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골프대회에 출전한 고진영, 김세영 프로. 고진영이 우승, 김세영이 준우승을 기록했다. 사진제공=Getty Images


[골프한국] 이보다 더 극적인 대결을 언제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까. 

18~21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GC(파72·6천556야드)에서 열린 LPGA투어 2020시즌 마지막 대회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의 고진영(25)과 김세영(27)의 대결은 보기 힘든 명승부였다.

중계방송을 지켜보는 세계 골프 팬들은 두 선수의 드라마 같은 대결에 숨이 멎었다. 승부를 떠나 대조적인 두 선수의 경기에 경탄을 금치 못하며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복싱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에서 ‘세기의 대결’이란 이름을 달고 많은 대결이 펼쳐졌었다. 골프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2018년 이벤트 대회로 열린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의 맞대결인 캐피털 원스 더 매치와 2019년 7월 디 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의 로리 매킬로이와 브룩스 켑카의 대결을 두고 언론들은 ‘세기의 대결’이라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경기 결과는 매스컴의 흥분이 무색하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세기의 대결’이 ‘싱거운 대결’이 돼버렸다.

여자 골프에선 ‘세기의 대결’로 불릴만한 경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로라 데이비스(57·영국), 아니카 소렌스탐(50·스웨덴), 카리 웹(45·호주), 박세리(43), 청 야니(31·타이완) 등이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승패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차를 두고 세월과 함께 흘러갔다.

특히 4일간 경기를 벌이는 골프에선 다른 스포츠에서와 같은 대결의 개념이 약하다. 한 조에 편성돼야 대결다운 맛이 나는데 마지막 라운드에서 우승 경쟁을 벌일 경우를 제외하곤 대결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 세계랭킹 1, 2위인 고진영과 김세영은 세 라운드를 함께 플레이하며 경쟁을 벌였다. 

보통 경기에선 우승 후보자들이 마지막 라운드에서나 같은 조 혹은 앞뒤 조에 편성돼 경기하기 마련인데 두 선수는 2, 3, 4라운드를 같은 조로 경기했다. 매우 드물거나 전례가 없지 않을까 싶다. 같은 나라 선수끼리 3일 동안 챔피언조에서 우승 경쟁을 벌인 것도 드문 일이다.

두 선수의 경기 스타일도 대조적이어서 흥미진진했다. 고진영이 고도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도도하게 자신의 경기를 펼치는 스타일이라면 김세영은 경기 흐름에 따라 들소처럼 달려드는 야성(野性)의 골퍼다. 고진영이 순풍에 요트를 타는 모습이라면 김세영은 거친 파도를 타는 서퍼(surfer)에 가깝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의 도전 목표가 겹쳤다. 현재 상금 1위인 박인비를 포함해 세 선수가 이 대회 성적 여하에 따라 세계랭킹 1위, 상금왕, 올해의 선수 모두 가능성이 열려 있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1라운드에선 디펜딩 챔피언 김세영이 5언더파로 공동 3위로 한국 선수 중 순위가 가장 높았다. 고진영은 4언더파로 공동 6위, 박인비는 1언더파로 공동 24위.

고진영과 김세영이 한 조로 묶인 2라운드부터 순위가 요동쳤다. 고진영이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건져 이틀 합계 9언더파 단독 1위에 올랐다. 시즌 18개 대회 중 4개 대회만 참가하고도 세계랭킹 1위와 상금왕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지난 시즌 고진영은 LPGA투어에서 상금 1위와 올해의 선수, 평균 타수 부문을 휩쓸었었다.
김세영과 렉시 톰슨이 8언더파로 1타차 공동 2위로 추격했다. 시즌 상금과 올해의 선수 부문 1위인 박인비(32)는 2언더파 공동 20위로 쳐졌다.

3라운드에선 김세영이 저돌적으로 나서 5타를 줄여 합계 13언더파로 단독 1위로 나섰고 고진영이 12언더파 단독 2위로 추격했다. 김세영은 한때 3타 차이로 리드했으나 고진영이 뒷심을 발휘하며 1차 차이로 간격을 좁혔다.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 속에서 펼쳐진 명승부였다.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골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고진영 프로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다. 사진제공=Getty Images

마지막 라운드에서 펼쳐진 고진영의 역전극은 LPGA투어 역사에 남을 만했다. 
고진영에 1타 앞선 단독 선두로 출발한 김세영이 10번 홀까지 보기 2개 버디 하나로, 고진영은 버디 2개, 보기 하나로 13언더파로 공동 1위로 맞섰다.

승부의 분수령은 11번 홀(파4). 김세영의 티샷은 오른쪽으로 러프로, 고진영의 티샷은 벙커로 날아갔다. 여기서 김세영은 한 타를 잃고 고진영은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1타 차 단독 1위에 오른 고진영의 질주가 시작됐다. 고진영은 후반에만 버디 5개를 보태 합계 18언더파로 13언더파에 그친 김세영을 5타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안았다. 

상하 흰색 옷을 입고 나온 고진영의 경기는 바람에 한껏 부푼 요트의 돛처럼 우아하면서도 거침없었다. 김세영이 빨간 바지를 역전을 노렸으나 순풍에 돛단 고진영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고진영은 지난해 8월 캐나다 퍼시픽 여자오픈 이후 약 1년 4개월 만에 LPGA투어 통산 7승을 달성하면서 110만달러(약 12억원)의 우승상금을 보태 공동 35위에 머문 박인비를 제치고 2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다. 올 한해 성적을 포인트로 환산하는 CME 글로브 레이스 챔피언도 차지했다. 

고진영은 코로나 여파로 11월에야 LPGA투어 대회에 출전, 전체 18개 대회 중 4개 대회만 치르고도 세계랭킹 1위를 지키면서 상금왕, CME 글로브 레이스 챔피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김세영은 호주의 해나 그린과 함께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강력한 올해의 선수 후보였던 박인비를 제치고 올해의 선수를 차지, 아쉬움을 달랬다.

평균 타수 부문에서는 김세영이 규정 라운드 수를 채우지 못하는 바람에 시즌 최저 타수를 기록하고도 이 부문 1위에게 주는 베어 트로피는 대니엘 강(미국)에게 돌아갔다.

LPGA투어 측은 코로나19 때문에 대회가 축소되는 바람에 신인왕은 선정하지 않았다. 대신 올해 출전자격을 얻은 선수들은 2021시즌에도 그대로 시드를 유지하도록 했다.

고진영의 우승으로 한국 선수들은 올해 7승을 합작, 6승의 미국을 제치고 올해 LPGA투어 최다승국이 되어 2015년부터 6년 연속 최다승국 1위를 지켰다.

LPGA투어는 2021년 1월 21일 미국 플로리다주 레이크 부에나비스타에서 막을 올리는 다이아몬드 리조트 챔피언스 토너먼트로 2021시즌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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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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