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LPGA 투어 ISPS 한다 빅오픈에 출전한 크리스티나 김이 대회 전 프로암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Golf Australia

[골프한국] 2월 호주에서 연속 열린 LPGA투어 두 대회에서 크리스티나 김(35·Christina Kim, 한국이름 김초롱)이 리더보드 첫 페이지에 이름이 오르는가 하면 잠시 잠시 중계 카메라에도 잡혔다.

그는 2014년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9년 만에 극적인 우승을 한 이후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지난해에는 LPGA투어 시드마저 잃게 돼 어쩔 수 없이 퀄리파잉 토너먼트에 도전, 공동 24위로 간신히 올 시즌 시드를 얻었으나 그동안의 성적이나 나이 때문이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 크리스티나 김이 박희영이 우승한 ISPS 한다 빅(Vic) 오픈에선 공동 9위, 박인비가 우승한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에선 공동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스러져 가던 선수가 재기의 불길을 살려냈으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골프 팬들에게 크리스티나 김은 애증이 얽힌 선수다.

1998년 박세리의 LPGA투어 맥도널드 챔피언십에 이은 US여자오픈 우승을 신호탄으로 김미현, 박지은 등 이른바 한국 선수 LPGA 1세대들이 맹위를 떨칠 무렵 크리스티나 김은 교포선수로서 미셸 위와 함께 주목을 받았다.

미셸 위가 어릴 때부터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며 ‘여자 타이거 우즈’ 대접을 받은 것에 비할 바 아니지만 그의 개성 넘치는 언행은 늘 화제였다. 

골프선수로서 적합해 보이지 않은 몸매에도 장타를 때려내는 그는 베레모를 쓰고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출렁이며 거침없는 퍼포먼스로 자신만의 개성을 발산했다. 

그는 자유분방했다. 기쁨과 분노의 감정도 여과 없이 표출했다. 그의 입은 조용히 있기를 거부한다. 입으로나 아니면 손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밖으로 토해낸다. 소셜미디어(SNS)에 자신을 프로골퍼 겸 작가로 소개할 정도다.

실제로 그는 ‘크리스티나 김의 스윙’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 선수들을 ‘봅슬레이 팀’으로 표현, LPGA투어의 한국 선수들이 다양한 접촉을 피하며 끼리끼리 몰려다닌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LPGA투어 Q 시리즈에서 규칙 위반 선수 두 명을 신고하고 이를 트윗으로 공개해 소셜미디어에서 뭇매를 맞기도 했다. 

미국 여성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섹시한 남자로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과 할리우드 액션 논란을 일으킨 안토 오노를 꼽아 한국 팬들의 눈총을 받았다.
2009년 독일의 산드라 갈, 미국의 안나 글제비엔과 함께 누드 사진을 촬영, 스포츠전문 채널 ESPN 잡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의 사교성은 유별나다. 대회 직전 열리는 프로암 파티에서 그는 톱스타 미셸 위가 차지한 홀 중앙에서 손님들을 맞고 선수들과 어울린다. 대회 마지막 날 우승자에게 가장 자주 샴페인을 들고 달려가는 선수도 그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두 배나 되는 여행 가방을 갖고 투어에 나서는 것도 파티에 필요한 드레스와 구두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유별난 사교성은 미국에서 이민 2세로 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생존전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지혜를 전해주려는 선의를 한국 선수들이 몰라주니 그도 섭섭했을 테고 거리감이 생겼을 터이다.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이민 2세로 태어난 그의 LPGA투어 등단 초기에는 비범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11세 때 골프채를 잡은 그는 고교 골프선수로 활동하며 프로선수의 꿈을 키웠다. 2001년 US 주니어여자 골프선수권 대회에서 18홀 최저타 신기록을 달성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LPGA 2부 투어 상금순위 2위에 올라 2003년 LPGA투어에 뛰어들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캘리포니아의 4년제 데안자(De Anza)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2004년 롱스드럭스 챌린지, 2005년 미첼 컴퍼니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우승으로 초반은 순조로웠으나 이후 9년 동안 준우승만 5회 했을 뿐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미국과 유럽팀의 대항전인 솔하임 컵에 세 번이나 미국 대표선수로 출전했으니 기량이 쳐지는 것은 아니었다. 

무승의 기간이 길어지자 그는 자살의 문턱까지 자주 갔다.
2011년 스페인 알리칸테에서 열린 솔하임 컵 대회에서 부진하자 자살하기 위해 바닷가 절벽에 섰다가 ‘내가 죽으면 집세는 누가 내고 아빠 엄마는 어떻게 사나?’라는 생각에 발길을 돌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는 차로 돌진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잡지에 털어놓기도 했다.

2014년 그가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대회 연장전에서 극적으로 우승하자 주최자인 오초아와 미셸 위 등 친구들이 그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린 것도 그의 이 같은 아픔을 알기 때문이었다.

크리스티나 김을 다시 보는 것은 잘 나가던 한국 선수들이 무승의 긴 터널에서 방황하며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3월 15일이면 그도 만 36세가 된다. 당당하면서도 괴짜 같고, 정말 자기 인생을 살 줄 아는 여인 같기도 한 크리스티나 김의 골프 여정이 어떤 궤적을 그려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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