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PGA 챔피언스투어 앨리 챌린지 골프대회에 출전한 최경주 프로가 1라운드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완도 소년’ 최경주의 꿈은 어디까지일까.
한국 남자골프의 개척자이자 ‘맏형’인 최경주가 50세에 ‘루키(rookie)’로 PGA 챔피언스투어에 데뷔했다. 

최경주는 7월31~8월2일(한국 시각)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블랑의 워윅 힐스CC에서 열린 챔피언스투어 앨리 챌린지에 출전, 최종합계 6언더파 210타 공동 27위로 선전했다. 함께 데뷔한 짐 퓨릭이 14언더파 202타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챔피언스투어는 만 50세 이상 선수만 출전하는 세계골프 백전노장들의 무대다. PGA투어에서 활동하다 만 50세가 넘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출전할 수 있다. 1980년에 창설됐으나 왕년의 스타들을 보기 위해 많은 골프 팬들이 몰리면서 PGA투어 다음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어니 엘스, 레티프 구센(이상 남아공), 비제이 싱(피지), 콜린 몽고메리(스코틀랜드), 베른하르트 랑거(독일), 미겔 앙헬 히메네스(스페인), 존 댈리(미국) 등 쟁쟁한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지난 5월19일로 만 50세가 된 최경주는 2000년 한국인 최초 PGA투어 진출에 이어 다시 한국인 최초 챔피언스투어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한반도의 남단 완도군의 작은 어촌에서 어부이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최경주가 국내 골프를 평정하고 PGA투어에 진출, 8승을 올렸다는 것은 기적이다.

운동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화흥초등학교와 완도중학교에서 축구, 씨름, 창던지기, 역도 등 운동이란 운동은 다 했다. 골프는 완도 수산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신체적인 조건상 역도선수로 대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간파한 체육교사가 골프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하자 바로 골프로 방향을 틀었다. 

잭 니클라우스의 스윙교본과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연습하다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서울 한서고등학교로 옮겨 본격적인 골프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1993년 프로 테스트를 통과하고 1995년에 팬텀오픈에서 첫 우승컵을 품었다. 국내에서 일곱 번이나 우승한 그는 대망을 품고 1998년 미국 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들었다.

1999년 일본 프로골프에 진출, 기린오픈과 우베고산 오픈에서 우승한 뒤 Q스쿨에 재도전, 2000년 대망의 PGA투어 진출 꿈을 이뤘다. 한국선수로는 처음이다. 

PGA투어 3년 차인 2002년 컴팩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했다. 한국인 최초이자 동양인 3번째 PGA투어 우승이었다. 같은 해 탬파베이 클래식에서도 우승, 한 해에 두 번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8년에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세계 랭킹 5위에까지 올랐다. 2011년 제5의 메이저라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PGA투어 통산 8승을 기록했다. 2016년 리우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 남자골프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완도 소년’ 최경주의 위대함은 골프선수를 벗어나 더 빛을 발한다. 최경주 재단을 설립해 아동·청소년 복지사업과 골프 꿈나무 육성 및 지원사업 등을 펴는가 하면 각종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기부활동에도 발 벗고 나섰다.

최경주는 당초 지난 5월 시니어 PGA챔피언십을 통해 챔피언스투어에 데뷔하려 했으나 코로나 사태로 투어가 중단돼 5개월 만에 열린 앨리 챌린지를 통해 데뷔하게 됐다. 

챔피언스투어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신인 3인방’인 최경주와 짐 퓨릭(미국), 마이크 위어(캐나다)의 데뷔 소식을 전하면서 이들 세 선수를 한 조로 편성하는 예우를 했다. 

2013년 10월 관훈클럽이 주최한 최경주 선수 초청 관훈초대석에서 초대손님과 토론자로 인연을 맺은 필자의 눈에는 그가 챔피언스투어 최초의 한국인 선수라는 데 만족하지 않을 것이란 예감을 한다. 매의 눈을 닮은 형형한 눈빛과 자신에 찬 태도, 몸에 밴 겸손함, 끊임없는 도전정신 등은 챔피언스 투어에서 그가 조용히 있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챔피언스투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로 이름을 알린 아오키 이사오(77)를 뛰어넘을 선수가 바로 최경주다. 

아오키 이사오는 챔피언스투어에서 9승을 거두었지만 PGA투어에선 1승(1983년 하와이언오픈)밖에 올리지 못했다. 물론 일본 국내대회에서 58승, 일본 시니어투어 10승, 기타 국제대회 7승 등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지만 PGA투어에서의 활약이나 세계 골프계에 던진 파장은 최경주에 뒤진다.

2년 후 ‘바람의 아들’ 양용은이 챔피언스투어에 가세하면 LPGA투어, PGA투어에 이어 새로운 한국바람을 일으키지 말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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