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020년 LPGA 투어 ISPS 한다 빅오픈에서 우승한 박희영 프로가 최종라운드 때 경기하는 모습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정상을 차지했다. 사진제공=Golf Australia

[골프한국] 골프는 연속되는 깨달음의 긴 여정이다. 
초보 때는 초보대로, 중급자는 중급자대로, 고수는 고수대로 그 단계에서의 깨달음을 얻으며 다음 관문을 노크한다. 

골프에서 깨달음이란 한번 깨달았다고 해서 유지되지 않는다. 골프 근육의 기억력은 길어야 3일이라고 한다. 무릎을 치며 확인한 깨달음이 내 머리와 근육에 고스란히 남아 있지 않고 지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구력 30년이 지나서 새삼스럽게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도 골프 특유의 망각현상 때문이다. 

올겨울 내 머리를 울린 가장 큰 깨달음은 ‘골프는 철저한 기다림의 미학(美學)’이라는 명제다.

왜 골프가 ‘기다림의 미학’인가 요모조모 따져보니 골프는 충분히 미학의 우아한 책장을 장식할 만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이 처음은 아니다. 수년 전 겨울에 ‘골프는 기다림의 운동’이라는 깨달음에 흥분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번개처럼 머리를 울린 이 깨달음으로 연습했더니 비거리 방향성 안정성 등 모든 것이 놀랍게 개선되었던 경험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깨달음도 서서히 지워지고 예의 타성에 젖은 골프를 해오다 올겨울에 다시 이 깨달음과 조우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것도 더욱 강도 높은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가치를 깨닫기 위해선 그 대척점을 봐야 한다. 그곳엔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결여된 성급함, 조급함이 있다. 
자연스럽고 힘찬 스윙을 방해하는 것도, 미스샷을 유발하는 것도 모두 기다림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다.
풀 스윙을 못 한다는 것은 백스윙과 팔로우 스윙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다.
조급함 때문에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이 허리와 어깨가 충분히 돌아가 완벽한 백스윙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볼을 때려내겠다는 생각에 ‘탑 오브 스윙(Top of swing)’에 도달하기 전에 클럽을 끌어내린다.

뿐만 아니라 클럽 페이스가 지면에 놓인 볼과 정면으로 만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머리 가슴 등 상체를 미리 일으키거나 너무 빨리 허리를 돌리는 바람에 스위트 스팟에 볼을 맞히는 데 실패한다. 
여기에 볼을 멀리 날려 보내겠다는 욕심까지 더해 몸에 힘을 잔뜩 주고 회전운동을 하는 바람에 몸의 중심축과 척추각도 무너진다. 볼을 가격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팔로우 스윙 역시 중도에 멈춰져 버리고 만다. 

클럽헤드가 중력과 관성에 따라 내던져져 완전한 팔로우가 이뤄질 때까지 기다리면 방향성과 비거리가 보장된다. 그러나 회전동작이 저절로 소멸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클럽헤드가 등 뒤로 넘어가기 전에 중단해버림으로써 비거리도 손해 보고 엉뚱한 미스 샷을 유발한다. 

뒷땅이나 토핑, 하이볼, 슬라이스나 훅 등 모든 미스 샷 역시 모두 백스윙, 히팅 순간, 팔로우 스윙 시점에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덤빈 결과로 빚어지는 것이다. 

몸의 꼬임을 푸는 동작 역시 최대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기다린 만큼 텐션이 강해지고 폭발적 탄력이 만들어진다.
‘습관으로 굳어서’ ‘몸이 말을 안 들어서’라는 구차한 핑계를 대지 말자. 한 생각 바꾸어 어떤 동작이 이뤄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스윙의 완성은 완전한 기다림의 결과다. 이는 골프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다림의 미학’은 스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성급하게 좋은 결과를 바라거나 조바심을 내는 행동은 전체 게임의 흐름을 방해한다. 잃은 타수를 만회해야겠다는 조급함, 동반자를 꺾어야겠다는 경쟁심 역시 골프를 망치게 한다. 기회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어찌 골프를 철저한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아니 할 수 있겠는가.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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