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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한국] 판소리를 감상하는 자리에서 소리꾼이 들려준 얘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소리를 감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소리에 문외한인 일행이 서로 얼굴만 쳐다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유명한 배우가 무대에 서도 봐 줄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가수라도 청중 없이 노래 부르면 흥이 안 납니다. 소리를 감상하러 오신 여러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좋은 소리를 감상하려면 여러분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뭔지 아시겠습니까?”

그제야 감이 왔다. 
일제히 대답했다. “추임새요!”
“여러분이 좋은 소리를 들으려면 소리꾼이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좋은 소리를 내려면 좋은 추임새가 받쳐주어야 하지요.”
이때 소리하시는 분의 ‘추임새론’은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추임새란 판소리를 할 때 중간중간에 곁들이는 탄성(嘆聲)이다. 주로 장단을 맞추는 고수(鼓手)나 청중이 창의 군데군데에서 소리꾼의 흥을 돋우기 위해 ‘좋다!’ ‘좋지!’ ‘으이!’ ‘얼씨구!’ ‘흥!’ 등의 조흥사(助興詞)나 감탄사(感嘆詞)를 넣어주는 것을 말한다. 이 탄성은 소리에서 다음 구절을 유발하는 데에도 큰 구실을 하는데 양악인 오페라에서의 관현악 반주와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한다. 
추임새는 의례적인 것을 벗어나 심미적 황홀경에 빠져들게 하고 소리꾼과 청중이 일체가 되어 소리에 몰입하게 해준다.

▲사진=골프한국


그런 의미에서 골프는 소리와 너무나 닮은꼴이다.
소리에 추임새가 필수적이듯 골프가 온전한 스포츠가 되려면 특유의 추임새가 빠져선 안 된다.
골프에서의 추임새는 무엇일까.

바로 골프코스에서 자주 입에 올리는 ‘굿 샷!’ ‘나이스 샷!’ ‘원더풀!’ ‘뷰티블!’ 같은 탄성이다. ‘나이스 버디!’ ‘나이스 펏!’ ‘나이스 보기!’ ‘나이스 파!’도 추임새다.

샷 직전의 탄성이 아니더라도 잔디밭을 걸으면서 동반자에게 넌지시 건네는 “정말 멋진 드라이브샷이었습니다!” “기막힌 어프로치네요!” “지난번에 비해 완전히 달라지셨네요. 엄청 연습하셨나봐야” 같은 칭찬도 추임새다. 진심에서 우러난 박수 역시 훌륭한 추임새다.

골프는 자신의 공을 자신의 클럽으로 다루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자립독행의 경기지만 동반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스치듯 지나가는 동반자의 눈길이나 표정, 말 한마디에도 영향을 받는 게 골프다.

소리꾼과 고수 그리고 청중이 마음에서 우러난 추임새로 한 덩어리가 되었을 때 멋진 공연이 이뤄지듯 골프에서도 동반자들끼리 서로 소리꾼과 고수가 되고 마음이 맞는 청중이 되어 동반자의 플레이에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줄 때 상승효과를 발하며 한층 질 높은 라운드를 펼칠 수 있다.

추임새 없는 라운드를 떠올려 보자. 서로 상대를 꺾겠다고 절치부심하며 나온 동반자라면 좀처럼 입에서 ‘굿 샷’이니 ‘나이스 샷’이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입을 굳게 다물고 ‘좀 쳤군. 그러나 내가 치는 걸 봐, 코를 납작하게 해줄 테니까.’ 하는 얼굴로 샷을 준비한다. 
상대방의 실수를 기다리는 분위기에선 진정한 추임새가 나올 수 없다. 상대방의 실수에 그제야 굳게 다문 입을 열고 즐거워하는 상황에선 결코 좋은 라운드를 기대할 수 없다.

추임새는 상대방의 좋은 플레이에 대한 칭찬이자 격려이면서 나도 그런 좋은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다짐의 표시이기도 하다. 자연히 동반자 모두에게 기분 좋은 엔돌핀을 전염시켜 상생효과를 발휘한다.
추임새를 모르는 골퍼는 골퍼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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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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