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시즌 개막전 다이아몬드 리조트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준우승한 박인비 프로. 사진제공=P. Millereau/The Evian Championship


[골프한국] 화려한 여왕의 귀환이 될 뻔했다. 

메이저 7승을 포함해 LPGA투어 통산 19승에 올림픽 금메달도 따고 LPGA 명예의 전당에까지 이름을 올린 박인비(32)로서는 한동안 누려온 여왕의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아쉬워할 입장은 아니다. 

지난 2018년 3월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 우승 이후 2년 가까이 승수를 보태지 못했으나 결혼 후에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며 한국 여자골프의 중추 역할을 해온 것만으로 경이롭다.

LPGA투어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10년간 최고 선수를 가리는 팬 투표 결과 박인비가 마지막 결승에서 캐나다의 브룩 핸더슨(22)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은 여자골프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치를 증명해준다. 

스웨덴의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이 “최근 10년간 최고 선수를 꼽으라면 1위 박인비, 2위도 박인비”라고 단언할 정도로 그가 이룬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6명의 후보를 추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 팬 투표에서 톱 시드의 박인비는 미셸 위, 박성현, 리디아 고를 차례로 제쳤다. 14번 시드의 브룩 핸더슨은 스테이시 루이스, 렉시 톰슨, 청야니 등을 제치고 박인비와 결승 대결을 벌였으나 박인비를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더라도 박인비는 전성기를 지났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결혼한 지도 꽤 됐고 나이도 30대로 접어들었으니 은퇴 준비를 한다고 해도 이상하게 볼 골프 팬들은 없다. 

그러나 17~2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레이크 부에나비스타의 포시즌 골프 앤 스포츠클럽 올랜도에서 열린 LPGA투어 2020시즌 개막전 다이아몬드 리조트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박인비는 혜성같이 나타난 선수처럼 경기했다.

2018시즌과 2019시즌 우승자 중 26명이 왕년의 스포츠 스타 등 각계 저명인사 49명과 조를 이뤄 치러진 이 대회에서 박인비는 첫 라운드부터 뭇별들을 압도했다.

1라운드 버디 6개, 2라운드 버디 3개, 3라운드 버디 5개 보기 1개로 13언더파를 기록, 2위 김세영에 2타 앞선 단독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맞았다. 3라운드 18번 홀(파4)에서 보기를 기록하기 전까지 53홀 보기 없는 무결점플레이였다. 

박인비와 ‘역전의 여왕’ 김세영(26)이 한데 묶인 챔피언조의 경기는 특히 한국 골프 팬들에게 근래 보기 드문 볼거리였다. 

박인비는 LPGA투어 통산 20승과 올림픽 2연패의 꿈을, 김세영은 지난 시즌 마지막 대회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우승에 이어 새 시즌 개막전 우승이라는 희귀한 기록 도전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박인비가 우승하면 2003년 박세리(25승)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LPGA투어 20승 고지에 오를 수 있었다. 

김세영이 우승하며 LPGA투어 마지막 대회와 이듬해 개막전에서 우승하는 역대 두 번째 선수가 된다. 첫 기록은 LPGA투어 창립자 중 한 명인 루이스 서그스(미국)가 세웠다. 서그스는 1960년 시즌 마지막 대회인 샌 안토니오 키비탄에서 우승한 뒤 1961년 개막전 씨 아일랜드 오픈에서 우승하는 첫 진기록을 세웠다.

두 선수가 한 조에 묶인 게 불운이었다. 4라운드에서 지난 3개 라운드처럼만 경기했다면 둘 중 한 명이 우승하면서 ‘여왕의 귀환’이나 시즌과 시즌을 잇는 ‘바톤 터치 우승’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사이라 그랬는지 두 선수 모두 4라운드에서 가장 부진한 경기를 펼쳤다. 박인비는 2, 3홀 보기를 8, 16번 버디로 커버했지만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김세영 역시 들쭉날쭉한 경기로 한 타를 잃었다.

박인비는 이날 5타를 줄인 가비 로페스(26·멕시코), 3타를 줄인 하타오카 나사(21·일본)와 동률을 이뤄 연장전에 돌입했다.

18번 홀(파3)에서 펼쳐진 연장 첫 대결과 두 번째 대결에서 세 선수 모두 파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연장 세 번째 홀에서 박인비가 어서 승부를 끝내야겠다는 심리가 작용했는지 티샷이 그린 주변 워터 해저드로 향했고 박인비는 우승 경쟁에서 물러났다.

로페스와 하타오카는 이후 연장 4, 5차전에서도 승부를 못 가리고 일몰로 현지 시간 20일 오전 8시부터 1박2일의 연장전을 이어갔다.

6차 연장도 파로 비겼다. 7차 연장에서 로페스가 약 7m 버디 퍼트를 넣었고 하타오카는 그보다 짧은 거리의 버디 퍼트를 놓쳤다. 로페스는 2018년 11월 블루베이 LPGA 이후 통산 2승째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박인비의 경기는 눈부셨다. 정통 스윙과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거리나 정확도에서 밀리지 않고 퍼팅 능력도 살아났다. 시즌 중이었다면 충분히 우승을 거머쥘 기량이었다. ‘여왕의 귀환’을 장담해도 될 정도로 박인비는 전성기와 다름없는 절정의 기량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머지않아 그의 화려한 여왕의 귀환을 마주하게 될 것 같다.

허미정(31)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8언더파 63타를 몰아치며 최종합계 12언더파 272타를 기록, 공동 4위에 오르는 무서운 저력을 과시했다. 2019년 최고의 한 해를 보낸 허미정은 2020년 개막전에서 쾌조의 출발을 해 그의 상승기류는 당분간 이어질 분위기다. 

이밖에 고진영(24) 박성현(26) 김세영(26) 이정은6(23) 등이 지난해의 기세를 이어가고 박인비가 여왕의 귀환을 실현하고 유소연(29) 김효주(24) 양희영(30) 전인지(25) 최나연(32) 등이 기지개를 켠다면 올해 LPGA투어도 한국선수의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전지원(22) 손유정(18) 노예림(18) 등의 신인왕 도전도 볼만한 구경거리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