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우리 동네 골프 연습장에 별난 두 노옹(老翁) 친구가 있다. 성공적으로 현역시절을 보낸 분들로 해 넘기며 한 분은 80대를 바라보고 있고 다른 한 분은 7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는데 골프 열정은 청년보다 뜨겁다. 한파가 이어지는 날에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연습장에 나와 골프채를 휘두른다. 4~5년 전에도 열심인 편이었지만 최근 들어 더 열성을 보인다.

몇 년 전에 한 분에게 이렇게 물은 기억이 난다. 
“그 연세에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내 물음에 80대 진입을 앞둔 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파에 앉아 TV 리모콘만 만지작거리다 일찍 간 친구들 여럿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좀 귀찮더라도 연습장에 나와야 자극도 받고 운동도 됩디다.”

아닌 게 아니라 열심히 나오던 분이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몸이 불편하다는 소식이 들리고 한참 지나면 어김없이 타계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 한파가 이어진 날에도 거르지 않고 연습장을 찾는 것을 보고 다시 물었다. 
“아니 이 한파에 좀 쉬시지요. 얼마나 더 잘 치시겠다고 그러시는지 욕심이 대단하십니다.” 

그러나 노옹은 정색하며 말했다. 
“욕심 많아 보여요? 욕심이라면 욕심일 수도 있지요. 솔직히 말해 후회 없는 골프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이지요. 욕심이라기보다 마지막 소원인 셈이지요.”

“후회 없는 골프란 없지 않습니까?”
“프로도 후회하는데 아마추어가 후회하는 건 당연하지요. 그래도 단 한 번이라도 후회 없는 라운드 하고 싶어요. 40여년 골프를 쳐왔지만 그런 기억이 없어요. 최근 몇 달 사이 그런 골프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찾았어요.”

형님 노옹이 이렇게 변한 데는 아우 노옹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두 분 모두 골프이론에는 해박하고 학구적이지만 습득과정에서 차이가 있었다. 
형님 노옹은 얼떨결에 선배에 의해 필드로 끌려나가 마구잡이로 골프를 익혀 기본이 취약한 편이었다. 고질병이 돼버린 여러 나쁜 습관이 있는 데다 고집도 센 편이다. 옆에서 누가 지적을 하면 “나도 잘 압니다”라는 한마디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반면 아우 노옹은 골프를 처음 배울 때 제대로 레슨을 받은 데다 해박한 골프이론으로 무장돼 있었다. 체격도 좋아 젊은이 못지않은 비거리를 자랑한다. 이미 굳어버린 사소한 습관만 빼면 전반적으로 무리 없는 스윙을 구현해내고 실전경험도 풍부해 그 연배에선 강자로 통한다. 

그런데 이 두 노옹이 서로 얼굴을 익히고 말을 트더니 급속히 친구로 가까워졌다. 웬만해선 다른 사람의 충고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던 형님 노옹이 아우 노옹의 지적을 흔쾌히 받아들이는가 하면 형님 노옹도 아우 노옹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옆에서 보기엔 친구이자 사제관계였다. 나이가 뒤집힌 사제관계. 저 나이에도 저런 식으로 친구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누가 먼저 연습장에 나와 친구가 안 보이면 전화를 해 연습장에 나올 것을 채근하고 채근을 받은 노옹은 어김없이 골프 백을 메고 나타났다. 
2층 타석 맨 앞 대형거울이 있는 좌석 두 개를 차지해 마치 세미나를 하듯 열심히 서로의 스윙을 점검하며 지도를 하고 지도를 받았다.

수년 전 형님 노옹의 스윙을 교정해주려고 시도했다가 수용하려는 자세가 안 보여 포기했던 내가 끼어들 틈이 생긴 셈이었다. 
“수년 전에 제가 그렇게 말씀드려도 안 들으시더니 이젠 열심히 배우시네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이 분이 날 이렇게 못살게 구니 안 넘어가고 배기겠어요? 가르치려는 열성이 대단해서 스승으로 모시기로 했어요.”
형님 노옹의 표정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었다. 

“골프의 은인을 만나셨네요.”
“맞아요. 골프 은인이지요.”
이후 두 노옹 친구는 자주 내게 찾아와 묻고 점검을 받으며 ‘후회 없는 골프’를 위한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고맙게도 노옹 친구의 영향으로 나 역시 후회 없는 골프를 위한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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