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LPGA 메디힐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세영 프로. 사진제공=Gabe Roux/LPGA


[골프한국] 김세영(26)에겐 유난히 많은 수식어가 별명처럼 따라다닌다. ‘태권소녀’ ‘투우사’ ‘마술사’ ‘역전의 여왕’ ‘빨간바지’ 등등.

‘태권소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을 놀이터 삼아 드나들며 익혀 공인 3단 실력까지 갖췄으니 당연한 별명이다. LPGA투어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현지 태권도장을 찾아 발차기로 송판을 격파하는 모습이 우연히 동영상으로 찍혀 퍼지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태권도로 익힌 정신력과 이에 따른 운동습관은 다른 별명을 낳는 텃밭 구실을 했다. 

데뷔 2년 차 해인 2016년 6월20일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 블라이드필드CC에서 펼쳐진 LPGA투어 마이어클래식 마지막 라운드에서 김세영은 매우 어려운 상대들을 만났다. 
김세영은 렉시 톰슨과 공동선두로, 전인지는 한 타 뒤진 3위로 챔피언조에 묶였다. 챔피언조 바로 앞에 스페인의 강자 카를로타 시간다가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렉시 톰슨은 미국이 내세우는 대표선수로 LPGA투어 최고의 장타자다. 미스 샷을 낸 뒤 표정이 변하며 컨디션 난조에 빠지는 결점이 있지만 누구라도 대적하기 벅찬 선수다. 
카를로타 시간다 역시 또래의 청년을 연상케 하는 강인한 체격에 걸음걸이도 터프하고 장타자다. 
우람한 체격과 힘으로 길게 볼을 날리며 저돌적으로 덤비는 렉시 톰슨과 카를로타 시간다는 영락없이 투우장의 거친 황소였다. 노련한 투우사라 해도 163cm의 김세영으로선 힘겨운 상대임에 틀림없었다.

김세영은 뛰어난 토레로(torero, 투우사)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투우사라 해도 황소에게 작살을 던지는 반데리에로(banderillero)나 창을 던지는 피카도르(picador) 같은 조연 투우사가 아닌 ‘투우사의 꽃’ 마타도어(matador)로서 팬들을 열광시켰다. 

마지막 라운드 18홀을 마칠 때까지 카를로타 시간다가 연장전에 대비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우승한 줄 착각했다가 연장전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안 황당한 상황에서도 그는 일류 투우사의 위용을 잃지 않았다.
투우사의 붉은 망토를 떠올리는 붉은색 바지를 입은 그는 작살이나 창도 유용하게 사용했지만 비장의 예리한 단도로 결정적인 순간에 황소를 무릎 꿇리는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김세영은 2015년 LPGA투어 데뷔하자마자 3승을 거두며 돌풍의 핵으로 부상했는데 모두 극적인 상황을 만들며 우승했다. 
특히 그해 4월 19일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오아후 코올리나 골프클럽에서 막을 내린 LPGA투어 롯데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김세영이 펼친 골프 퍼포먼스는 기적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했다. 

김세영은 한 대회에서 한 번 정도 나올까 말까 한 기적을 두 번이나 만들어냈다. 
김세영과 박인비는 11언더파 공동선두로 마지막 18번 홀을 맞았으나 김세영의 티샷이 워터 해저드로 빠지면서 사실상 우승의 여신은 박인비 편에 서는 듯했다. 박인비는 파온만 하면 버디나 파 세이브가 가능한 상황인데 반해 김세영은 반드시 세 번째 샷을 핀 가까이 붙여 원 퍼트로 홀인시켜야 연장전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박인비는 예상대로 투온에 성공했고 1벌타를 받고 세 번째 샷을 날린 김세영의 볼은 온 그린에 실패, 보기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박인비의 버디 퍼팅은 빗나갔지만 파 세이브는 확정적이었다. 김세영이 그린 옆에서의 칩샷을 바로 홀인 시키지 않는 한 우승은 박인비의 것이었다. 

첫 번째 기적은 이때 일어났다. 김세영의 클럽을 떠난 볼은 그린에 떨어져 구르더니 바로 깃대가 꽂힌 홀로 사라졌다. 김세영은 자신도 모르게 클럽을 내던지고 하늘로 향해 고개를 젖히고 팔을 벌렸다. 
벼랑 끝에 매달렸다 살아나 연장전에 돌입한 김세영은 바로 직전의 칩인샷보다 더 기적적인 샷을 만들어냈다. 8번 아이언으로 날린 볼이 그린 바깥 에지에 떨어져 튀면서 그린으로 올라오더니 한 번 튄 뒤 바로 홀로 사라진 것이다. 박인비의 두 번째 샷이 온그린 됐으나 김세영의 샷 이글로 이미 승패는 판가름 났다. 김세영이 하늘과 갤러리, 카메라를 향해 손바닥으로 키스 세례를 날릴 만했다. 

데뷔 첫해 3승을 거둔 데다 그때마다 기적같은 샷이 속출하자 자연스럽게 그에게 ‘마술사(magician)’란 별명이 추가되었다. 
  
6일(한국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데일리시티 레이크 머세드GC에서 막을 내린 LPGA투어 메디힐 챔피언십에서 김세영은 새로운 버전의 마술로 골프 팬들을 놀라게 했다.

3타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김세영은 1번 홀 더블보기, 2번 홀에서도 보기를 범하면서 순식간에 공동선두를 허용했다. 이 사이 브론테 로(영국)이 무려 7타나 줄이며 단독선두로 경기를 끝냈다. 

김세영은 8번 홀에서도 한 타를 잃고 15번 홀에서 간신히 버디를 낚아 희망의 불씨를 살렸으나 17번 홀에서 또다시 보기를 범하며 우승과 인연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18번 홀에서 버디를 건져 브론테 로와 이정은6(22)와 연장에 돌입했다. 

18번(파5) 홀에서 계속된 연장 첫 번째 경기에서 귀중한 버디에 성공, 실패로 끝날 것 같던 매직쇼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역시 이날도 김세영은 우승을 예감하며 ‘빨간바지’를 입었고 천신만고 끝에 역전 우승에 성공, ‘역전의 여왕’임을 입증했다. LPGA투어 통산 8승에 4번째 연장전을 모두 우승한 ‘연장 불패’의 기록도 이어갔다. 데뷔 이후 매년 우승을 거르지 않은 기록도 이어졌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3오버파를 치고도 끝까지 우승의 끈을 놓치지 않은 근성이 돋보였다.
지켜보는 골프 팬들을 속 타게 하는 매직까지 펼치는 김세영의 매력에 어찌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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