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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한국]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문명을 일군 바빌론의 사람들은 하늘에 저수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을 지키는 야훼의 노여움이 극에 달하면 저수지 수문을 열어 비를 쏟는다고 믿었답니다.

일종의 신의 경고인 셈이죠. 옛사람들의 하늘 숭배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늘 저수지에도 물고기가 살고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하늘 저수지의 물고기가 내려와 바다로 간 건 아닐까요? 어쩌면 사람들이 자는 사이에 비와 함께 내려와 냇가를 지나 바다로 갔는지도 모릅니다.

크게 자란 참고래는 오래전 내려와 깊은 바닷속에서 몸을 숨기고 지금까지 지냈을 겁니다. 오랜 기간 바닷속에서 숨을 참고 있다가 한 번씩 숨쉬기 위해 그 큰 몸집을 선보이기도 하지요. '분수쇼'를 보이며 물 위로 뛰는 커다란 고래를 상상하다 보면 혹시 하늘 저수지로 가고 싶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연습장에서 공을 치다 보면 하늘 높은 곳을 나는 비행기를 보곤 합니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는 햇빛을 받아 고래처럼 허연 뱃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뱃살을 보다 내가 친 공을 놓치기도 합니다.

골프는 혼자 하는 운동입니다. 자신이 쳐서 날린 공이 있는 곳으로 가서 또 치고 쳐서 궁극적으로 그린에 있는 작은 홀에 넣어야 끝나는 운동입니다. 

골프를 하지 않던 시절 TV화면으로 접하던 골프는, 너무 무료하고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공을 구멍에 넣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참 한심해 보였습니다. 축구나 핸드볼처럼 골키퍼가 있어서 상대를 속이거나 허점을 파고들어 골을 넣는 것도 아닌데 즐거울 까닭이 없어 보였죠. 

그런데 주변의 권유로 시작한 골프는 만만한 게 아니었습니다. 정지된 공을 치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되고 그리고 이 운동이 재밌다는 것을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중독처럼 빠져들었고 나는 이처럼 재밌는 운동을 함께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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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즐거움을 나만 간직하기엔 감동이 너무 크고 깊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영화나 책을 읽고 난 후 느끼는 감동을 혼자 주체하지 못하고 친구에게 떠들며 권하던 것처럼 말이죠. 제일 먼저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반응이 시큰둥했던 것 같습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내를 보면서 어떻게 골프에 입문시켜 볼지 고민하게 됩니다. 아내는 태생적으로 운동하고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같이 살아오면서 운동은 산책을 제외하곤 거의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아마 아내는 선천적으로 땀 흘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딘가 돌아다니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많은 시간 동안 책을 읽거나 가끔 뜨개질을 하는 게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아내를 골프에 입문시키기 위해 나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치밀한 계획은 아니지만 주변의 조력자가 있어야 조금은 더 수월할 것 같아서 형님 내외의 도움도 받습니다. 연습장 프로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즐겁고 재미있게 해달라고 부탁도 합니다. 형님 내외 식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운을 떼고 골프의 재미와 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이 먹을수록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우니, 부부가 함께할 운동을 한다면, 즐겁고 행복한 노후의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마무리로 설득 아닌 설득을 해 봅니다.

그리하여 연습장으로 함께 가는 것까지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립 잡는 법부터 어드레스를 배우고 하나씩 배워갑니다. 퇴근 후에 들러서 연습하고 집으로 오는 것으로 일정을 맞춰 봅니다. 몇 주만 지나면 내가 그랬듯이 골프의 매력에 금방 빠질 것이고 빠르면 한 달 후에 라운드를 나갈 계획까지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를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는 이틀 가더니 그 뒤로는 재미없다고 다시 자신이 늘 있던 곳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달팽이가 집을 찾아 들어가듯 은둔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나는 참 막막했습니다. 모든 강요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나의 기준일 뿐 상대의 입장은 다를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운동도 골프도 싫어하는 아내를 움직일 방법 말입니다.

그날 밤 나는 아내와 싸우지 않았습니다. 속으론 화도 나고 일 년 치로 준 레슨비도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웃으며 말했습니다.
"골프 재미없지? 근데 골프장 가려면 연습을 해야지..."
"왜? 그냥 치면 안 돼."
"그냥 친다고?"

순간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 이었습니다. 골프는 그냥 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걸으면 되는 것이었고 좀 느리게 가면 될 일이었습니다. 이제 시작이니 옆에서 좀 도와주면 될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주 주말에 퍼블릭 코스를 예약하고 그때부터 필드로 갔습니다. 그립만 잡고 공을 맞추기 급급했던 아내는 필드에서 처음으로 공을 띄웠습니다. 대부분 굴러다니기 일쑤였고 어쩌다 맞기도 했지만, 모든 샷은 '굿샷'이었습니다. 나는 연신 굿샷을 외치며 아내를 독려했었습니다. 후일 어느 날엔가 아내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나처럼 준비 안 된 골퍼는 못 봤어."

나는 골프를 어떤 의식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야 내보이는 상품이나 작품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존심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골프는 걸으면서 코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넌 왜 이리 좁은 거니?'
'넌 벙커가 참 많구나?'
'넌 정말 아름다운 홀이구나!'
 
그리고 동기부여 역시 코스를 극복하는 재미에서 나옵니다. 초보 때 못 넘기던 해저드를 몇 년 뒤 가서는 아이언으로 넘기기도 합니다. 원하던 곳에 떨어진 공을 보면 그동안 흘린 땀이 자랑스럽고 연습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하기도 합니다.

골프 코스에서 상대는 코스 그 자체입니다. 동반자는 나와 함께 그 코스를 공략하는 아군이기도 하고 지혜를 빌려주는 선지자이기도 합니다. 가끔은 동반자와 서로를 이기기 위해 게임을 하면서 승부에 빠지기도 하지만 진정한 골프의 묘미는 함께 하는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미술가 중에는 동반자를 통해 평생의 역작을 완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네의 사랑이었던 카미유, 모딜리아니의 잔느 에뷔테른, 앤드류 와이어스의 헬가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동반자를 통해 영감을 얻고 자신의 예술혼을 펼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골프는 홀로 하며 앞으로 전진하는 운동입니다. 하지만 혼자 갈 수 없고 동반자와 보조를 맞추며 함께 가는 운동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 나와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자신을 잃고 살아온 아내는 남은 시간도 나와 함께할 운명의 동반자입니다. 그런 아내와 흰 구름과 파란 하늘 사이로 오랫동안 서있는 팽나무를 곁에 두고, 티샷을 날리며 서로를 보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이럴 때 골프는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인생의 동반자를 필드의 동반자로 만나서 부담 없이 떠들고 즐거워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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