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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팜므 파탈'과 '나쁜 골프'에 대하여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참 열심히 연습하십니다.”
십수 년째 골프연습장에서 1주일에 서너 번 얼굴을 대하는 60대 여성에게 말을 건넸다.
“요즘 자주 라운드하시나 봐요?”
“열심히 해도 안 돼요.”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시는 걸 보면 골프를 제대로 즐기시는 것 같은데요.”
“재미는 있는데 갈등이 심해요.”
“한번 골프채를 잡은 이상 평생 씨름할 수밖에 없는 게 골프 속성인 걸요 뭐.”
잠시 후 이어진 그녀의 한마디가 내 귀에 꽂혔다.
“나쁜 골프야요! 골프, 정말 나빠요!”
그녀가 내뱉은 이 한마디만큼 골프를 함축한 말을 찾을 수 있을까.

여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므로 금방 ‘나쁜 남자’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매력적이고 마음이 끌리지만 뜻대로 안 되고 사악한 구석이 있는 남자가 나쁜 남자다. 
여성으로 치환하면 ‘나쁜 여자’다.

나쁜 여자보다는 프랑스어 ‘팜므 파탈(femme fatale)’이 더 구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마성(魔性)을 지닌 여자를 뜻하는 팜므 파탈은 상당히 복잡한 개념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신체를 과감히 노출시키거나 퇴폐적인 화장을 하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으로 남심을 자극하는 여자를 이르기도 하지만 구약성서의 ‘창세기’에서 아담을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만든 인류의 어머니 ‘이브’에서 시작된 ‘여인의 원죄’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어쨌든 여성의 입에서 ‘나쁜 골프’라는 어휘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은 바로 골프의 마성 넘친 치명적 중독성을 실감케 한다.

가볍지 않은 경제적 부담과 효용성이 의심되는 시간을 투자해야 함에도 많은 사람들이 연습장에서 땀을 흘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기대와 희망에 차서 찾은 골프장에서 분노와 절망에 휩싸이면서도 다음 라운드 약속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팜므 파탈과 흡사한 골프의 치명적 중독성과 바닥을 알 수 없는 매력이 아니고선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고서야 큰 교통사고로 생사를 헤매다 며칠 만에 겨우 의식을 회복한 사내가 의사에게 “선생님, 제가 골프를 못 치는 것은 아니죠?”라고 묻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몇 번이고 골프를 그만두어야겠다고 다짐해놓고 친구의 라운드 초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연습장을 찾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의 심한 갱년기 우울증에 시달리던 사람이 골프를 하고부터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생활로 바뀐 것 역시 골프의 불가사의한 매력 때문이 아닐까.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제공=Getty Image_LPGA


그런데 왜 그 여성에게 골프가 ‘나쁜 골프’의 이미지로 다가왔을까 궁금했다. 매력투성이의 골프를 만나고도 ‘나쁜 남자’처럼 느낀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대단히 매력 넘친 이성이라면 함부로 대충 대하지 못할 것이다. 옷차림이나 표정 등 언행에 품위를 담고 정성을 다할 것이다. 그래야 좋은 사람을 내 곁에 붙잡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기막힌 골프와 동고동락 하려면 그만큼 심혈을 기울이고 정성을 쏟아야 한다.

골프의 매력을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땀을 흘리며 정성을 기울인다. 적당히 노력하면 익힐 수 있는 스포츠로 생각해 쉽게 덤벼들었다가도 이내 골프가 결코 만만한 스포츠가 아님을 깨닫는다. 
어설프게 덤벼들어 적당히 해온 운동이라면 ‘나쁜 골프’라는 말을 할 리가 없다.

그렇게 정성을 쏟으며 열심히 했으면 어느 정도 만족할 수준에 이르러야 마땅한데 골프에선 만족할 수준에 도달할 확률은 극히 낮다.
그래서 내 귀엔 그 여성의 “나쁜 골프야요”라는 말이 “날 홀려놓고 왜 헤어날 수 없는 혼란에 빠뜨리는 거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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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입력날짜 : 2021-09-09 08: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