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PGA 투어 아놀드 파머 인미테이셔널에서 우승한 프란체스코 몰리나리.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프란체스코 몰리나리(36·이탈리아)는 지난해 7월 스코틀랜드 커누스티 골프링크스에서 열린 147회 디 오픈 때 경기를 마친 뒤 휴게실에서 다른 선수들의 경기 중계화면을 지켜보다 우승을 확인했다.

11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베이힐의 베이힐 C&L 골프코스에서 열린 PGA투어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도 그는 경기를 미리 끝내고 챔피언조를 비롯한 선두그룹의 경기를 지켜보다 우승을 확정지었다. 

말하자면 챔피언조로 경기하던 중 마지막 홀에서 극적으로 우승을 결정지은 게 아니라 선두그룹과 멀리 떨어져 경기한 뒤 다른 선수들의 결과를 지켜보며 우승을 기다린 셈이었다. 중요한 대회에서 두 번씩이나 ‘대기실 우승’을 경험하는 것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디 오픈에서 몰리나리는 타이거 우즈와 같은 조로 경기했다. 골프 기량, 경험, 명성 등에서 타이거 우즈와 프란체스코 몰리나리는 비교가 안 된다. 우즈는 황제의 귀환을 꿈꾸며 복귀한 뒤 상승기류를 타고 있어 유럽 변방의 실력자 중 하나인 몰리나리로선 우즈와 같은 조로 경기하는 것만으로 영광이고 행운이었다. 

몰리나리가 우즈와 같은 조로 마지막 라운드를 돌지 않았다면 ‘클라레 저그’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물론 몰리나리가 뛰어난 기량으로 우승을 차지했지만 몰리나리가 그런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우즈의 영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디 오픈은 우즈에게 황제 귀환에 안성맞춤의 무대였다. 상승세를 타고 있던 그가 전성기의 경기를 펼친다면 황제의 귀환과 그가 도달하지 못한 두 개의 대기록(샘 스니드의 PGA 통산 82승,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18승)에도 근접할 수 있었다. 

반면 퀴큰론스 내셔널 대회 우승으로 PGA투어 첫 우승을 맛본 몰리나리로선 당대 최고의 골퍼와 라운드 기회를 갖는 것 자체가 영광인 입장이었다. 

우즈를 이겨야 한다는 강박감보다는 대스타에게 배우겠다는 겸손함, 그러면서도 쉽게 무릎을 꿇지는 않겠다는 투지,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아쉽게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가 생겼을 것이다. 여기에 괜히 우즈를 흉내 내다 페이스를 잃지 말고 자신의 스타일로 경기를 하겠다는 결의도 다졌을 것이다. 

런던의 베팅회사 우승확률에서도 우즈는 1위에 올라있고 자신의 이름은 우승 후보 명단에도 들지 않았으니 감히 우즈를 꺾겠다는 만용이나 객기를 부릴 이유도 없었다. 

우즈는 디 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전반 버디 2개를 잡으면서 7언더파를 기록, 한때 1타 차 단독 선두에도 올랐으나 후반에 타수를 잃으면서 선두 싸움에서 밀려나 최종 성적 5언더파 279타로 공동 6위에 그쳤다.

반면 3라운드에서 6언더파를 치며 선두권에 올라선 몰리나리는 마지막 라운드 전반을 파 행진을 이어가다 후반에 두 타를 줄여 7언더파로 경기를 마쳤다. 

몰리나리가 휴게실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가운데 그와 우승경쟁을 벌이던 젠더 슈펠레가 한 타를 잃으면서 케빈 키스너, 저스틴 로즈, 로리 매킬로이 등 공동 2위로 밀려나고 우승컵은 그의 차지가 되었다.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마지막 라운드에서 그는 4언더파 공동 16위로 챔피언 조(로리 매킬로이, 매슈 피츠페트릭)보다 10개팀 앞서 출발했다. 단독선두 매슈 피츠패트릭과 로리 매킬로이, 맷 월리스와 아론 배들리, 임성재와 토미 플리트우드, 캐빈 키스너와 크리스 커크, 키건 브래들리와 카브레라 베요 등이 한두 타 차이로 우승경쟁을 벌였다. 

마지막 라운드를 출발할 때만 해도 그는 우승보다는 순위를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였다. 장타들 속에서 그는 기죽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펼쳐나갔고 그 결과 하루에 8타를 줄였다. 
신체적 조건이나 기량 면에서 압도적으로 내세울 것은 없지만 기복이 없는 안정된 플레이, 자신의 단점을 보완할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하며 합계 12언더파 단독선두로 경기를 마쳤다. 

뒷조 선수들이 한두 타 차이로 무리를 지어 추격하는 상황이라 우승을 장담할 수 없었으나 마지막 라운드에서 1타밖에 줄이지 못한 매슈 피츠패트릭은 8타를 줄인 몰리나리에게 우승을 넘겨주어야 했다.몰리나리는 탁월한 기량과 신체조건이 우승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님을 묵시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강성훈(32), 임성재(21), 안병훈(28) 등 한국선수 세 명이 공동 3위, 공동 6위, 공동 10위 등 톱10에 든 것은 조만간 우승 소식이 들려올 반가운 조짐이었다 

특히 임성재와 강성훈은 한때 선두자리까지 위협하며 선전, 어느새 PGA투어의 중견 선수로 자리를 굳혀가는 모습이었다. 임성재의 경우 14번째 대회에서 세 번씩이나 톱10에 이름을 올려 신인의 때를 빠른 속도로 벗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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