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오랜만에 수도권의 골프장을 찾았다. 라운드 약속을 하고 결례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골프 감을 되살리기 위해 이틀 연습장을 찾았지만 매일 연습하던 때와는 여러모로 느낌이 달랐다.  

우선 스윙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들었고 클럽 하나하나에 대한 신뢰감도 떨어져 있었다. 그러니 자신 있는 스윙이 만들어질 리가 없었다. 조심조심 엉킨 골프의 실타래를 풀어가겠다고 다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방향성이 나빠져 겨냥한 곳으로 볼을 보내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거리 또한 줄어들었다. 어프로치 샷 역시 정확도가 떨어져 좋은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특히 퍼팅은 최악의 수준이었다. 흔들림 없는 퍼팅이 장점이었는데 짧은 퍼트를 놓치기는 다반사고 3퍼트도 속출했다.

라운드 결과는 평소 핸디캡보다 15개 정도를 더 쳤다. 동반자들은 노상 주머니를 털던 사람에게 돈을 땄으니 즐거워하면서도 고수도 그렇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형편없는 스코어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태도를 무척 신기하다는 듯 감상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내가 태연할 수 있었던 것은 200년 전 스코틀랜드의 교습서에 쓰여 있는 연습에 대한 선학들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겨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연습을 강조하는 교습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현상 유지를 바란다면 이틀에 한 번씩 연습하라. 기량 향상을 바란다면 매일 연습하라. 그러나 현상 유지나 기량 향상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20년 넘게 유지해온 매일 연습의 습관을 수개월째 실천하지 않고 있으니 스코어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일 주일에 한번 연습장에 갈까 말까 하면서 현상유지를 할 수 있다면 누가 골프에 매달리겠는가. 

골프는 카르마(karma, 業)다. 연습의 질과 양, 본인의 골프에 대한 인식과 집중도, 그리고 라운드의 빈도 등이 한데 어우러져 나타난다. 그러니 오늘 내가 얻는 스코어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이 만들어낸 필연의 것이다. 그런데 왜 화를 내고 불쾌해 하는가. 

나이가 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고 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골프가 카르마임을 인정한다면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는 자세가 달라진다. 결코 지나친 기대는 하지 않는 태도도 얻게 된다. 연습도 제대로 못했으면서 전성기의 스코어를 머릿속에 그린다면 도둑 심보다.

“아! 옛날이여.”를 외치고만 있을 수 없다. 골프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면 골프의 퇴화 역시 겸허하게 받아들이든지, 열정이 살아 있다면 도도한 물결을 한번 거슬러 오르겠다는 각오로 덤비든지 선택해야 한다. 역류를 시도하지만 결국은 물결에 휩쓸릴 수밖에 없음을 나중에야 깨닫겠지만 골프의 열정은 그런 무모한 도전도 가능케 한다. 

모처럼 골프장을 찾는 골프애호가들에게 조용히 귀띔해 주고 싶다.
“골프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스코어가 좋으면 그것도 좋겠지만 푸른 잔디밭에서 나잇살 먹은 친구들끼리 키득거리며 자신의 골프 카르마를 시험해보고 라운드를 끝낸 뒤 생맥주를 마시는 게 바로 즐거움이고 행복 아니겠습니까.”

설원의 호랑이에게는 먹잇감을 쫓는 일이 중요하지 자신의 발자국에는 관심이 없다.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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