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골프는 겨울에 적합한 운동은 아니지만 골퍼의 열정은 겨울이라고 비켜가지 않은 것 같다. 겨울이 오면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은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났다. 그곳에서 길게는 한 달도 지내다 오는 사람도 있고 휴가를 얻어 2주 정도 골프를 즐기다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많은 골프장은 이 시기가 비수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겨울 골프장은 이벤트도 많았고 그린피 할인이나 서비스도 좋았다. 아침 일찍 내방하면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도 있었고 여성들끼리 오면 한 사람의 그린피를 면제해 주기도 했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골퍼들에게 좋았던 시절이었다. 

추운 겨울이어도 동남아로 떠날 수 있었고 좀 춥더라도 고국을 지키며 한가한 겨울 골프를 느낄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이었다. 불과 1년 전의 기억이지만 아주 멀리 와 버린 느낌이다.

이제 골프장 예약은 계절과 관계없이 치열하다. 따뜻한 남쪽을 찾아 떠날 수 없어 선택지는 좁아졌고 20·30세대의 출현으로 수요는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퍼들은 미련을 못 버리는데, 연습장에 가보면 그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추운 날 무슨 영광을 보려고 저리도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의 스윙에 도취되어 끊임없이 반복하는 사람을 보면서 손을 녹이려고 난로를 찾는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골프가 지닌 매력과 중독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겨울 골프장은 황량하다. 비어있는 페어웨이와 잎을 떨군 나무들이 빈 하늘을 더 쉽게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누렇게 변한 잔디 색깔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 썰렁하게 한다. 지난여름 파릇파릇하던 푸른 잔디는 누렇게 변하고 회갈색의 퇴색된 산의 풍경도 적요롭게 느껴진다.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골프한국


골프장의 잔디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한국형 잔디라고 말하는 중지와 야지 그리고 켄터키 블루 그라스, 벤트 그라스로 대표되는 양잔디로 구분된다. 

한국형 잔디라고 말하는 떼장 잔디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잘 자라고 관리도 편해서 많은 골프장에 식재되어있다. 여름철 스포츠머리처럼 잘 깎인 페어웨이는 공을 살짝 띄워주기에 샷을 하기 편하다. 이 잔디는 특히 포복형으로 누워서 줄기 번식을 하는데 이는 뒤땅을 치더라도 미끌리면서 공을 타격해줘 거리의 손해가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가을철에 접어들면 휴면기로 들어가 색상도 누렇게 변하면서 데쳐진 부추처럼 힘이 없어진다. 그리고 찬바람이 남은 물기를 날리면 마른풀로 남게 된다. 이 한국형 잔디는 잔디의 시절과 마른풀의 시기를 통해서 골프를 즐겨야 할 때와 쉬어야 할 때를 색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양잔디는 겨울철에도 푸르름을 유지하는데 추워질수록 선명도는 떨어진다. 겨울철 제주도에 가면 이런 잔디를 만날 수 있는데 켄터키 블루그라스, 벤트 그라스, 버뮤다 그라스, 페스큐 등이 있다. 

한지형 잔디라 더위에 약해서 여름이 긴 우리 기후에는 관리가 쉽지 않다.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회원제 골프장에 많이 식재된다고 한다. PGA, LPGA 중계를 보면 선명한 색상의 말끔한 잔디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모두 양잔디다. 

이 잔디는 포기 번식을 해서 웨지 샷을 할 때 어김없이 돈가스 한 조각만큼의 디봇 자국을 만든다. 뒤땅을 쳤을 때 미끌리지 않고 땅에 박힌다. 용서나 관용이 없다. 그러나 정타에 맞췄을 때 손바닥에 전해지는 타구감은 일품이다. 

아마추어 골퍼 대부분은 자신의 샷으로 생긴 디봇을 모른 채 지나간다. 이것은 좋은 매너가 아니다. 뒤에서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디봇을 메꿔주는 아량과 여유는 있어야 한다.

▲사진=골프한국

20년 이상 골프를 즐긴 고수들은 겨울 골프를 이렇게 정의한다.
'겨울 골프의 관건은 바람이다. 그리고 스코어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겨울 날씨는 바람에 따라 천양지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 차이는 햇볕이 비치는 양달과 그늘진 응달처럼 극명하다. 냉랭한 공기도 멈춰있을 때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바람 불지 않는 날 햇빛을 마주 보고 걷다 보면 뜻밖의 평화를 얻을지 모른다.

겨울 골프에서 정상적인 게임을 하려고 생각한다면 오류다. 모든 것이 얼어버린 동등한 조건이란 전제는 1번 홀을 지나면서 쓸모없게 된다. 페어웨이도 얼어있고 벙커도 그린도 얼어버린 환경에서 자신에 찬 샷은 무용지물이 된다.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고, 안다 하더라도 속수무책이다. '굿 샷~'을 외치고 올라간 그린에서 사라진 공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다반사다. 

겨울 골프는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사람의 기대를 여지없이 뭉갠다. 모든 상황은 '운'에 의존해야 편해진다. 그리고 임기응변과 순간의 지기에 능한 사람이 유리하다. 한 번은 벙커에 빠진 공을 퍼터로 꺼내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겨울 골프는 진지하기보다 즐길 줄 알아야 재밌다. 룰도 명량 골프로 적용하여 즐긴다면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은 열사의 사막에서도 매트를 들고 다니며 친다고 한다. 시베리아 눈 속에서 골프를 쳤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날씨가 추워졌지만 겨울 골프는 이제 시작이다. 두꺼운 옷차림으로 얼어버린 호수를 바라보며 겨울을 만끽할 시간이다. 귀마개도 양손 장갑과 핫팩도 겨울이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기억하자, 다시 오지 않을 이번 겨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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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장보구: 필명 장보구 님은 강아지, 고양이, 커피, 그리고 골프를 좋아해서 글을 쓴다. 그의 골프 칼럼에는 아마추어 골퍼의 열정과 애환, 정서, 에피소드, 풍경 등이 담겨있으며 따뜻하고 유머가 느껴진다. →'장보구의 빨간벙커'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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