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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프가 뭐기에 목숨까지 잃으며 하는지…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골프라는 스포츠가 갖는 중독성은 지탄의 이유는 아니다. 골프 인구의 저변이 웬만한 스포츠에 비해서도 넓고 골프 인구의 증가 속도도 가파르지만 한국적인 특수환경으로 인해 골프는 여전히 ‘그들만의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다. 

그 특수환경이란 한때 만연한 왜곡된 접대문화 탓이 크다. 권력층, 부유층의 골프 애호가 때때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심한 경우 죄악시되기까지 하는 것도 이 땅의 골프 환경과 비뚤어진 접대문화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한국에서만 골프가 적대시된 것만은 아니다. 골프는 초창기부터 탄압의 역사로 점철돼 있다.

골프는 발상지인 스코틀랜드에서부터 국가적인 논란거리가 되었고, 수차례에 걸친 골프 금지령이 왕명으로 내려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골프에 대한 대중의 열광적인 사랑을 차단하지는 못했다. 골프 금지령을 내린 왕마저 그 마력 앞에 무릎을 꿇게 한 골프는 ‘지상의 스포츠 중 가장 불가사의한 스포츠’라는 꼬리표를 달고 무서운 속도로 골프 애호가를 넓혀갔다. 골프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는 데는 긴 시일이 걸렸지만 쇠퇴하기는커녕 번성일로에 있다. 

이 땅에서도 골프는 가장 열광적인 애호가가 모이는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골프가 스코틀랜드에서 발생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중 스포츠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가장 인간적이고 싫증나지 않는 불가사의한 스포츠’라는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골프가 한국에 들어와서는 한동안 대중 스포츠가 아닌 소수 특권층이 즐기는, 돈 많이 들어가는 사치성 스포츠로 변질되고 말았다. 골프의 특성이나 철학을 논하는 것 자체가 한가롭고 사치스러운 호사로 취급당하는 분위기였다. 한때는 공개적으로 골프를 언급하는 것조차 터부시되는 시기도 있었다. 

지금도 신문에 고위 공무원이나 공기업의 장(長) 인사가 날 때 그 프로필의 취미란에 골프를 명시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분위기는 이 땅에서 골프가 그다지 떳떳하지 못한 역사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 애호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까닭을 캐려면 골프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사진=골프한국

골프의 기원과 발상이 딱히 언제였는지 정설은 없다. 다만 골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골프를 탄압하는 ‘골프 금지령’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1457년 3월6일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2세는 골프를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골프사가들은 이 금지령이 내려지기 100여년 전부터 골프라는 스포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말하자면 14세기 전에 골프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얘기인데 이를 입증할 만한 자료들은 풍부하다. 

제임스 2세가 내린 포고령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축구와 골프는 절대 금지한다. 지금 우리나라(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침공 위협에 처해 있으므로 모든 남자들은 무술에 전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태만이 하고 축구나 골프에 열을 올린다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왕명으로 이를 일체 금지시키는 바이다.”

이 포고령을 근거로 축구와 함께 골프라는 게임이 그전부터 스코틀랜드에서 대단히 성행했고, 따라서 왕명으로 금지시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제임스 2세는 골프 금지령을 내리는 한편 스코틀랜드의 숙적이던 잉글랜드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전해인 1456년부터 16세 이상 60세 미만의 국민들에게 징병제도를 실시하고 있었다. 귀족들도 1년에 네 번은 반드시 궁술 마술 등 무술대회에 참가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을 만들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골프와 축구에 탐닉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을 것이다. 국가방위를 책임지고 생산 증대를 독려해야 할 국왕의 눈에는 골프는 백해무익한 스포츠였다. 

골프 탄압의 역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최초의 골프 금지령을 내렸던 제임스 2세의 아들 제임스 3세는 1471년 5월 6일, 전왕에 이어 두 번째로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이유는 역시 국가방위. 첫 번째 금지령이 내려진 후 14년 만의 일이다. 아무리 왕명이 엄해도 이미 대중적으로 번져 있던 골프의 열기는 세월이 가고 탄압이 심해도 식을 줄 몰랐던 모양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로부터 20년 후에 내려진 세번째 골프 금지령이다. 제임스 3세의 아들인 제임스 4세는 1491년 5월 14일 지금까지 내려졌던 어느 포고령보다 더욱 가혹하고 엄한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내용인즉, “나의 왕국 어디에서든 축구나 골프, 기타 왕국의 공익과 방위에 해가 되고 반하는 쓸모없는 골프 같은 스포츠가 행해져서는 안 된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토지를 제공한 자도 금고형이나 벌금형에 처한다.” 
이때 실제로 왕명을 어긴 일부 골퍼나 토지 제공자들이 거액의 벌금형을 선고받았거나 구금된 사례가 발생했다. 이런 기록들은 골프의 속성, 골프의 마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세 번째 골프 금지령을 내렸던 제임스 4세가 열렬한 골프애호가로 돌변하는 모습이다. 

제임스 4세는 금지령을 내린 지 3년 후인 1502년 골프 금지령을 스스로 위반한 기록을 남겼다. 그해 9월 21일 궁정 회계부에 “왕이 궁사(弓師) 생 존스톤에게 골프클럽을 만들게 하고 그 대금으로 8실링을 지불케 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503년 2월 3일자에는 “왕이 신하인 바즈웰 백작과 골프를 하고 내기에 져서 42실링을 지불하도록 한 후 또 공을 만드는 대금으로 8실링을 지불했다”고 기록돼 있다. 뿐만 아니라 제임스 4세는 바즈웰 백작에게 번번이 져 화가 난 나머지 그 후 3년간 열심히 골프연습을 했고 그 때문에 1505년 2월 22일에는 공 1다스의 대금으로 3실링, 1506년 7월 18일자에는 클럽 대금으로 2실링을 지불토록 한 기록도 남아 있다. 

이런 기록도 남아 있다. 평소 “골프란 도대체 힘도 숙련도 필요치 않은 바보스러운 스포츠”라는 골프 무용론을 펴온 제임스 4세에게 당시 귀족과 시민들은 “국민건강에 유익한 스포츠를 금지시킴은 현명치 않다”며 상소도 하고 간곡히 재고토록 요청했다. 왕은 “그렇다면 직접 시험해보자”며 코스에 나가 스윙을 해보았으나 공이 뜻대로 맞지 않았다. 화가 난 왕은 “짐이 아무렴 이 정도도 못 치겠느냐”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코스에 나가 샷을 해보았으나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왕은 점차 골프에 열을 올리게 됐고, 결국 골프라는 마술에 걸리고 말았다. 

제임스 4세의 아들 제임스 5세 역시 열렬한 골프 애호가로 왕가로서는 처음으로 사설 골프장을 만들어 골프를 즐겼다. 그는 축구와 함께 골프를 국기로 정했을 뿐만 아니라 로열 스포츠로 격상시키는 데 앞장섰다. 

제임스 5세의 딸 매리 공주는 사상 최초의 여성골퍼로, 그녀는 바로 골프 때문에 비명에 가고 만다. 

매리 공주는 제임스 5세에 이어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되는데, 여왕이 되어서는 골프를 광적으로 즐겼다. 시녀와 골프를 쳐서 게임에 지자 자신의 목걸이를 선물했던 일화도 전해지는 매리 여왕은 1567년 남편인 당리 경(卿)의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아 장교와 함께 골프를 쳤다. 이 사건으로 교회와 충돌한 여왕은 끝내 교회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왕궁에서 쫓겨나 잉글랜드에서 오랜 유폐생활을 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최초의 여성골퍼가 바로 골프 때문에 비명에 갔다는 사실은 극적인 아이러니로 볼 수도 있지만 골프가 갖고 있는 중독성 높은 마력을 엿보게 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일요일 오후 교회의 예배가 끝난 후에는 골프를 쳐도 좋다”는 골프 완화령을 내린 왕은 바로 골프 때문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매리 여왕의 아들인 제임스 6세다. 그는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 2개의 왕위를 차지했는데 그 역시 어머니의 기질을 물려받은 지독한 골프광이었다. 골프 금지령은 해제되었으나 일요일이나 안식일에는 골프를 금지시켰고 이를 위반했을 때에는 40실링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었는데, 제임스 6세는 일요일 골프금지 조치에 국민들의 불평이 높아지자 1618년 일요 골프금지를 푸는 완화령을 내렸다. 

이를 두고 역사가들은 “국민의 불평뿐만 아니라 왕 스스로가 일요일 골프 금지가 불편해서 해제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후 골프 열풍은 요원의 불길처럼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전역으로 번지고, 다시 유럽의 주변 국가로 전파됐다. 

미국이라는 신천지로 건너가면서 골프는 절정기를 맞았다.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의 골프열풍은 “영국인은 3명만 모이면 골프장 만들 궁리를 하고, 미국인은 넓은 땅만 보면 골프장을 설계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우리나라도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에 이은 ‘골프강국’으로 국내 골프용품 시장규모가 세계 세 번째에 이를 정도로 골프 열풍이 뜨겁다. 

골프는 당시의 국가 상황에 따라 엄격히 금지되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허용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골프가 갖고 있는 중독성 강한 마력과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이라는 속성 때문에 골프를 향한 대중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제외한 골프가 대중화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골프는 국민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하는 스포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체득케 하는 예절의 스포츠, 그 속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는 인간수양의 스포츠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 선진국에서 골프로 인한 폐해가 있다면 골프가 너무 재미있는 나머지 지나치게 골프에 몰두한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스코어 100대를 치는 사람은 골프를, 90대를 치는 사람은 가정을, 80대를 치는 사람은 비즈니스를 소홀히 한다. 70대를 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소홀히 한다.” 
골프를 제대로 치지 못하는 사람과 지나치게 골프에 빠진 사람을 빈정대는 투의 이 격언 속엔 골프가 갖고 있는 강한 중독성과 함께 회사 일이나 가정,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희생할 정도로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쏟지 않고는 골프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역설이 함께 담겨 있다. 

이런 골프가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다른 취급을 받는다. 우리나라 골프선수들이 해외에 진출해 혁혁한 전공을 세우면서 골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골프를 접해보지 않은 대부분의 국민들의 뇌리엔 골프란 환경파괴의 주범이며 일부 계층의 호화사치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다. 
골프가 수시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까닭도 골프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골프를 즐길 능력이 없는 사람이 골프를 즐기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데, 여기서 부적절한 관계가 시작되고 골프의 부정적 폐해가 싹튼다. 

그러나 골프는 바야흐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취미활동으로 대중화의 길로 들어섰고 남녀 골프선수들이 해외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골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많이 희석된 느낌이다. 
문제가 있다면 한번 골프를 배우고 나면 웬만하면 끊을 수 없는 지독한 중독성이 아닐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입력날짜 : 2018-12-17 07:2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