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BERS BAY

파4 10번홀. US오픈은 1998년 사할리 컨트리클럽 이후 북서부에서 개최되는 첫 번째 메이저 대회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US오픈으로 체임버스베이를 선택한 USGA의 수장인 마이크 데이비스는 확실한 업적을 남길 수 있게 됐다.
올해 US오픈은 지금껏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과감하게 선택했다. 북서부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체임버스베이는 선수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코스다. “체임버스 어디라고요?” USGA가 세계 최고의 선수들조차 이렇게 되물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링크스 코스를 개최지로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존 노빌이 영화 <틴 컵>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맡았던 빈털터리 연습장 프로라는 인물을 구상할 때, 그의 출신을 텍사스 서부로 설정하는 건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그는 생각에 잠긴 것처럼 느릿한 남부 특유 말투를 구사하며 US오픈의 우승을 노리는 다크호스였다.

하지만 <틴 컵>의 감독인 론 셸턴과 각본을 공동집필한 노빌에게 진정한 영감으로 작용한 건 어린 시절을 보낸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퍼블릭 코스들이었다. 노빌의 가족은 이스트모얼랜드 바로 인근에 살았는데, 그의 아버지는 목요일마다 일이 끝나면 친구들과 손카트를 끌고 페어웨이 옆으로 침엽수들이 늘어선 이 아름다운 시립 코스에서 나인홀 플레이를 즐겼다. 그 다음 클럽하우스에서 올림피아 맥주에 담배를 곁들여 피로를 풀곤 했다. 바로 이런 게 북서부 태평양 연안의 골프다.

“이곳에는 정말 멋진 평등의 문화가 있다.” 오리건 중부에서 만난 노빌은 데슈트 강 위로 떠오르는 달과 때마침 계곡의 트래킹 코스를 올라가고 있는 한 등산객의 풍경을 내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북서부가 대체로 그렇지만, 골프코스에서는 그게 더 크고 더 근사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곳에도 회원제 코스들이 많지만, 그건 사실상 퍼블릭 코스의 분위기다. 여기에는 그런 느낌이 있다.” 노빌이 지적했듯이 전통적으로 엘리트 기질이 강한 USGA는 비교적 거친 북서부에서는 지금껏 한 번도 대회를 개최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US오픈이 전국적이라는 건 말뿐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렇지 않다. 올해 USGA는 기존의 전통을 과감하게 깨고 체임버스베이를 개최지로 선택했다.

시애틀에서 남쪽으로 45분 거리에 있는 푸젯 해협에 펼쳐진 다부지고 아름다운 링크스 코스인 이곳은 누구나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카운티 소유의 시설이다. 2007년 개장했을 때부터 깊은 인상을 받은 USGA 관계자들은 8개월 만에 이곳을 향후 US오픈 개최지로 결정했다. 1970년의 헤이즐틴 이후 사실상 신설 코스에서 US오픈을 개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북서부 골퍼들의 기대감은 하늘을 찌른다. “그럴 때가 됐다.” PGA 투어에서 7승을 거뒀으며, 지금은 NBC스포츠에서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피터 제이콥슨은 포틀랜드 출신이다. “US오픈과 메이저대회는 그 동안 미시시피 동부에 집중됐었다. 서부에서 개최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제1회 US오픈이 로드아일랜드의 뉴포트에서 열린 1895년 이후 전쟁으로 중단된 경우를 제외하면 이 대회는 지금까지 총 114회 개최됐다. 그 중 1/3 이상이 대서양 중부에서 열렸고, 시네콕이나 윙드풋, 오크몬트, 메리온, 그리고 발투스롤 같은 유명한 회원제 클럽이 이 대회의 대표 코스로 알려졌다. 하지만 US오픈이 북서부를 외면했다고 해서 이 지역이 지닌 골프의 역사가 빈약한 건 결코 아니다. 1899년에 창설된 북서부 태평양 골프협회는 필라델피아와 뉴욕시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지역 골프협회다.

골프의 황금기에 만들어진 이 지역의 코스들 중에는 시대를 앞서간 시카고 출신의 설계가 챈들러 이건의 작품이 많다. 북서부 골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이건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골프를 했다. 하버드에 재학 중이었던 1902년에는 대학연합팀 소속뿐만 아니라 개인전 타이틀도 차지했다. 2년 후에는 최초로 US오픈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프로 골퍼 생활을 접고 켄터키로 가서 철도 사업을 하던 이건은 1911년에 서부에서 새출발을 도모했다. 그는 오리건주 메드포드에 있는 과수원을 매입했지만, 머지않아 다시 골프에 매료됐다. 그는 프로 생활을 재개하는 한편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됐다. 플레이 공간이 부족한 지역에 코스를 설계하는 것이었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이 이스트모얼랜드였다. 그리고 포틀랜드를 대표하는 윌러매트 강가의 웨이벌리 컨트리클럽을 재설계했다. 이곳은 피터 제이콥슨이 캐디와 그라운드 관리직원으로 일했던 곳이기도 하다.

투어는 1940년대에야 북서부를 찾았다. 1944년에 PGA챔피언십이 스포케인에서 열렸다. 2년 뒤에 포틀랜드 골프클럽에서 열린 PGA 투어에서는 벤 호건이 자신의 첫 메이저 우승을 거머쥐었다. 1947년에는 라이더컵이라는 골프 역사를 쓰게 됐다. 식품도매상을 하던 로버트 허드슨은 전쟁으로 인해 10년간 중단됐던 이 대회를 되살렸다. 그는 포틀랜드 골프클럽에 대회를 유치한 다음 양쪽 팀의 경비를 지원했다.

이듬해에는 포틀랜드오픈이 시작돼 1966년까지 이어졌으며, LPGA 투어의 포틀랜드클래식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1986년에는 제이콥슨이 프레드 메이어 챌린지라는 자선대회를 설립했는데, 첫 대회가 열린 포틀랜드 골프클럽은 큰 고도차와 더글러스전나무 사이로 휘어지는 도그렉이 특징인 전형적인 북서부 태평양 연안의 코스였다. 제이콥슨은 대회의 주최자로서 잭 니클러스와 리트레비노, 그리고 그렉 노먼 같은 선수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3월 초까지도 뉴저지주 파힐스에 위치한 USGA 본부에는 아직 희끗희끗한 잔설이 남아 있었다. 퍼팅 그린을 포함해 잘 관리된 부지, 신고전주의와 현대적인 스타일이 어우러진 건물과 그 사이의 산책로 때문인지 이곳의 풍경은 컨트리클럽과 북동부의 대학 캠퍼스를 합쳐 놓은 인상이었다.

USGA의 전무이사인 마이크 데이비스는 2층에 있는 자신의 넓은 집무실 회의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한쪽 귀퉁이에는 붉은 등나무 바구니가 특징인 메리온의 깃대가 서 있었다. 데이비스는 메리온에서 열린 2013년 US오픈 보고서를 검토했는데, 필라델피아 교외의 주택가가 코스를 포위하듯이 바짝 붙어 있는 나머지 개인주택의 거실을 선수용 라운지로 사용했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US오픈을 같은 곳에서 열었는데, 파인허스트의 No.2에서 연이어 개최했다.

하지만 데이비스의 가장 큰 도박은 올해의 US오픈이 될지도 모른다. 고도 변화가 크고 커다란 벙커에 어프로치샷의 쿠션 역할을 해주지도 않고 퍼팅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페스큐 그린을 갖춘 이 단단한 링크스 코스는 많은 선수들을 당혹스럽게 만들 게 분명하다. 데이비스도 그 점은 순순히 인정했다. “위험 요소가 있을까?” 데이비스는 이렇게 물으면서도 그 표현을 사용하는 게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그럴 것 같다. 우리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코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플레이가 펼쳐질지 짐작하기 어렵다. 오크몬트라면 코스가 젖었을 때, 건조할 때, 바람이 불거나 부드러울 때 어떤 식으로 플레이가 펼쳐질지, 거의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홀 위치가 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알고, 러프의 높이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도 알았을 것이다.”

그는 체임버스베이를 언급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곳은 미지의 요소가 많다.” 이전에도 USGA 관계자들은 북서부의 코스를 최소한 여섯 군데는 잠재적인 US오픈 개최지로 검토했는데, 유서 깊은 유진 컨트리클럽, 제이콥슨이 설계한 오리건 골프클럽, 그리고 시애틀 출신인 프레드 커플스가 설계에 참여한 뉴캐슬 골프클럽도 후보로 거론됐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후보였던 펌프킨리지는 US오픈 유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포틀랜드 인근의 36홀짜리 준회원제 클럽이다. 이곳은 1992년에 개장하고 불과 한 달 만에 1996년 US아마추어 개최지로 선정됐다. 그리고 그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는 스티브 스콧을 연장 홀에서 물리치고 3연속 아마추어 타이틀을 차지하고 몇 주 후에 프로로 전향했다. 그때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던 갤러리 중에는 나이키의 공동 설립자이자 오리건 출신인 필 나이트가 있었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펌프킨리지가 US오픈을 유치하는 건 정해진 순서인 것 같았다. 1996년 아마추어 대회기간에 당시 USGA의 전무이사였던 데이비드 페이는 “이곳에서 US오픈을 개최하는 데 걸림돌이 될 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USGA는 1997년과 2003년에 US여자오픈을 두 번이나 치를 정도로 펌프킨리지를 높이 평가했다. USGA 관계자들과 나눴던 얘기들을 감안했을 때 클럽의 공동설립자 게이 데이비스는 펌프킨리지가 US오픈 개최지로 선정되는 건 이제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날은 끝내 오지 않았다. 펌프킨리지뿐만 아니라 다른 후보지들도 US오픈이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부합하지 못했다고 마이크 데이비스는 말했다. 북서부 코스들은 물이 더디게 빠지는 빽빽한 토양이 많은데 US오픈이 열리는 6월 중순이 우기라는 점도 문제였다.

US오픈 코스는 길어야 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에게 걸맞은 난이도를 갖추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갤러리를 수용하고 부대시설을 설치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또한 공항과 호텔도 가까워야 한다. “북서부 태평양 연안에는 정말 탁월한 골프코스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데이비스는 말했다.



1990년 마이크 카이저는 모래 부지를 찾아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시카고의 카드회사인 리사이클드 페이퍼 그리팅스의 공동설립자인 카이저는 링크스 코스를 만들고 싶었고, 그에 필요한 자원을 갖추고 있었다. 같은 시카고 출신인 챈들러 이건처럼 카이저도 북서부에 영원한 발자취를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영국의 링크스 코스에 매료된 그는 여름 별장이 있는 미시건 호수 근처에 링크스 스타일의 회원제 나인홀 코스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의 골프에 최대한 근접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 바닷가에 코스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카이저는 가혹함이 아닌 플레이의 재미를 추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수준 높은 미국 코스들과 달리 일반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코스를 만들고 싶었다. 몇 달에 걸쳐 양쪽 해안을 샅샅이 훑고 나서 거의 포기하기 직전이었던 카이저는 1991년 오리건 남부에서 내륙과 바다를 잇는 링크스의 모든 특징을 갖춘 부지를 발견했다. 그곳을 매각한 사람들은 오리건의 유명한 토지사용 제한법에 때문에 골프 리조트 개발 허가를 얻어내는 데 실패했다. 카이저는 돌파를 시도했다. 6년의 험난한 시간 동안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코스가 원시의 아름다움을 지닌 부지를 훼손하기는커녕 그 가치를 더 높이고 보존할 거라고 주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그 후 15년 동안 카이저는 밴돈 듄스 골프리조트에 18홀 네 곳과 13홀짜리 파3 코스 한 곳을 만들었다. 각 코스는 걸어서만 플레이할 수 있다. 그리고 모두 가뭄에 강하고 브리티시오픈의 그린을 단단하고 빠르게 만들어주는 결이 가는 페스큐를 식재했다. “이 품종은 서서히 자라고 물을 조금만 줘도 된다.” 스코틀랜드 출신이며 1999년에 이 리조트에서 최초로 대회를 유치한 밴돈 듄스의 설계가인 데이비드 맥레이 키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볼이 튀어 오르고 구르고 달려가면서 온갖 상황이 펼쳐진다.” USGA 관계자들은 즉시 밴돈에 관심을 가졌고, 마이크 데이비스는 수도 없이 이곳을 찾아 코스가 건설되는 동안 카이저와 함께 부지를 돌아봤다. “카이저는 시대를 앞서가는 비전을 지닌 사람이다.” 데이비스는 말했다. “그가 원칙을 고수하고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은 골프계에게도 다행한 일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피어스카운티의 군수인 존 레이든버그가 모래와 자갈을 준설하다 방치된 채 버려져 있던 푸젯 해협을 부지로 골프코스를 개발해서 관광산업을 증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에게 영감으로 작용한 두 곳은 뉴욕의 시립 공원형 코스로 US오픈을 개최한 최초의 진정한 퍼블릭 시설인 베스페이지, 그리고 밴돈 듄스였다.

레이든버그는 자신과 피어스카운티의 관계자들은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되물었다고 말했다. “밴돈 듄스가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인가? 그곳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 과정에서 레이든버그가 확실히 알게 된 건 북서부의 태평양 연안지역을 기상학자들은 해양성 서해안 기후라고 부른다는 사실이었다. 영국의 섬들을 비롯해 세계에서도 몇 군데에 불과한 이 기후는 온화한 날씨, 그리고 계절적인 안개와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부슬비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높은 습도가 특징이다. 그리고 밴돈 듄스에서 확인했듯이, 결이 가는 페스큐가 자라는 데 이상적인 기후이기도 하다.

레이든버그는 USGA가 US오픈 개최지 명단에 퍼블릭 시설을 더 많이 포함하고 싶어 하며 밴돈 듄스에 매료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밴돈 듄스는 US오픈처럼 대규모 대회를 유치하기엔 너무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북쪽의 포틀랜드까지는 자동차로 4시간 넘게 걸렸다.

레이든버그는 이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그들은 북서부에서 US오픈을 개최한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페스큐 잔디에서 플레이를 해본 적도 없고, 부대시설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밴돈으로 가는 일도 없을 거야.” 그때부터 체임버스베이와 관련된 카운티의 모든 결정은 US오픈 유치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에게 설계를 의뢰했을 때 레이든버그는 이 유명한 설계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플레이를 하지 않는 사람 5만 명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코스를 만들어주십시오.”

2000년에 존스는 산업용 부지를 넓은 링크스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설계도를 완성했다. 250에이커에 달하는 이곳의 면적은 메리온의 두 배에 해당한다. 존스는 오랜 친구이자 당시 USGA의 서부 지부장을 맡고 있던 론 리드를 현장으로 초대했다. 리드는 부지의 규모, 푸젯 해협과 그 너머의 올림픽 산맥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풍경에 감탄했다. 해협 옆으로 지나는 벌링턴 노던 산타페 철로와 15번홀의 그린 뒤로 보초처럼 서 있는 외로운 전나무 한 그루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몇 달 뒤에 데이비스를 포함한 USGA의 고위 관계자들을 데리고 다시 한 번 현장을 방문했다.

“우리는 다듬어지지 않은 백사장을 바라봤다.” 리드는 말했다. “마치 꿈이 실현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몇 가지 요소들이 더 뒷받침되어야 했고, 운이 따랐는지 결국 그렇게 됐다. 2010년 US아마추어와 2011년 US오픈을 개최할 예정이었던 콩그레셔널 컨트리클럽이 아마추어 대회를 포기했다. 2015년 US오픈을 유치하려던 윙드풋도 2006년 US오픈으로 이스트 코스를 거의 사용할 수 없었다는 회원들의 불만에 따라 유치를 포기했다. 그러자 갑자기 USGA의 대표적인 두 대회, 2010년 US아마추어와 2015년 US오픈의 개최할 곳이 없어진 상황이 됐다.

레이든버그는 체임버스베이를 개장하고 6개월뒤인 2007년 12월에 데이비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챔피언십 개최 일정에 공석이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레이든버그는 밤을 꼬박 새우며 USGA에 보내는 두 대회의 유치 의향서를 작성했다. 두달 뒤에 USGA는 체임버스베이에서2010년과 15년에 각각 아마추어와 US오픈을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깜짝놀랐다.” 레이든버그는 말했다.

그는 북서부 태평양 연안이 US오픈을 개최하기에 손색이 없을 거라고 데이비스를 설득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성공적일 텐데, 이 지역은 월드시리즈나 슈퍼볼이나 월드챔피언과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신이 나서 대회에 참가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보통 5,000명이 다 차기까지 석 달씩 걸리던 자원봉사 지원이 36시간 만에 마감됐다.

하지만 가장 흥분을 감추지 못한 사람은 기존의 US오픈 개최지보다 체임버스베이에서 보다 뚜렷한 업적을 남기게 된 마이크 데이인 것 같다. 그는 체임버스베이의 역사적인 가치를 2002년 개최지였던 베스페이지 블랙(그의 전임자였던 데이비드 페이가 주도한)에 비교했다. USGA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너저분하기로 유명했던 블랙은 이제 현지인과 골프 순례자들이 모두 좋아하며 즐겨 찾는 자랑거리가 됐다.

데이비스는 올해 대회로 인해 체임버스베이에도 이와 비슷한 지속적인 효과가 발생하고, 링크스 코스의 가치를 더욱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코스 선정이 USGA가 풍부한 역사를 지녔으면서도 무관심에 방치됐던 북서부 태평양 연안과 화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나는 오크몬트가 더 좋다거나 페블비치가 더 좋다고 말하더라도, 그건 상관없다. 그런 의견이야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했다.





미지의 도박, 체임버스베이
대부분의 투어 선수들은 아직 이곳을 경험한 적이 없지만, 그들의 견해는 페어웨이만큼이나 견고하다.


신설 코스에서 US오픈이 열리는 건 1970년 헤이즐틴 이후 체임버스베이가 45년 만에 처음이다. 그렇다면 프로들은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가 자갈과 모래 준설지에 만들어 놓은 보석 같은 링크스 코스에 대해 조심스럽게 낙관하는 입장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플레이를 해본 적이 없다.” 베테랑 선수인 스펜서 레빈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곳에 대해 좋은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불평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1년 내내 지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코스에서 불과 8킬로미터 떨어진 타코마에 거주하는 마이클 퍼트남은 투어에서 10년간 활동해왔다. 2007년에 문을 열었을 때부터 푸젯 해협에 위치한 이 퍼블릭 시설은 이용빈도가 너무나 높은 나머지 2010년에 결이 가는 페스큐를 식재한 그린 가운데 일부는 사실상 흙이 드러나고 이끼가 덮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곳은 잔디를 다시 식재해야 했다.

포틀랜드 출신인 벤 크레인(사진)은 워싱턴 주 출신인 라이언 무어가 6~7년 전에 그 코스에서 주최한 자선대회에 참가했다가 냉담한 심정으로 떠났다고 했다. “사할리와 다른 점이라면 이곳은 북서부 태평양 연안을 대표할 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USGA가 그곳을 선정했다는 게 놀랍다.” 체임버스베이는 1998년 PGA챔피언십 개최지인 사할리 컨트리클럽과 많은 점에서 다르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점은 나무가 없다는 것이다. 녹음이 푸르른 북서부의 전형적인 공원형 코스에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자란 상록수가 즐비한 반면, 체임버스베이에는 나무가 단 한 그루뿐이고(파3 15번홀 그린 뒤에 외로이 서 있는 더글러스 전나무) 그나마 하늘을 찌를 듯이 높지도 않다. 푸젯 해협 옆에 위치해 있다는 걸 제외하면 코스 자체에는 워터해저드가 없고 페어웨이가 넓은 것도 특징이다.

현지 출신에게서 초반에 정보를 얻지 못한 선수들은 낙관적인 입장을 취한다. “사진으로 봤더니 볼이 빠르게 굴러가고 불규칙 바운스가 나올 것 같았다.” 스튜어트 싱크의 말이다. “2006년의 호이레이크와 비슷할 것이다. 그곳에서 40년 만에 열린 브리티시오픈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곳을 열심히 파악해야 했고, 그렇게 했다. 우리는 적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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