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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프여정 20년 허미정, 골프의 고향에서 절정을 맞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2019년 LPGA 투어 애버딘 스탠다드 인베스트먼트 레이디스 스코티시 오픈(스코틀랜드 여자오픈) 우승한 골프선수 허미정 프로. 사진제공=Tristan Jones


[골프한국] 허미정(30)에겐 은근한 팬들이 많다. 열광적으로 피켓을 들고 따라다니거나 팬 카페를 만들어 후원하는 팬들은 없지만 먼 발치에서 그의 플레이를 보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팬은 많다. 중계화면에 스쳐 지나가는 모습에 누이 같은 이끌림을 느낀다고 고백하는 팬도 봤다.

승수도 많지 않고 그다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 그에 대한 호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많은 골프 팬들이 가슴 한켠에 허미정을 간직하고 그가 중계화면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책갈피 속 바랜 사진 만난 듯 반가움을 느낀다.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팬들의 공통점을 나름대로 꼽아보았다. 
우선 한국선수 치곤 드물게 장신이다. 176cm의 훤칠한 키에 다리가 유난히 길어 두루미나 학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또 누이처럼 친근한 이미지다. 화장을 요란하게 하지도 않고 특별한 퍼포먼스도 하지 않는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일상생활처럼 자연스럽다.
그래서인지 그에게선 운동선수 특유의 어떤 결기가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반드시 경쟁자를 물리쳐 우승컵을 차지해야겠다는 결의나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투지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

타고난 이런 성정은 그에겐 단점이자 장점이기도 할 것이다. LPGA투어 11년 차 선수로서 승수가 2승에 머물고 있는 것은 기량 문제가 아니라 투지나 결기 부족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10년 동안 LPGA투어에서 퇴출되지 않고 시드를 유지하며 꾸준히 중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 또한 그의 이런 성정 덕분처럼 보인다. 화끈하게 타올랐다가 금방 식거나 재가 되어버리지 않고 젖은 나무 타듯 은근하게 오래 가는 장작불처럼.

이런 허미정이 골프의 본향(本鄕) 스코틀랜드에서 절정을 맛보았다. 
8~11일 영국 스코틀랜드 노스 베리크의 르네상스GC에서 열린 LPGA투어 애버딘 스탠다드 인베스트먼트 레이디스 스코티시 오픈에서 허미정은 그의 골프 여정에서 가장 빛나는 경기를 펼치며 5년 만에 우승 갈증을 풀었다. LPGA투어 통산 3승째다.

2라운드에 단독 선두에 올라섰다가 3라운드에서 모리야 주타누간에게 1타 차 선두를 내주고 이정은6와 함께 공동 2위에 머문 그가 과연 마지막 라운드에서 두려움 없는 기세를 보이는 젊은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싶었다.

항상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주타누간 자매, 신인으로서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돌풍의 주인공이 된 이정은6. 명랑골퍼의 대명사 이미향 같은 젊은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30고개를 넘긴 그가 버텨낼지 의문이었다.

세찬 비가 흩뿌리는 마지막 라운드 전반을 끝낸 상태의 리더보드가 이런 의문을 대신했다. 이미향, 이정은6, 허미정이 15언더파로 공동 2위에 포진한 가운데, 위로는 모리야 주타누간이 16언더파로 막고 있고 아래에는 아리야 주타누간이 2타 차이로 공동2위 그룹을 추격하는 모습은 한국선수들이 태국선수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후반전 들어 그는 링크스 코스의 전형적인 악조건이 겹친 속에서 그의 골프 생애 중 가장 견고한 플레이를 펼쳤다.

골프코스 곳곳에 세워진 ‘The Home of Golf’라고 쓰여진 입간판에서 간파할 수 있듯 골프 본고장의 자존심을 안고 있는 르네상스GC의 골프코스는 링크스 코스가 보여줄 수 있는 가혹한 상황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세찬 비바람. 깊은 러프, 젖은 벙커, 가래로 물을 쓸어내야 할 정도의 그린 등 가혹한 조건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허미정은 그러나 믿을 수 없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생애 최고의 플레이를 펼쳤다. ‘골프의 고향’에서 제대로 골프를 즐겨 보겠다고 마음 먹은 듯 그의 플레이는 가혹한 조건들에 구애받지 않았다. 내 눈에는 허미정 자신에게도 생애 최고의 플레이였을 뿐만 아니라 함께 경기한 젊은 선수들을 압도하는 경기였다. 

10세 때 골프를 시작했으나 그의 골프 여정은 어느새 20년이 되었다. 1998년 박세리가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보고 골프선수의 꿈을 키운 그는 화려한 아마추어 시절을 거쳐 2007년 프로로 전향했다. 2008년 미국으로 건너가 듀라메드 퓨처스투어(2부 투어) 상금순위 4위로 LPGA에 입문, 2009년 신인으로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첫 승을 신고했다. 
5년 후인 2014년 요코하마 타이어 LPGA클래식에서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렇다고 성적이 부진한 것은 아니었다. 매년 톱10에 두세 번씩 들고 70%대의 컷 통과율을 유지해왔다.

그리고 부진이 이어졌다. 그러나 올해 메이저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 공동 13위, AIG 위민스 브리티시오픈 공동 64위에 들면서 상승기류의 기운이 돌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골프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에서 나래를 활짝 펼쳤다.

지난해 1월 결혼한 허미정의 이번 대회 우승엔 남편의 역할이 큰 힘이 된 것으로 보였다. 그가 경기할 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격려의 사인을 보내는 남편의 모습이 카메라에 자주 잡혔는데 두 사람 사이에 긍정의 기가 넘치는 듯했다. 마지막 홀 우승이 결정된 후 모습을 드러낸 남편이 연인처럼 허미정을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무서운 후배들을 보며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에 골프의 절정에 경험한 허미정이 결혼 후에도, 30대 이후에도 얼마든지 멋진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입력날짜 : 2019-08-12 12:3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