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020년 제42회 KLPGA 챔피언십 골프대회 때 14번홀 티잉 그라운드의 모습이다. 사진제공=KLPGA


[골프한국] 홀을 시작할 때 평평하게 잘 단장된 곳에서 티샷을 하게 되는데, 이곳을 '티잉 그라운드'라고 한다. 예전에 골프를 배운 분들은 이곳을 '티 박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티가 개발되기 전에는 바닥에 모래를 깔고 공을 올려놓은 다음 티샷을 했다고 하는데 모래를 담아둔 박스가 비치된 이곳을 티박스라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 골프장은 대부분 산악 지형에 조성돼 고저차가 심하다. 그래서 티잉그라운드에서 페어웨이를 내려다보고 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골프장은 마치 제단처럼 잘 정돈된 모양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 

가장 먼 거리부터 블랙, 블루, 화이트, 골드, 레드라는 색깔로 분류되는 티잉그라운드는 골프가 '거리의 게임'이기 때문에 치는 곳에 따라서 핸디캡이 적용된다고 보면 된다. 

티잉그라운드 간 거리는 보통 20~30m가량 차이가 나는데 남성 프로는 블랙, 여성 프로는 화이트를 사용한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주로 남성은 화이트, 여성은 레드를 사용한다.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가 210m 미만인 경우는 대체적으로 화이트를 사용해야 한다. 블루에서 라운드를 할 정도면 드라이버 거리가 220~230m 정도 나가야 하고, 250m 이상 나간다면 블랙도 가능하다고 레슨프로들은 말한다.

휴일에 골프장에서 여유를 즐기며 라운드를 하기란 쉽지 않다. 골프장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많은 내장객과 줄지어 서있는 카트를 보면 다음 목적지를 향해 짐을 싸는 패키지 여행객처럼 마음이 부산하고 조급해진다. 

거기에 캐디의 빠른 말투나 서두름이 감지되면 나도 모르게 쫓기듯 홀을 지나가곤 한다. 왠지 지나온 홀에 뭔가 빠뜨린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그것은 스코어를 적을 때 전해지는 아쉬움 때문일 거다.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AFPBBNews = News1

지난 주말에 다녀온 골프장은 방문객이 많아서 많이 기다리게 되었다. 파3 홀에 이르면 기다리는 카트가 '사회적 거리 두기'만큼 떨어져서 드문드문 서있다. 우리 앞에서 진행하는 팀은 블루티를 사용해서 아마추어 고수인가 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지켜보던 친구가 무료함을 달래려고 골프 이야기를 풀었다.

"한 번은 골프를 치는데 앞팀의 진행 속도가 좀 느린 것 같아서 뒤에서 자연스레 보게 되더라고, 그런데 보통은 비기너가 끼어있다든지 슬로 플레이어가 있으면 늦어지잖아. 이 팀은 그런 사람도 없이 아주 신중하게 플레이를 하더라고." 

그 친구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요즘이야 준비된 사람이 먼저 플레이를 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원구선타(멀리 있는 사람이 먼저 친다)를 철저히 지키던 시절이니까, 세컨드 샷도 정확히 지켜서 치면서 신중하게 플레이하는 것이 느껴지는 거야. 하물며 그린에서 플레이는 거의 컨시드가 없이 진행하고 있으니 아마 큰 내기가 걸렸나 보다 하고 우리도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했지. 그리고 전반전이 끝나고 그늘집에서 앞팀 캐디에게 물어보라고 했지." 

"도대체 얼마나 큰 내기를 하는 거야?" 

"그런데 내기를 안 한다는 거야." 

"도대체 뭔 말???"

"그러면서 하는 말이 형제간이라는 거였어."

"???" 더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그리고는 그 친구는 "이번에 진 사람이 어머니를 모셔야 하나 봐. 마누라들이 오죽 응원하겠어. 서로 한 마디도 안 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형제간 사이가 좋지 못한 경우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거기엔 종교나 정치도 포함되고 경제적 문제나 개인감정도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아는 선배 집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선배는 장남으로 사회적으로 성공도 했고 주변의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말 못 할 고민이 있었는데 형제간의 불화로 동기간에 서로 만나지도 않고 거의 남처럼 지낸다고 한다. 부모님이 계신다면 구심점이 있어서 해결할 실마리라도 찾아보기도 하겠지만 두 분 다 돌아가셔서 명절 때도 만날 일이 없이 지낸다는 거였다. 

명절 때야 각자 자기 가족과 보내면 되겠지만 문제는 부모님 제삿날이었다. 장남인 선배는 제사 준비를 하고 동생들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몇 년째 나타나질 않았다. 홀로 제사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부모님께 면목도 없어서 늘 걱정이었다. 적어도 제사 때만이라도 동생들과 함께 부모님 영전에 절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고민 고민하며 시름에 빠져 있는데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다행히 공통점이 있었는데 형제들 모두 골프를 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해 부모님 제사 때는 골프장을 예약하고 동생들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그 해 부모님 제사는 골프장에서 동생들과 함께 보내면서 마쳤다고 한다. 그 후, 부모님 제사 때는 골프장에서 형제끼리 어울린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골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는 '천일 야화'처럼 무궁무진하다. 슬픈 얘기도 기쁜 얘기도 있고 코미디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도 야한(?) 농담도 많은 것 같다. 몇 가지 기억해 두었다 카트에서나 그늘집에서 풀어놓는다면 동반자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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