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옛날 중국 초(楚)나라에 유명한 대장장이가 있었다. 이 대장장이는 창(矛)과 방패(盾)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 

장터에 나가면 창과 방패를 양손에 들고 “이 창으로 말하면 이 세상 어떤 방패로도 예리함을 막을 수 없는 최고의 창”이라고 선전했다. 그리고 방패를 들어 보이며 “이 방패는 이 세상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최고의 방패”라고 소리쳤다. 

어느 날 옆에서 이를 지켜본 한 노인이 “여보시오, 그러면 당신이 만든 창과 방패가 맞부딪치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하고 물었다. 그 순간 장터에 모인 구경꾼들이 폭소를 터뜨리며 대장장이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앞뒤가 맞지 않고 이치가 어긋난다는 뜻의 모순(矛盾)이 태어난 배경이다. 

알고 보면 골프야말로 모순덩어리다. 이 세상 모순이란 모순을 다 모아놓은 듯하다. 

골프에서 최고의 미덕으로 치는 평정(平靜)부터가 모순의 집합체다. 
친구들과 어울려 푸른 잔디를 거닐며 하얀 공을 날리는 것 자체가 흥분하고도 남을 일인데 흥분하지 말라고 한다. 멋진 샷을 날리고 나면 절로 하늘을 날 듯 희열이 치솟는데 들뜨지 말라고 한다. 

미스샷 후 자신에 대한 실망감, 동반자의 멋진 샷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피어오르는 불편한 심정, 더 멋진 샷을 만들어내겠다는 욕망 등은 매우 자연스러운데도 언제나 호수처럼 잔잔한 평정심을 유지하라고 한다. 

누군가와의 대결에서 꼭 이기겠다는 투쟁심, 지난 패배를 갚고야 말겠다는 복수심, 동반자 모두를 무너뜨려야 하는 적으로 생각하는 적대감 등도 금기시된다. 이런 감정이 자신의 발전을 담보하는 자극제 역할을 하는데도 말이다.

망각조차 골프에서 미덕 대우를 받는다. 앞으로의 샷을 위해 가능한 한 지난 것은 모두 잊으라고 한다. 지난 홀의 치명적 미스샷이나 황홀한 순간을 잊어버리라고 한다. 위기에 처한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지난 기억을 끊으라고 한다.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이나 주체할 수 없는 환희의 감정도 고이 눌러두라고 한다.

골프가 신사의 스포츠라며 동반자에 대한 철저한 배려를 강조하지만 이 역시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배려를 이끌어내기 위한 위선의 성격이 강하다.

스포츠 중 유일하게 심판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골프는 정직한 게임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러나 골프만큼 상대방은 물론 자신까지 속이고 싶은 유혹이 많은 스포츠도 없다.

동반자를 속이기는 쉽지만 동반자 모르게 속이기는 어렵다. 동반자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른 동반자가 무슨 속임수를 쓰는지 유리 어항을 들여다보듯 훤히 안다. 동반자들은 모른 척 또는 못 본 척하고, 자신은 다른 동반자가 모르리라고 생각할 뿐이다.
스코어카드에는 이름과 타수만 적혀 있지만 모두가 스코어카드에 얼마나 많은 속임수, 부정직, 싸구려 선심이 숨어 있는지 안다.

모든 스포츠가 기울인 노력과 흘린 땀에 비례해 기량이 향상되는 데 반해 골프는 결코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 하기는 그래서 더 붙들고 씨름하는 오기가 발동되는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골프의 전설 잭 니클라우스는 “골프의 80%는 정신력, 10%는 능력, 10%는 운”이라고 갈파했다. 짐 퓨릭은 한술 더 떠 “골프의 90%는 정신력, 나머지 10%도 정신력”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신력에 대한 골프 대가들의 인식 탓인지 많은 골프선수들이 성적 부진의 해법을 정신력에서 찾는다. 마인드컨트롤(mind control)에 큰 비중을 두고 심리상담을 받기도 한다. 

골프의 상충성(相衝性) 때문에 골퍼는 정신적 혼란을 피할 수 없다. 골프채를 잡은 이상 골퍼는 항상 갈등의 늪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셈이다.

수많은 갈등과 충돌을 겪으며 해법을 찾는 골퍼들의 모양새가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1779~1831)의 변증법을 연상케 한다. 
골퍼의 길은 끊임없이 되풀이될 정반합(正反合)의 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골프를 불가사의하다고 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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