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만사가 순조로우면 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휘파람을 불고 싶어진다. 그러나 골프장에서만은 콧노래나 휘파람은 절대 금물이다. 콧노래나 휘파람 뒤에는 필경 비명이 숨어 있다. 

구력 20년이 넘는 L씨는 핸디캡 얘기만 나오면 난처해진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70대 중후반도 치는데 한번 무너지면 90타를 훌쩍 넘겨버린다. 핸디캡을 주고받는 내기 게임의 경우 상대방은 좋은 스코어를 기준으로 하고 본인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나빴던 때를 기준으로 하려고 한다. 골프깨나 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핸디캡 실랑이를 벌이는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체격 구력 스윙 등을 감안한 L씨의 객관적인 기량은 분명 안정적인 싱글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신은 왜 잘 나가다가도 맥없이 무너지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번 리듬이 깨져 플레이가 꼬이기 시작하면 “이상하네. 뭐가 문젠지 알 수도 없으니 미치겠네”라는 푸념만 되풀이한다. 

그러나 L씨와 골프를 쳐본 사람들은 그가 어디선가 한번은 무너지고 마는 이유를 알게 된다. 그와 라운드하면 어김없이 한번은 그의 콧노래를 듣거나 싱글벙글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추락의 전주곡이다. 

L씨는 서너 홀 연속 파 행진을 하거나 버디라도 잡게 되면 가만있지를 못한다. 오너가 된 그는 먼저 의기양양하게 드라이버를 뽑아 들고 다음 홀로 걸어가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다음에 날린 샷은 신기하게도 미스샷이 되고 만다. 

“잘 나가다가 웬일이지? 골프란 정말 알 수 없단 말이야”라며 티잉그라운드를 내려오는 그의 얼굴에는 미스 샷을 만회하겠다는 결의가 가득하다. 그러나 다음 샷 역시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동반자들은 그의 콧노래를 들을 때 이미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한 터다. 누구 하나 입에 올리지 않지만 속으로는 이구동성으로 ‘올 것이 왔군!’하고 쾌재를 올린다.

잘 나가던 L씨가 어디선가 무너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순조로운 흐름에 들뜬 나머지 콧노래나 휘파람을 부는 순간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자만심으로 차기 때문이다. 

골프는 장갑을 벗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골프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때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골퍼 진 사라젠(1902~1999)이 한 말이다. 
아무리 경기가 잘 풀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도 장갑을 벗을 때까지는 들뜬 가슴을 맷돌로 꽉 눌러둬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새봄의 코스를 찾은 골퍼들의 가슴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작은 미풍에도 평정심은 두둥실 날아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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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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