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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2015 브리티시오픈] 시대를 초월한 코스의 간략한 역사
고귀하고 유서 깊은 올드 코스에는 골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By Kevin Cook
이곳의 이름이 ‘올드 코스’인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스코틀랜드의 양치기들은 맥베스(셰익스피어의 소설에 맥베스가 아닌 실존했던 11세기의 왕) 통치 이후 1~2세기 즈음에 세인트 앤드루스 인근에서 토끼굴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며 무료함을 달랬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시절부터 올드 톰과 영 톰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클럽과 그곳의 홈 코스, 그리고 골프의 플레이 방식도 점차 변모해왔다. 그야말로 로열&에인션트(Royaland Ancient)라는 표현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이 코스의 역사를 아홉 가지의 순간에 담아 정리해봤다.


1457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는 신하들이 골프만 하고 궁술 연습을 게을리 한다는 이유로 골프를 금지했다. 왕은 골프를 “완전히 거부하고 무시하라”고 공표했다. 하지만 골퍼들은 아랑곳없이 플레이를 계속했다.


1500년대 중반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프랑스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클럽을 들고 다니는 시종을 남동생이라는 뜻의 ‘카데’라 불렀고, 이게 ‘캐디’의 어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1567년에는 남편인 단리 경이 살해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링크스에서 플레이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 추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1600-1850년
최초의 골프볼은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250년에 걸쳐 깃털을 뭉쳐 넣은 작은 가죽 주머니의 형태가 됐다. 일단 실크해트 하나를 채울 만큼의 거위 털을 끓였다. 그런 다음 가슴에 나무와 가죽으로 만든 보호 장구를 차고, 그 보호 장구 앞쪽 홈에 맞는 송곳을 이용해 온 힘과 체중을 실어 깃털을 주머니에 가득 채웠다. 그 다음 볼을 꿰맸다. 깃털이 마르면서 팽창하면, 볼이 단단해지고 둥글어졌다. 볼 하나를 만드는 작업은 자칫 잘못하면 송곳에 찔리고 갈비뼈가 부러질 수도 있을 정도로 고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했다.


1800년대
한 세기 넘게 골퍼들은 올드 코스에서 종종 반대로 플레이를 했다. 로드홀의 그린에서 16번홀 그린을 향해 플레이를 진행하는 식이었다. 코스를 뒤집어 보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곳에 있는 것 같은 일부 벙커와 다른 특징들이 이해가 되는데, 현지인들 중에는 지금도 이따금 그렇게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


1860년경
최초의 프로 골퍼는 전부 캐디였다. 일부는 낮에 술을 마시고 밤이면 고주망태가 되기도 했다. 해마다 가을이면 그들은 올드 코스에서 캐디들만의 토너먼트를 열었다. 어떤 해에는 토실토실한 크리스마스 거위가 1등 상으로 주어졌다. 2등은? 위스키 한 병.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선수들은 위스키를 차지하기 위해 18번홀에서 일부러 엉망으로 퍼팅을 하곤 했다.


1860-1870년대
브리티시오픈이 처음 열린 곳은 올드 코스가 아니었다. 처음 열두 번은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위치한 프레스트윅 골프 클럽에서 열렸다. 하지만 1868년부터 1870년까지 브리티시오픈에서 3연승을 하면서 토미 모리스(올드 톰의 아들)은 챌린지 벨트를 간직할 권리를 얻었다. 1871년 대회는 프레스트윅에서 새로운 벨트와 트로피를 만들기 위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려고 해서 취소됐다. 결국 R&A와 명예로운 에딘버러 골퍼협회에서 클라레 저그의 제작비용을 댔다. 그러면서 대회를 순회 방식으로 치르게 됐다. 순회 명단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단 돈 30파운드를 투자한 덕분에 세인트 앤드루스는 골프의 중심지가 됐다.


1871년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올드 코스의 그린 주변에 호롱불을 밝히고 볼에 인체에 유독한 인광 물질을 칠해 야간 골프를 창시했다. 하지만 야광 물질이 골퍼의 소매와 마찰을 일으켜서 손에 불이 나는 바람에 라운드는 끝나버렸다.


1875년
영 톰 모리스는 세인트 앤드루스 역사상 최악의 눈보라 속에서 엿새 동안 208홀의 마라톤 매치를 치러냈다. 눈발에 사라지더라도 잘 보이도록 구타-페르카 볼에는 빨간색 물감을 칠했다. 드라이버샷을 하는 순간 볼이 갈라지는 일도 있었다. 모리스는 우승을 거뒀지만 2주 후 스물네 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18-19세기
한때 올드 코스는 22홀이었다. 1760년대에 이곳이 너무 쉽다고 판단한 R&A는 처음 네 홀과 마지막 네 홀을 둘과 둘로 묶어서 총 18홀을 만들었고, 이것은 결국 세계 표준이 됐다. 그밖에 올드 코스에서 의도하지 않게 골프의 운명으로 결정된 요소로는 티잉그라운드와 어쩌다 보니 4.25인치였던 그린의 홀 등이 있다. 현지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올드 톰 모리스가 첫 번째 홀의 컵으로 사용하기 위해 용도를 변경한 배수관의 폭이 그 크기였다고 한다. 한편 머셀버러 지역의 골퍼들은 자신들이 먼저 그 크기를 표준으로 정했다고 주장한다. R&A는 1891년에 4.25인치를 공식 표준으로 지정했다.



자료제공골프매거진


입력날짜 : 2015-07-22 16: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