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1999년 4월 마스터스 1라운드 개막 전, 골프 전설들인 바이런 넬슨(오른쪽), 진 사라센(중앙), 샘 스니드(왼쪽)의 모습이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마스터스를 창시한 바비 존스(Bobby Jones)와 함께 1930년대 미국 골프계를 풍미한 진 사라센(Gene Sarazen)이 US오픈을 휩쓸고 1928년 디 오픈에 참가했다. 사라젠은 미국인으로서 최초의 디 오픈 우승이라는 영광을 안고 싶었으나 험난하기로 유명한 로열 조지스 코스에서 월터 헤이건에게 2타 차로 패배했다. 

진 사라센은 영국의 명 캐디 스킵 다니엘즈의 충고를 딱 한 번 안 들은 것이 패배의 원인임을 깨닫고 후회했으나 이미 경기는 끝난 뒤였다. 헤어질 때 다니엘즈는 진 사라센에게 “내 생전에 꼭 당신을 우승시키겠다.”고 약속했다.

4년 후 디 오픈에 다시 출전한 사라센은 다시 다니엘즈와 손을 잡았다. 70세에 시력도 나쁘고 병중에 있던 다니엘즈는 노구를 이끌고 필사적으로 사라센을 도왔다. 사라센 또한 다니엘즈를 단순히 캐디가 아닌 대스승으로 모시고 완전한 신뢰감 속에 그의 지시와 조언대로 플레이해 대망을 타이틀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시상식 때 사라센은 승리의 절반은 다니엘즈 몫이라며 동석을 요청했으나 전례가 없고 경기규칙에도 어긋난다고 해서 다니엘즈는 먼발치에서 시상식을 구경했다. 사라센은 우승자의 상징인 녹색 재킷을 받자 다니엘즈에게 달려가 입혀주었다. 이로써 진 사라센은 현대 4대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와 US오픈, 디 오픈, PGA챔피언십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골퍼가 되었다. 다니엘즈는 사라센과의 약속을 지키고 두 달 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골프가 생활이요 직업인 프로골퍼들에게 캐디의 역할이 이다지 중요한데 하물며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캐디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프로골퍼의 승패는 캐디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판단을 정확히 하고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면서도 부담감을 주지 않는, 그야말로 완전한 교감이 이뤄지는 캐디가 옆에 있다면 이 이상의 행운은 없다.

골프는 철저하게 자신과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결코 혼자 하는 운동은 아니다. 캐디라는 협조자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캐디 없이 라운드할 수 있는 골프장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캐디가 배정되는 국내 골프장에 익숙한 사람들은 캐디 없이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기 어렵다.

캐디 없이 혼자서 플레이한다고 가정해보자. 캐디 없이 자신의 핸디캡대로 플레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가.

어림도 없다. 거리나 방향, 그린의 빠르기, 코스 곳곳에 도사린 함정 등을 제대로 알아낼 수가 없다. 최소한 5타 이상, 많게는 10타는 더 친다. 이는 곧 캐디의 말을 제대로 들으면 최소한 5타 이상은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많은 골퍼들이 캐디를 평가할 때 플레이어의 경기 흐름과 현장 상황을 얼마나 잘 읽고 적절한 대응을 할 줄 아는가를 따지지 않고 얼굴이 예쁜지, 말투나 행동거지가 귀염성이 있는지 등을 기준으로 삼는 실수를 범한다. 정작 필요한 조건들은 따지지 않고 플레이와 스코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얘기다. 

골프장에서 캐디의 조언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플레이어는 특정 골프장이 처음이거나 회원이라 해도 한 달에 두어 번 라운드하는 정도지만 캐디는 매일 라운드를 한다. 이것만으로도 캐디는 플레이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갖고 있는 셈이다. 수많은 골퍼들과 라운드하면서 홀마다의 특성과 그린의 흐름, 실수를 범하기 쉬운 코스, 착각하기 쉬운 코스 등을 꿰뚫고 있다. 여기에 플레이어의 특성까지 제대로 읽어낼 줄 아는 캐디라면 금상첨화다. 

캐디가 아주 신참이 아니라면 골프장에서는 자신의 판단보다는 캐디의 판단을 더 믿고 조언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게 상책이다. 
특히 그린에서 캐디의 판단과 조언은 절대적이다. 아무리 그린 읽기를 잘 하는 골퍼라도 낯선 골프장을 찾았을 때 그린을 제대로 읽어내기란 불가능하다. 자주 찾는 골프장이라고 해도 그때그때 그린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프로라 해도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린에서 타수를 줄이는 첩경은 캐디의 판단과 조언을 신뢰하고 따르는 길뿐이다. 

골프장에서 유능한 캐디를 만나는 것은 좋은 스승을 만난 것만큼 행운이며 복이다.     

훌륭한 캐디는 골프 외적인 중요한 징후까지 놓치지 않는다. 
14년간이나 대 선박회사 사장의 골프를 뒷바라지해온 캐디가 어느 날 라운드를 마친 사장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제넘는 말 같지만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사장이 놀라서 이유를 묻자 캐디가 대답했다.
“사장님 몸이 이상한 것 같습니다. 겨우 1주일 만에 거리가 줄어 오늘은 모든 클럽을 하나씩 크게 드렸습니다. 어딘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장은 다음 날 바로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간 기능에 이상이 있음이 밝혀졌다. 의사는 그대로 방치했으면 위험할 뻔했다고 말했다. 

핸디캡은 14지만 퍼팅에는 자신이 있던 미국의 한 코미디언이 홈 코스를 찾아 친한 캐디와 한 라운드를 돌았다. 
18홀을 끝내고 캐디가 말했다. 
“눈 검사를 받는 게 좋겠는데요. 퍼팅 라인이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설마 그럴 리가….’라고 생각하면서도 안과를 찾았다. 검사결과 녹내장이 진행 중임이 밝혀졌다,

캐디(caddie)의 어원은 프랑스의 귀족의 젊은 자제를 뜻하는 ‘카데(cadet)’에서 비롯되었다.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여성골퍼인 스코틀랜드의 메어리 여왕이 1561년 여름 세인트 앤드루스를 방문했다. 고색창연한 도시에 매료된 메어리 여왕은 이듬해 다시 세인트 앤드루스를 찾아 골프에 열중하게 되는데 프랑스에서 데려온 카데들을 대동하면서 경기보조자로서 캐디가 처음 탄생한 순간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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