150야드 거리에서 6번 아이언으로 칩샷을 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의 와이즈코프라면 부바 왓슨과 비슷했던 것 같다.
부바는 확실히 볼을 요리할 줄 안다. 그는 내가 지금껏 본 중에 가장 재능이 뛰어나고 숙련된 골퍼 가운데 1명이다. 하지만 그가 골프를 그만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뭔가.
그냥 그의 눈에서 그게 느껴지지 않는다. 투어에서 활동하는 걸 별로 즐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너무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앞으로 30년 후에도 그가 여전히 플레이를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모든 선수가 골프계를 평정할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부 위클리는 낚시를 하며 지낼 만큼 충분한 돈을 비축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선수들은 엄청난 긴장감 속에서 살아간다. 투어의 많은 선수들이 우승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그 좁은 문을 뚫고 정상에 서기란 정말 힘들다. 그런데 그게 차별성이지 않나? 정상에 서는 걸 가장 간절히 원하는 건 필 미켈슨 같은 사람이다. 그는 일요일에 90타를 기록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여전히 타이틀을 노린다. 그런가 하면 열기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때를 기다리는 걸 더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러다가 막판에 튀어나와 우승을 강탈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나서서 참견하려고 하지 않는다. 투어는 외로운 곳이다.


조던 스피스는 마스터스에서 독주 끝에 우승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1997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독주 끝에 우승했고, 일요일에는 최저타를 기록했다(69타를 기록한 4명 중 1명). 맨 앞에 앉아서 끝까지 앞자리를 지키려면 웬만한 배짱이 아니면 안 된다. 한두 라운드 정도 고개를 숙이고 긴장감을 벗어났다가 기분이 조금 나아지면 다시 정상에 오르기가 쉽다.


당신이 전성기를 누리던 때보다 요즘 우승하는 게 더 어렵다고 보는지.
그렇지 않다. 지금은 투어에서 우승하기가 그 어느 때보다 쉽다. 아무도 끝장을 내지 않는다. 막판이 되면 다들 떨어져 나간다.


우승하기가 더 쉬워졌다는 얘기인가. 투어의 선수층이 그 어느 때보다 두터워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다승을 기록하는 선수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리키 파울러가 세계 랭킹 톱10이라고 하지만, 그는 어디서도 이긴 적이 없다. (이 인터뷰는 파울러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 전에 진행됨) 그런데 어떻게 우승하기가 더 어렵다는 건가? 로리 맥길로이 같은 선수들이 우승하고 싶은 대회에서 우승하는 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어떤 선수가 마지막 그린을 향해 중요한 어프로치샷을 앞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는 당연히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아무렇게나 되라지. 그린을 빗나가서 3퍼팅을 하더라도 50만 달러는 챙기는데 뭐.’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18번홀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18번홀에서는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 된다. 결승선에 도달했으니까. 선수들이 떨어져나가는 건 보통 토요일의 전반 나인이다. 선수들은 그때 은행에 50만 달러가 입금됐다는 걸 알게 된다. 아니면 일요일 날 첫 홀에서 더블보기를 했을 때. 그러면 어떻게 하겠나? 안전한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하나? 내가 플레이를 했던 1990년대에는 훨씬 자주 우승하는 선수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1990년대에 10승을 했는데, 어쩌면 20승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 본인의 선수생활에 만족하나.
더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꽤 만족스럽다. 어쩌면 US오픈이나 브리티시오픈에서도 우승할 수 있었다. 마흔여덟 살이던 2010년에 휘슬링 스트레이츠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에서도 우승 기회가 주어졌었다. 그 밖에도 PGA 챔피언십에서는 여러 번 기회를 맞았었다. 하지만 호주에서 여기까지 온 걸 감안하면, 고교 졸업 후 집을 떠나 미국에 와서 그 오랜 세월을 혼자 지냈던 걸 감안하면, 잘 버텨냈다는 생각이 든다.


신체적으로 다승을 거두기에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렇지 못한 선수들이 많다. 타이거 우즈, 로리 맥길로이와 그런 선수의 차이점은 뭘까.
내가 보기에 타이거는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와 비슷하다. 그는 일단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빠르다. 당신과 내가 수영을 하는데 내 수영 속도가 더 빠르다면 내가 늘 이기지 않겠는가. 타이거의 전성기 때 늘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그는 사실상 실수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을 상대할 때는 선수들이 그가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기회가 있다고 느낀다. 로리의 경우 선수생활 초반에는 실수를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긴장감이 가장 고조되는 메이저의 후반 나인에서 1시간이면 어쨌든 모든 게 끝난다는 깨달은 것 같다. 거스타에서 13번홀의 티잉그라운드에 올라갔다면, 이제 1시간30분 후에는 이기든 지든 클럽하우스에 앉아 있게 된다. 그러면 전력질주를 할지 말지 마음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걸로 나는 모든 비밀을 공개한 셈이다(웃음).


리비에라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의 연장전에서 콜린 몽고메리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그때의 기억 중에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일요일에 64타를 기록한 것. 나는 독특한 마음가짐으로 그날 라운드에 임했다. 내 방식을 벗어나 아무것도 컨트롤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그날 리모콘으로 조종되는 사람 같았다. 나와 캐디 사이에는 거의 아무 얘기도 오가지 않았다. 우승을 하기 위해 그 모든 걸 감수해야 했고, 그러고도 연장전까지 치러야 했다. 그리고 콜린의 플레이도 정말 좋았다. 그 친구는 샷을 너무나 곧게 날렸고, 코스에서는 탁월한 도박사 기질까지 발휘하는 선수다. 그는 미켈슨처럼 덤벼드는 스타일이다. 1995년에 엘킹턴은 리비에라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 우승으로 가장 큰 상을 챙겼다. 그래서 판단했다. “내가 메이저에서 우승을 한다면 지금 여기일 것이다.”


연장 첫 홀에서 6미터 버디 퍼팅을 성공했다. 우승 내용에 대한 찬사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나? 메이저에서 일요일에 64타를 기록하면서 우승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나는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연연한 적이 없다. 7타 차로 앞서 나가다가 71타를 기록하고 우승했더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64타는 탁월한 라운드였다.


올해 PGA 챔피언십이 열리는 휘슬링 스트레이츠는 당신이 2010년에 우승 문턱에서 아쉽게 물러난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코스가 길고 벙커가 대단히 길다. 마흔여덟에 어떻게 그런 코스에서 선두 다툼을 할 수 있었나.
거기서는 멘탈이 중요하다. 수백 개의 벙커 중에서 내 플레이에 영향을 미친 것은 5개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는 그 코스가 사실상 단순했다.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3라운드에서는 타이거와 함께 플레이했는데, 그게 위압적이지 않았나.
언론에서는 어떤 선수들과 플레이하는 것에 대해 너무 호들갑을 떤다.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이렇게 생각했다. “조금 긴장이 될지 모르지만, 플레이를 하다 보면 어쨌거나 긴장이 되는 거야.” 잭 니클로스나 그렉 노먼, 타이거, 또는 그 누구와 플레이를 하더라도 늘 두 가지에 신경을 썼다. 그들의 플레이와 비교했을 때 내 플레이가 어떻게 보이는지 관찰하려고 노력했고, 관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생각은 내게 큰 도움이 됐다. 라운드를 마친 후(엘킹턴은 67타, 우즈는 72타를 기록했다) 타이거가 말했다. “정말 플레이를 잘하시네요. 이번 대회에서는 당신이 우승하겠어요.”


일요일에 16번홀에서 버디를 하면서 공동 선두로 나섰을 때는 정말 우승할 것 같았다.
다음 홀인 파3 17번홀에서 아마 내가 유일하게 깃대 뒤쪽으로 볼을 보낸 선수였다. 그러나 볼이 그린 뒤로 굴러 떨어지면서 보기를 했다. 18번홀에서 걸어 내려가면서 설계가인 피트 다이를 봤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아휴, 그 그린을 30센티미터만뒤쪽으로 더 늘렸다면.” 쉰 살이 넘으면 메이저에서우승을 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일요일에 최저타인 69타를 기록하며 우승을 확정지은 1997년 플레이어스가 본인의 선수생활에서 가장 우세했던 플레이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모든 걸 동원할 수 있었다. 모든 샷을. 스피스처럼 독주 끝에 우승하는 것을 능가하는 게 딱 하나 있다. 54홀 선두였는데 일요일에도 최저타를 기록하는 것이다. 아침 일찍 플레이에 나선 선수들이 60대 타수를 기록하면 늦게, 맨 마지막에 플레이에 나서는 선두는 그만큼 중압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도 그날의 최저타 스코어를 기록한다면? 대회에 그보다 더 큰 굴욕을 안기는 건 없다.


플레이어스에서 일요일에 74타를 기록한 스콧 호크에게 7타 차의 우승을 거뒀다. 두 사람이 1번홀에서 무슨 말을 주고받지 않았나.
스콧은 자신이 우승하면 쉰 살까지 투어 출전권을 확보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닥쳐. 이건 내 대회야. 넌 오늘 우승 못해.” (웃음)그것 말고 또 무슨 말을 하겠? 그의 말에 짜증이 났다. 그러면서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게 됐는데, 그날 조금 긴장이 됐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나오면서 조금 불안했다. 코스에도 티타임을 15분 남기고야 도착했다. 7번 아이언샷을 다섯 번, 드라이버샷을 두 번 한 다음에 곧장 티박스에 올라갔다.


트위터에 올린 글 때문에 비난을 사기도 했다. 2013년에는 파키스탄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을 했다가 논란을 일으켰고, 2014년에는 게이 축구선수인 마이클 샘에 대해 동성애 혐오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밖에도 여러 사례가 있었다. 그런 트윗을 올린 것을 후회하나.
모르겠다. 어떤 쪽이건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다들 트위터를 이유로 나를 계속 비난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켈리 틸먼의 타이거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지 않는다. (편집자 주: 2008년에 틸먼은 골프채널 방송 중 “우즈한테 도전하고 싶은 젊은 선수들은 뒷골목에서 그에게 린치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립 아이젠아우어가 독수리를 죽인 것에 대해서도 계속 비난하지 않는다. (편집자 주: 2007년에 아이젠아우어가 한 샷에 맞고 매가 죽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나에 대해서는 이미 벌금을 내고 출전정지를 받은 일에 대해서도 계속 비난한다. 나는 죄값을 치렀다.


하지만 당신이 거론한 두 사례는 일회성 사건이었다. 비난하는 쪽에서는 당신이 상습적이라고 주장하던데.
맞다. 하지만 모든 트윗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늘 트위터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내가 트위터에 쓴 글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지나치게 적용하는 것에 피곤해 한다.


그래도 이젠 예전에 비해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릴 때 더 조심하는 편인가.
물론이다. 지금은 내 트위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무슨 얘기를 해도 똑바로 나오질 않는다.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로 최근에 성전환 수술을 한 브루스 제너에게 보낸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가 한때는 스포츠 영웅을 다루는 잡지에 나왔는데 이제는 어디더라?’


푸르트 루프 박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푸르트 루프가 뭐지? 우리는 그의 긴 머리와 화려한 색깔의 커다란 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맨 처음에 쓴 트윗은 아니었다. 나는 제너의 얼굴을 푸르트 루프 상자에 넣어서 합성한 사진을 올린 어떤 사람에게 댓글을 달고 있었다. 내가 처음 꺼낸 얘기가 아니다. 여긴 아슬아슬한 곳이지만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브루스 제너에 대한 글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성전환이 실제로, 우리 모두가 그걸 포용하고 받아들이고 근사하다고 여겨야 한다는 생각을 떠먹여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정말 다들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된 건가?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됐나? 그럴 수도 있겠지.


얼마 전 커밍아웃을 한 마이클 샘이 “NFL 드래프트서 핸드백 던지기 항의를 주도했다”는 당신의 트윗이 올라온 후, 의 칼럼니스트인 질 페인터는 이런 글을 썼다.“엘킹턴의 혐오는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너무나 많은 혐오를 표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트윗을 팔로우하는 6만 명은 오로지 그가 이번에는 또 어떤 멍청한 얘기를 하는지 보려는 마음인 것 같다. 그의 대단한 인품과는 확실히 부합하지 않는다.” 이에대해 할 말이 있나.
나는 누구도 혐오하지 않는다. 늘 우리 아이들에게 인생에서 갖지 말아야 하는 것 세 가지가 시기, 질투, 미움이라고 말해왔다.


샘 관련 트윗 때문에 받은 투어의 자격 정지 기간이 얼마였나.
2주였다. 벌금도 1만 달러를 냈다.


투어에서 트위터를 그만두라고는 하지 않았나.
그런 말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 트윗을 누구에게 보낸 줄은 알고 있나?


안다. ESPN에게 보낸 맨션이지 않나. 샘을 전면에 내세운 것에 발끈한 것 아닌가.
그들은 계속해서 그를 “게이 스포츠맨”이라고 불렀다. “그 게이, 그 게이, 그 게이. 만평을 250개 올렸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1년 동안 매일 올렸다. 그들은 내가 잘한 건 다 잊었다. 나는 작년에 챔피언스 투어에도 67개의 만평을 그렸고, 투어를 홍보했고, 내 프로그램에도 내보냈다. 그런 일들을 해왔다. 그런데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다. 하나가 ‘쾅’, 터지면 오로지 그것만 기억한다. 투어를 홍보하기 위해 나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은 없다. 지금은 그런 걸 하나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게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건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출전 정지 처분을 받은 건 샘 관련 트윗뿐이었나.
그렇다.


다른 트윗과 관련해서는 투어의 징계를 받지 않았나.
이를테면 어떤 것 말인가?


2013년에 시니어 브리티시오픈에 참가했을 때 “캐디 2명이 파키들한테 강도를 당했다”고 쓴 트윗.
나는 강도를 당한 캐디를 지켜주려는 것뿐이었는데,내가 강도에게 욕을 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다. 인터넷에 ‘인종차별 욕설’을 검색하면 ‘파키’가 욕으로 간주되는 곳은 영국뿐이다. 호주에서는 그렇지 않다. 호주에서는 그 말을 많이 쓴다.


위에서 만평을 언급했는데. 그런 예술적인 면이 골프를 하거나 지켜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잘은 모르겠지만, 트위터에서는 문제를 일으킨다. 나는 만평가다. 생각의 속도가 빠르다. 내가 보는 것들은 전부 잠재적으로 만평의 소재가 된다. 그렇다보니 내 머리는 핑핑 돌아간다.


골프 스윙은 모범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타고난 스윙인가.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스윙에 대해 생각이 많다 보니 스윙이 더 발전하지 못한 것 같다. 나는 내 스윙을 잘 안다. 호머 켈리가 쓴 <골핑 머신>을 가지고 10년간 연구를 했다. 재키 버크를 비롯해서 많은 교습가들의 지도도 받았다. 많은 스윙을 배우고 연구했는데, 덕분에 스윙이 어떻게 작용하고 어떤 원리로 효과를 발휘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그리고 나는 하체가 정말 튼튼한데, 그건 골프에 큰 도움이 된다. 다리가 받쳐준 덕분에 팔을 휘감고 모든 걸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립이 탁월하면 페이스를 아주 안정되게 지할 수 있다. 나는 열두 살 정도부터 골프를 했는데, 늘 플레이를 잘했다.


그러니까 재능을 타고났다.
(웃음)말인즉슨, 내가 곱슬머리인 것처럼 그냥 그 능력을 처음부터 타고났느냐는 뜻인가?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30퍼센트는 아마도 노력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괜찮나.
우리 아들한테 물어보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버지의 스윙은 90퍼센트가 머리에 담겨 있다. 90퍼센트는 전투견이고 10퍼센트가 스윙이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할 것이다. “아버지의 스윙은 아무 의미가 없다.”(웃음)


가장 높이 평가하는 건 누구의 스윙인가.
리 트레비노와 잭 니클로스. 얼마 전에 우리는 샌안토니오의 한 대회에서 트레비노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잭은 처음 트레비노의 스윙을 봤을 때 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사람은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 저런 스윙으로는 안 돼.” 그리고 잭이 개리 플레이어의 스윙을 처음 봤을 때, 그의 백스윙과 구부린 손목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런 스윙을 하는 사람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야.” 그리고 지금 그런 선수가 있는데, 바로 더스틴 존슨이다. 그러니까 골프 스윙이라는 건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메이저에서 한 번만 더 우승을 했다면 명예의 전당 입회 후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찬반 토론의 대상이 되고 싶은가.
그것도 나쁘지 않다. 잭과 아널드, 개리, 그리고 리까지. 그들은 진짜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만한 사람들이다. 마크 오메라와 데이비드 그레엄은 명예의 전당급 플레이를 펼쳤지만 잭 니클로스와 같은 수준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 프레드 커플스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선 안 되지.” 하지만 그는 활동할 당시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만했다. 나도 1990년대에 플레이한 선수들 중에는 최고에 속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 그러니까,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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