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 맥길로이가 2020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조조 챔피언십 첫날 1라운드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18번 홀은 446야드 파 4홀이었다.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선 로리 맥길로이는 드라이버를 잡았다. 길게 쳐서 웨지 샷으로 그린을 공략하려는 의욕이 앞선 탓인지 공은 스폿에 맞지 않았고 오른쪽 큰 나무가 있는 숲으로 날아갔다. 

날아간 공을 따라가던 카메라가 나무에 맞고 뒤로 흐르는 공을 재빠르게 잡아낸다. 공은 카트도로 뒤쪽까지 내려와서 멈춘다. 나무가 병풍처럼 홀을 막아서 페어웨이도 그린도 보이지 않는 곳이다. 더구나 그린을 에워싸고 있는 호수 때문에 한 번에 그린까지 가기엔 위험 부담이 있는 위치다. 

잠시 후, 나타난 맥길로이는 핀을 향해 직접 갈 수 없음을 감지하고 나무를 넘겨 페어웨이로 레이업 샷을 한다. 공은 페어웨이로 나왔고 면밀히 계산한 그는 핀을 직접 보고 친다. 

살짝 짧은 공은 그린에 못 미치고 러프에 떨어진다. 맥길로이는 아쉬워한다. 앞으로 걷다가 쥐고 있던 클럽을 땅에 박듯이 잠깐 고개를 숙였다 일어선다. 손에 쥐고 있던 클럽이 꺾여있다. 다시 걸으며 꺾인 클럽의 반대쪽으로 획 제친다. 클럽이 댕강 끊어지며 두 동강 난다. 화면은 다시 맥길로이의 행동을 천천히 보여준다.

러프에서 칩 인을 시도하던 그는 또 실수를 한다. 더블 보기로 18번 홀을 마감한다. 셔우드CC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조조 챔피언십 1라운드 때 일어난 일이다.


골프를 시작한지 2년쯤 되던 해, 비슷한 비기너였던 후배와 라운드를 한 적이 있다. 

평소 성격이 밝고 명량하지만 좀 급한 게 흠인 후배는, 그날 샷이 잘 되지 않는지 농담도 하지 않고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름의 햇살이 산 너머로 사라지고 짙은 보라색 어스름이 내리고 있을 때였다. 

에어 펌프로 먼지를 털고 나오는데 후배가 캐디와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그는 한쪽 무릎을 꺾어 각목을 격파하는 태권도 선수처럼 양손을 벌려 드라이버를 잡고 무릎으로 끌어당겼다. 

드라이버 샤프트는 꺾이지 않았고 탄성 좋은 대나무처럼 휘청거렸다. 샤프트가 꺾이지 않자 화가 났는지 헤드를 바닥에 놓고 한 발로 밟고 손을 당겨 꺾었다. 사프트는 쩍 소리를 내며 꺾였고 파르르 떨었다. 

샤프트 외피를 겹겹이 감싸고 있던 얇은 막은 잔가시처럼 쭈뼛쭈뼛 나와서 너덜거렸다. 그라파이트 샤프트는 탄성이 뛰어나 부러뜨리기 어려운데 화가 난 후배는 부러진 샤프트를 다시 밟아서 또 반토막을 낸 다음 카트 쓰레기통에 쳐 박았다. 같이 라운드를 했던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 골프대회 챔피언 조에서 우승 경쟁한 김세영 프로, 브룩 헨더슨, 안나 노르드크비스트. 사진제공=Darren Carroll/PGA of America

골프는 자신이 친 공을 찾아서 걸어가는 운동이다. 걷기는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심이었던 소요학파 시절부터 서양 철학의 뿌리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나무 사이를 슬슬 거닐며 사유하기도 하고 지식을 논하기도 했다. 

훗날 장 자크 루소나 몽테뉴 같은 철학자들도 산책을 즐겼고 그 시간을 무척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걷기를 통해 나오는 생각만이 어떤 가치를 지닌다"라며 걸을 때 인간은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고 했다. 

철학자들의 사유와 별개로 걷기는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하루 30분 걷기는 항우울제보다 효과적이다"고 '영국 스포츠의학 저널'은 보도했고 또 다른 의학적 사례들도 걷기를 장려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골프는 건강과 사유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운동이다. 즉 육체와 정신적 건강을 함께 만족시켜주는 운동인 셈이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사례와 같이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기 쉬운 경우도 많다. 선수들은 분노를 참을 수 없을 때 클럽을 부러뜨리거나 해저드로 던지기도 한다. 간혹 자신이 친 볼을 물에 빠뜨려 분풀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행동으로 선수의 자질이나 인성을 단정 지어 이야기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순간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 각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골프를 '신사의 스포츠'라고 명명하는 이유가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라는 함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샷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걸어보자. 
"인생은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되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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