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칼럼 > 인기칼럼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네이버 북마크
싸이월드 공감
[방민준의 골프세상] 수묵화에서 찾은 골프의 깨달음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그림=방민준


[골프한국] 필자가 골프 수묵화를 그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릴 적 그림에 소질이 없지 않았지만 먹, 붓과는 거리가 멀었다. 

30여 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 지으며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한 것이 수묵화였다. 동네 문화센터의 수묵화반에 등록해 사군자 그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 붓을 잡는 법, 먹을 가는 법을 시작으로 붓놀림의 기초를 익힌 뒤 이른바 매난국죽(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묵화를 배우면서 먹이 표현할 수 있는 농담(濃淡)의 스펙트럼이 무한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채화를 그릴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수채화를 그릴 땐 물감의 농도나 색의 혼합으로 표현하고픈 색을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수묵화의 농담은 차원이 달랐다. 

우선 인내심을 갖고 먹을 충분히 갈아야 하고 붓에 먹과 물을 어떻게 스며들게 하는가를 터득해야 했다. 이를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붓의 어느 정도까지 먹을 묻히고 물을 얼마만큼 머금게 하는가와 붓을 놀리는 속도를 어떻게 하는 가는 장인의 손길이 필요한 경지였다. 

매난국죽을 그리면서 먹물을 머금은 붓이 표현해내는 무궁무진한 흑백의 스펙트럼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수묵화의 기법으로 골프 관련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내게 골프는 최후의 스포츠였다. 아니 인생의 모든 것이 녹아든 철학이었다. 30이 넘어 골프채를 잡았지만 짧은 기간에 골프가 품고 있는 묘미(妙味)를 알아챈 내게 골프는 단순히 운동을 대신할 수 있는 스포츠, 또는 취미생활의 차원이 아니었다.

골프는 도(道)였고 철학이었다. 인생을 압축한 환(丸)이었다. 골프가 필요로 하는 부단한 깨달음과 땀과 정성이 담긴 노력, 여기에 뒤따라야 하는 겸손, 배려, 조화, 화해, 평정 등 온갖 정신적 수련이 나를 매혹시켰다.

이런 심연 같은 골프를 농담의 깊이가 무한한 수묵화로 표현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고 흥분 그 자체였다.  

그리고 열심히 화선지 위에 골프 스윙의 동작을 붓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거의 6개월 골프 스윙을 표현하기 위한 붓놀림을 구축하는데 몰두했다. 골프의 스윙 동작이 머무르지 않고 한순간에 이뤄지듯 붓의 움직임 또한 그에 가까워야 했다. 

아무도 골프를 수묵화로 표현하는 사람이 없다는 데 자신감을 얻어 3년 이상을 몰입했다. 그 결과물에 나도 놀랐고 주변도 놀랐다. 골프 수묵화를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환호한 것은 물론이다. 가끔 괜찮은 작품을 표구해 골프 모임의 상품으로 갖고 가면 인기가 대단했다.

그러나 내 수묵화를 받은 사람은 그 골프 수묵화 한 점이 수북이 쌓인 수십여 장의 파지 끝에 나온 것이라는 사실은 알 까닭이 없다. 50여 장을 그린 뒤 한 장을 건지면 운수 좋은 날이었다. 

골프 수묵화를 시작하고부터 인사동 나들이도 잦아졌다. 다양한 붓이 필요했고 먹이나 화선지도 한 달에 한 번은 구입해야 했다.

그러기를 어느덧 10여 년이 흘렀다. 내 방 한구석에 수묵화 도구를 비치해두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먹을 갈고 화선지를 펼친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골프 수묵화를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도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도 보람이지만 수묵화로 인해 골프의 밀림을 제대로 탐험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는 데 더 큰 환희를 맛보고 있다. 

▲그림=방민준

그러고 보니 골프야말로 한편의 수묵화다. 

수묵화는 덧칠을 할 수 없다. 한 번의 붓질로 끝내야 한다. 첫 붓질이 잘 못 됐다고 그 위에 다시 붓을 댈 수는 없다. 덧칠은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다. 싫든 좋든 첫 붓질을 인정하고 다음 붓이 갈 길을 찾아야 한다. 

골프 역시 잘못된 샷을 물릴 수 없다. 화선지 위를 달리는 모든 붓질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듯, 내가 날리는 모든 샷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마음이야 없었던 샷으로 지우고 싶지만 내가 날린 모든 샷은 낙인(烙印)으로 남는다.

특히 수묵의 농담(濃淡)은 골프의 샷과 너무도 닮았음을 절감한다. 경계를 알 수 없는 수묵의 농담은 거리에 따른 스윙의 크기와 힘의 세기의 무한한 조합을 상징한다.

며칠 붓을 잡지 않으면 붓놀림이 어색하고 흔들린다. 골프 역시 며칠 연습을 게을리하면 스윙 어딘가가 헝클어진다. 
골프 수묵화를 그리면서 얻은 귀중한 깨달음들이다. 

추천 기사: 점차 감 잡은 박성현 "신기한 경험…2라운드 기대"

추천 기사: KLPGA 챔피언십 1R 성적은?…박성현·김효주·이보미·최혜진·유현주·이정은6 등

추천 칼럼: 골프는 대결 아닌 '해법'의 스포츠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입력날짜 : 2020-05-15 13: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