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LPGA 투어 2019시즌 캐나다 퍼시픽(CP) 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한 고진영 프로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모습이다. 사진제공=Bernard Brault/ Golf Canada


[골프한국] 여신(女神)의 강림이었다. 23~26일(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로라의 마그나GC에서 열린 LPGA투어 CP 위민스 오픈에서 고진영(24)이 펼친 경기는 여신의 라운드였다. 승리에만 연연해 악착같이 매달리는 인간의 라운드로 보이지 않았다. 

고진영은 ‘골프의 디바’임이 분명했다.
여신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Diva’가 탁월한 재능의 여성 가수나 배우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된 이상 고진영 같은 여자골퍼에게도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게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디바가 갖춰야 할 다양한 자질을 골고루 갖추었다. 
물론 그의 신체조건이나 골프와 관련된 여러 기량이 최고 수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보다 골프하기 좋은 신체조건을 가진 선수는 많다. 그보다 더 힘차고 아름다운 스윙을 가진 선수도 적지 않다. 그보다 더 먼 비거리를 가진 선수도 많다. 항상 뜻대로 구현하지 못하지만 그보다 더 날카로운 샷을 자랑하는 선수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최고 수준에 2% 정도 부족한 듯한 자신의 조건과 기량을 환상적으로 조화시키는 능력에선 그를 따를 자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로레나 오초아를 ‘골프 디바’로 부른다면 고진영은 완성되진 않았지만 미래의 ‘골프 디바’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선 그는 이번 대회에서 의상과 표정에서 여신의 분위기가 물씬한 신비로운 매력을 강렬하게 발산했다.
백색의 상 하의는 아름다운 골프코스의 초록색과 대비되어 유난히 눈부셨다. 허리를 굽히지 않고 가슴을 내민 걸음걸이는 도도한 데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샷의 결과에 따라 그의 얼굴에 나타나는 미묘한 표정 변화는 갤러리나 시청자들에게 신비한 매력으로 받아들여졌다.
뜻대로 샷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경우 약간의 실망이 비치는 듯하다가도 먼지 털 듯 부정적인 마음을 털어내고 은은한 미소로 변환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다. 
마음에 드는 샷이 나와도 환호작약하지 않고 캐디와 주먹을 대며 엷은 미소로 기쁨을 공유해 지켜보는 사람들의 가슴에 여운을 안겼다.

최고가 아닌데도 최고 수준에 닿아있는 그의 골프 기량은 갤러리나 시청자들에게 불가사의함을 느끼게 한다. 

드라이브 샷이 길지는 않지만 페어웨이를 잘 지켜내고, 송곳 같은 날카로움은 덜하지만 무던하게 파온을 시킬 수 있는 아이언샷 능력을 갖고 있다. 
놀라운 퍼팅 능력은 그의 한결같은 루틴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는 퍼트하기 전 볼의 라인을 맞추고 볼 뒤에 쪼그리고 앉아 퍼터의 샤프트를 이용해 볼이 굴러가야 할 길을 찾아낸다. 일어나서도 그 길이 맞나 유심히 살핀다. 의구심이 들면 잠시 물러나 같은 루틴을 반복한다. 결과는 믿을 수 없는 퍼팅 성공으로 나타난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능력 또한 탁월하다. 이번 CP 여자오픈 우승도 마지막 라운드 9번 홀의 위기가 안긴 선물이 아닐까.

덴마크의 니콜 브로흐 라르센은 1라운드부터 마지막 라운드까지 고진영과 팽팽한 선두경쟁을 벌였다. 1라운드 공동 선두, 2라운드 한 타 차이로 고진영이 2위, 3라운드 공동 선두로 끝냈다. 

4라운드에서도 한타 차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파5 9번 홀에서 고진영이 위기에 직면했다. 3번 우드로 친 세컨드 샷이 왼쪽으로 말려 패널티 지역으로 들어갔다.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하고 네 번째 샷을 핀 2m 옆에 붙였다. 그는 파 세이브에 성공, 한 타를 잃을 위기를 넘겼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자신감을 되찾아 첫승의 기대에 흥분해있던 라르센을 5타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할 수 있었다. 72홀 보기 프리 플레이라는 위대한 기록도 남겼다. 

2017년 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LPGA투어 티켓을 거머쥔 고진영은 2018년 시즌 개막전인 ISPS 한다 여자 호주오픈에서 루키로서 우승하는 기록을 남기며 신인상도 받았다. 

올해는 메이저대회(ANA인스퍼레이션, 에비앙 챔피언십)을 포함해 4승을 거두어 통산 승수는 6승으로 늘어났다. CP 여자오픈의 26언더파 기록도 2016년 아리야 주타누간이 세운 대회 최저타기록 23언더파를 3타 줄인 신기록이다. 

특히 동반선수와의 소통능력은 그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마지막 라운드를 캐나다의 골프스타 브룩 핸더슨과 함께 한 그는 마지막 홀 그린으로 걸어가면서 갤러리들 사이에 박수와 환성이 터져나오는 것을 보고 핸더슨을 앞세우며 “여기 관중들은 너를 위해 모였어”라고 말했다. 핸더슨이 “너의 우승을 지켜보기 위한 관중들”이라고 화답했다. 둘이 함께 대화를 나무며 마지막 그린으로 올라서는 모습에 갤러리들의 박수소리가 더 커졌다. 
아무렇지 않게 보일지 몰라도 이 장면은 한순간에 경쟁관계를 동료관계로 승화시켜 지켜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제 겨우 LPGA투어 2년 차인 고진영이 보여주는 ‘골프 디바’다운 모습을 보며 그의 금맥 캐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