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2021년 '캐피털 원 더 매치 5'에 출전한 브룩스 켑카와 브라이슨 디섐보가 일대일 매치플레이 경기 전에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한번 혼나봐라’
‘오늘 박살 내버릴 거야’
‘지난번 패배를 깨끗이 설욕해주마’
‘매운맛을 보여줘야지’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거야’
‘옛날의 내가 아님을 증명해주마’
‘지금까진 내가 도시락이었지만 이젠 네 차례야’

[골프한국] 골퍼라면 누구나 이런 결의를 다지며 골프장으로 향한 적이 있을 것이다. 구력이 꽤 됐는데도 라운드에 나설 때마다 이런 결의를 버리지 못하는 골퍼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결의는 십중팔구 상대방을 혼내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혼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내가 쏜 화살이 내게로 날아오는 것이다.

반대로 살기등등한 동반자를 맞으면서 ‘그래? 날 박살 내려면 내봐, 내 실력껏 라운드를 즐기면 되지 뭐.’ 하는 자세로 라운드에 임하면 칼을 갈고 나온 상대방이 실수를 연발하며 무너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상대방의 결의에 맞서지 않으면 의외로 경기가 잘 풀려 의외의 성적을 거두기도 한다. 

골프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적대감(敵對感)이다. 

골프가 만들어내는 온갖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골퍼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상황에 순응해 조화를 이루든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도전적으로 나서든가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대부분 순응보다는 도전을 선택한다. 
도전은 대체로 미덕이다. 전진, 발전, 개척의 원동력이고 인간의 한계를 넓혀나가는 바탕이 된다.
그러나 도전은 자칫 불필요한 적대감에 휩싸이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적대감 없이 자신의 한계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지만 상황 자체를 적대감으로 대하는 사람도 있다.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골프한국


적대감은 자신 이외의 모든 것들과 맞서는 대결구조를 만든다. 이 대결구조에서 심리적 마찰과 갈등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많은 골퍼들이 동반자는 물론 골프장의 온갖 상황과 날씨 같은 자연현상까지 적으로 삼아 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드는 우(愚)를 범한다. 결과는 참담함이 있을 뿐이다. 

좋은 체격과 나무랄 데 없는 기량을 갖춘 프로골퍼들도 종종 경기를 뜻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적대감에서 비롯된 이 갈등구조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골프에서 갈등은 치명적이다. 갈등의 불길에 휩싸이면 마음과 육체는 혼란에 빠지고 평소의 리듬을 잃는다. 
적대감으로 맞는 골프코스는 고통스럽다. 삼라만상을 적으로 돌려놓고서는 갈등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부의 큰 적을 놔두고 외부의 적을 상대로 골프를 하는 사람은 아무리 골프를 많이 해도 골프의 참맛을 알 수 없다. 마치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이. 

지난 27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원 골프클럽에서 열린 앙숙 브룩스 켑카(31)와 브라이슨 디섐보(28) 간의 이벤트 대회 ‘캐피털 원스 더 매치’가 톱 클래스 골퍼들조차 적대감에 휘둘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2홀 매치플레이로 진행된 이 경기에서 디섐보는 브룩스 켑카의 버디 퍼레이드로 맥을 못 추고 9홀 만에 4홀 차이로 패배했다. 

둘 사이는 딱히 원수지간이 될 사건은 없다. 사소한 일로 서로에게 품고 있는 비호감 정도다.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둘 사이의 비호감을 마케팅에 활용한 저의가 읽히지만 적대감이 아니더라도 비호감조차 경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 준 셈이다.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물에 젖지 않는 연꽃과 같이,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최초의 불교 경전 「슛타니파타」의 이 구절은 적대감에 휩싸이기 쉬운 골퍼에겐 금과옥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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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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