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투어 네이트 레슐리와 잭 서처, 코리안투어 이원준

▲(왼쪽부터) PGA투어 네이트 레슐리와 잭 서처, 코리안투어 이원준 프로.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정원이나 실내에서 가꾼 꽃은 화려하고 향기도 진하지만 마음의 현을 울리지 못한다. 야생의 들꽃은 초라할 정도로 소박하고 향기도 옅지만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재배된 꽃과 야생에서 자생한 꽃의 진정한 차이는 화려한 모양이나 짙은 향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재배된 꽃은 눈부시게 화려하고 향기도 짙지만 인조(人造)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야생의 들꽃은 작고 소박하지만 보는 사람의 가슴에 긴 떨림을 남긴다. 

프로골프의 세계에도 온실이나 정원에서 재배된 골퍼와 야생에서 자생한 들꽃 같은 골퍼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선수들이 부모의 인도로,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으며 프로골퍼로 활동하고 있다. ‘골프 대디’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자식을 프로골퍼로 성공시키기 위해 올인하는 풍토다. 
한국 여자골퍼들이 LPGA투어의 주류로 자리 잡은 것도 선수 개개인의 소질과 노력 외에 골프 대디들의 헌신이 큰 몫을 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없는 상당수 선수들은 눈물 젖은 빵을 뜯으며 갖은 역경을 헤쳐나가야 한다. 최경주나 최호성처럼 선수로 일가를 이룬 경우는 극소수고 대부분은 무대에서 밀려난다.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 박세리, 미셸 위, 리디아 고, 브룩 핸더슨, 주타누간 자매 등이 ‘사육된 골퍼’의 전형들이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필요에 의해 사육된 골퍼들이 세계 골프를 지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주 세계 곳곳에서 들꽃 같은 선수들이 인간승리의 감동을 전했다. 

지난 1일(한국시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GC에서 막을 내린 PGA투어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6타 차로 우승한 무명의 네이트 레슐리(36)는 들판에서 질 뻔한 야생화였다.

애리조나 대학의 촉망받는 골프선수였던 그는 골프 때문에 부모와 여자친구를 한꺼번에 잃었다. 그의 경기를 보고 돌아가던 부모와 여자친구가 탄 비행기가 추락한 것이다. 

이 악몽을 잊기 위해 그는 골프에 매달렸고 PGA투어 2부 투어에서 뛰다 자격을 잃고 Q스쿨에서도 낙방, 부동산 중개업을 하며 시골의 미니 투어에 얼굴을 내밀 정도였다. 선수로서의 희망의 불씨도 거의 꺼진 상태였다.

골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2014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도전에 나섰다. 2015년 PGA투어의 3부 투어인 라틴 아메리카 투어, 2017년 2부 투어를 거쳐 지난해 드디어 PGA투어 입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무릎 부상으로 지난해 절반밖에 못 뛰었고 올해도 조건부 시드였다. 불참 선수들이 많아야 겨우 출전기회가 오는데 ‘가뭄에 콩’이었다.

그는 로켓 모기지 클래식 월요예선에 참가했으나 출전권을 따는 데 실패, 대기 순번으로 기다리다 한 선수가 기권하면서 간신히 출전기회를 얻었다. 달리는 열차의 맨 뒷칸에 매달린 그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생애 첫 우승으로 골프팬들의 가슴을 적셨다.

지난달 24일(한국시간) 미국 코네티컷주 크롬웰 리버 하이랜드 TPC에서 끝난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에서 공동 2위를 한 잭 서처(32·미국)도 잡초 같은 들꽃이다. 

2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기도 했던 그는 결국 체즈 리비(37·미국)에 4타 뒤진 공동 2위에 올랐으나 우승자처럼 환호했다. 

그는 2009년 PGA투어에 데뷔해 띄엄띄엄(2009, 2015, 2017, 2019년) 활동했으나 컷 탈락이 잦아 존재감이 없었다. 적은 수입으로 참가비를 댈 수 없어 대출을 받거나 카드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공동 2위로 단번에 63만 3,600 달러(한화 약 7억 3,326만원)를 번 그는 “이제 카드 빚과 대출을 다 갚을 수 있게 됐다”며 눈물을 훔쳤다.

지난 1일 끝난 유러피언투어 안달루시아 마스터스에서 6타 차로 첫 우승을 한 크리스찬 베우이덴하우트(25·남아공)는 뿌리조차 내리기 어려운 바위 틈에서 꽃을 피운 야생화다. 

두 살 때 콜라 캔에 든 쥐약을 콜라인 줄 알고 마셨다가 신경계 이상증세로 말을 더듬게 된 그는 친구들의 놀림이 싫어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골프에 매달렸다. 

영국에서 열린 아마추어 대회에 나갔다가 말더듬 증상 치료를 위해 먹은 약 때문에 도핑으로 적발, 2년간 출전을 정지당했다. 정상이 참작되어 징계가 9개월로 줄자 골프에 열정을 쏟은 그는 남아공 2부 투어, 1부 투어를 거쳐 지난해 유러피언 투어에 진출, 올 시즌 톱10에 5차례나 오르며 우승을 꿰찼다. 

지난 30일 경남 양산 에이원CC에서 열린 KPGA선수권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서형석(23)과의 연장 접전 끝에 프로 첫 우승을 맛본 호주 교포 이원준(34)도 잡초 같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프로 데뷔 13년 만에 귀한 꽃을 피운 케이스다. 

주니어 시절 괴력의 장타로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던 이원준은 2006년 아마추어 신분으로 참가한 삼성 베네스트오픈에서 준우승을 거둔 뒤 ‘골프신동’이란 소리를 듣고 이듬해 프로로 전향했다.

그러나 정작 프로가 된 뒤에는 일본투어와 PGA 2부 투어, 코리안투어 등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프로 입문 5년 만에 손목 인대가 다 닳아 골프를 칠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골프채를 놓고 의대 진학을 준비했다. 
골프를 중단하고 2년이 지나 몸이 좋아지자 다시 골프채를 잡았으나 이번에는 디스크가 파열됐다. 

지난해부터 예전 기량을 회복하기 시작한 그는 이번 대회에 초청 선수로 출전, 나흘 내내 선두를 내놓지 않고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 2억원과 2024년까지 코리안투어 출전권, 오는 10월 제주에서 열리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더CJ컵 출전권까지 확보한 이원준의 끈질긴 야생의 생명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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