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리파잉 시리즈 1위를 차지한 이정은6. 사진제공=LPGA


[골프한국] 히말라야산맥의 남쪽 네팔의 한 산동네에는 매년 4월이 되면 수천 마리의 두루미가 몰려들어 한 달 정도 머문다고 한다. 겨울추위를 피해 시베리아 들판을 떠나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인도까지 내려갔던 두루미가 봄이 되어 다시 시베리아 들판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여드는 것이다. 

두루미들은 여기서 수백㎞ 떨어진 시베리아 들판으로 자신들을 실어 날라줄 기류를 기다린다. 기류를 기다리며 새끼들은 비상훈련을 하고 어미들은 히말라야산맥의 언저리를 비행하며 적당한 기류를 찾는다. 

자신들을 싣고 험준한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시베리아 들판에 이를 기류가 나타나면 두루미 떼는 일제히 날아올라 노련한 어미의 지휘 아래 솟구치는 바람을 타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산맥을 넘는다. 

어미가 기류를 잘못 선택하거나 새끼들이 날 준비가 돼있지 않다면 두루미들은 험준한 산맥을 채 넘기도 전에 눈보라에 묻혀 죽고 말 것이다.   
두루미들이 고향인 시베리아들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어미가 알맞은 기류를 가려낼 지혜를 갖고 있고 새끼들은 바람을 탈 수 있도록 충분한 비상훈련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이정은6(22)가 KLPGA투어 대회를 불참하면서까지 LPGA투어 퀄리파잉 시리즈(Q시리즈)에 도전, 수석 통과의 영예를 안았다. 

여러 차례 “아직 LPGA투어 진출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밝혔던 그가 이번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고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며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LPGA투어 우승이나 진배없는 Q시리즈 수석 통과라는 큰 수확을 거두었다.

그는 4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부근 파인허스트GC No.7 코스에서 열린 Q시리즈 최종 8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쳐 최종합계 18언더파 558타로 아마추어 제니퍼 쿱초(미국)를 1차로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지난 달 25일부터 4라운드씩 2주간 총 8라운드로 벌어진 Q시리즈에는 LPGA투어 상금 랭킹 101~150위, 2부 시메트라투어 상금 랭킹 11~20위, 세계랭킹 75위 이내 선수 등이 출전할 수 있는데 이번 대회에는 102명이 출전했다. 상위 45명에게는 다음 시즌 LPGA 투어 시드를 주어진다. 

세계랭킹 19위 자격으로 출전한 이정은6는 출발부터 순조로웠다. 1라운드를 2언더파 공동2위로 마친 그는 2라운드 4언더파로 4위, 3라운드 6언더파 4위 등 꾸준히 선두권에 포진했다. 4라운드에서 타수를 줄이지 못한 그는 선두인 클라라 스필코바(체코)에 6타 뒤진 공동7위로 잠시 주춤하는 듯 했으나 5라운드부터 다시 신발 끈을 졸라맸다. 
5라운드에서 한 타를 줄여 7언더파 6위로 한 계단 올라섰으나 여전히 선두 스필코바엔 6타 뒤져 있었다.
6라운드에서 4타를 줄인 11언더파로 공동1위 클라라 스필코바와 사라 슈멜젤(미국)에 3타 차이로 추격했다. 
7라운드 들어 5타(합계 16언더파)를 줄이며 선두 사라 슈멜젤과의 간격을 1타로 좁힌 그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2언더파를 보태 8라운드 합계 18언더파 558타로 2위 제니퍼 쿱초를 1타 차이로 제치고 1위를 꿰찼다. 

자신의 기량을 객관적으로 테스트해보고 과연 LPGA투어에서 통할 수 있는가를 가늠해보기 위한 성격이 강했던 이번 Q시리즈 도전에서 이정은6는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특히 2주간 8라운드 144홀을 도는 마라톤 레이스에서 끈질긴 추격 끝에 1위를 차지한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기량과 체력, 정신력은 그가 더 이상 LPGA투어 행을 미룰 이유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는 수석 통과 이후에도 미국 진출에 대해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미국 진출을 확정하고 Q 시리즈에 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서 가족과 이야기를 한 뒤 결정하겠다”며 LPGA투어 진출을 유보했다. 

물론 이정은6에게 LPGA투어 진출 결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어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미국에 생활근거지를 마련할 준비도 안 되었다. 그의 투어 생활을 뒷받침해줄 지원팀도 꾸리지 못했다. 기대와 함께 걱정이 앞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조건을 갖춘 완전한 기회란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 정도 마음이 LPGA투어로 쏠리고 있고 기량도 증명되었으니 기회는 눈앞에 닥친 셈이다. 
모든 것이 갖춰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도전보다는 현실 안주에 무게가 실려 있기 마련이다. 변화와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이런 심리는 계속 더 좋은 조건과 상황이 갖춰지기를 바란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전은 뒷전으로 밀린다. 
  
히말라야산맥 남쪽 언저리에 모여든 두루미들이 모두 시베리아 대초원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시베리아 대평원까지 자신들을 실어 날라줄 기류를 알아내는 지혜와 기류를 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두루미들만이 시베리아 대초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보다 좋은 기류를 기다리다 시기를 놓치면 산동네에 갇혀 시베리아 대초원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 

이정은6는 지금 시베리아 대초원을 꿈꾸며 히말라야산맥 언저리에서 기류를 기다리는 두루미와 비슷하다. 
그에게 시베리아 대초원(LPGA투어)으로 실어 날라줄 기류가 찾아왔고 그는 기류를 탈 능력도 갖추었다.

완전한 기회란 없다. 올라타기만 하면 실어 날라다 주는 바람은 없다. 이정은6에게 필요한 것은 남극 벼랑에서 험한 바다로 뛰어드는 펭귄 같은 도전정신이다. 
LPGA투어가 그가 꿈꾸는 세계라면 머뭇거리지 말고 뛰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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