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투어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조지아 홀과 우승을 다툰 끝에 준우승한 포나농 파틀럼. 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6일(한국시간) 영국 랭커셔주 리덤 세인트 앤즈의 로열 리덤 & 세인트 앤즈 골프링크스에서 막 내린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은 두 명의 스타를 탄생시켰다.

한 명은 우승한 잉글랜드의 신인 조지아 홀(23)이고 다른 한 명은 구도자를 떠올리는 경기를 펼친 태국의 포나농 파틀럼(28)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신인 조지아 홀은 LPGA투어 첫 승을 메이저대회로 장식하며 2016년 찰리 헐이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끊긴 잉글랜드 출신 LPGA투어 우승자 계보를 잇고 영국선수로 네 번째 메이저 우승자로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렸다.

객관적으로 볼 때 조지아 홀로선 브리티시 여자오픈은 욕심을 부릴 대회가 아니다. 그동안 브리티시 여자오픈에는 6번째 출전했지만 지난해 킹스 반스에서 열린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김인경(30)과 챔피언조에서 플레이하며 공동 3위를 기록한 것 외에는 뚜렷한 족적이 없는데다 이번 대회 참가자 면면이 그와 비교되지 않는 헤비급들이기 때문이다. 컷 오프를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의미 있는 대회였다.

무엇보다 LPGA투어에서 거대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쟁쟁한 한국 여자선수들과 최근 몇 년 사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태국 선수들이 거대한 산맥으로 버티고 서 있었다. 여기에 세계 각국의 골프 여걸들이 총출동했으니 그로선 이들과 경기 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좋은 경험일 터였다.

신인의 티가 완연한 조지아 홀의 우승은 홈 어드밴티지를 살리며 겸허하게 경기를 이끌어간 것이 주효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LPGA투어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선수들의 자멸의 덕을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에서부터 조지아 홀은 다른 선수와 같을 수 없었을 것이다. TV화면이나 풍문으로만 보던 쟁쟁한 선수들 틈에 끼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심사숙고 했을 것이다.

홈 어드밴티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해답이었을 것이다. 경험도 적고, 객관적 기량에서도 밀리고, 비거리도 길지 않으니 링크스 코스에 익숙한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경기에 집중했던 것이다. 

그는 악명 높은 항아리벙커와 긴 러프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한 벙커와 러프를 피하는 경기를 했다. 어쩔 수 없이 벙커와 러프에 들어가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빠져나오는데 집중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사실 한국선수와 태국선수, 그리고 미국과 유럽, 기타 아시아선수들의 고전은 벙커와 러프에 대한 인식 결여 탓이 컸다. 벙커와 러프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절실한 모습이 안보였다. 벙커와 러프에 들어간 뒤에도 위험을 극소화하는 방법 모색에 소홀해 보였다.

선두권을 유지하던 유소연, 박성현, 호주동포 이민지 등이 우승권에서 멀어진 사단은 모두 벙커와 러프에서 일어났다.

1타차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한 포나농 파틀럼이 경기하는 모습은 역대 이 대회를 제패한 한국선수들을 보는 듯했다.

박세리(2001년) 장정(2005년) 신지애(2008, 2012년) 박인비(2015년) 김인경(2017년)이 우승하는 모습은 한국 골프팬은 물론 세계 골프팬들을 매료시켰다. 포나농 파틀럼이 그랬다. 그는 주타누간 자매를 제외하면 한국 골프팬에게 가장 낯익은 선수다. 볼빅 로고가 선명한 모자에 볼빅 볼을 사용하고 있고 꽃무늬 스커트나 바지, 검은 스타팅 차림이 친숙하다.

그는 세계랭킹 1위 아리야 주타누간과 한국선수들이 자멸하는 사이 흔들림 없는 자세로 자신만의 고고한 경기를 펼쳐나갔다. 그의 경기모습은 어렵지 않게 브리티시 여자오픈을 제패한 한국 여자선수들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링크스 코스를 헤쳐 나가는 그의 모습은 오체투지(五體投地)하며 티베트의 영산(靈山) 카일라스(Kailas)를 찾는 순례자를 방불케 했다. 호수처럼 잔잔했고 보살처럼 부드러웠다. 겸허하면서도 두려움이 없었다. 실패도 담담히 받아들일 줄 알았다.

한국의 여자선수들이 골프종주국 영국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면 주타누간 자매와 포나농 파틀럼은 영국 골프팬들에겐 “한국 외에 우리도 있다”고 조용히 외치는 것 같았다.

17번 홀(파4)에서 불의의 더블보기를 범하면서 끝까지 페이스를 잃지 않은 조지아 홀에게 선두를 내주고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누가봐도 그는 생애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그의 경기를 보면서 LPGA투어의 ‘泰風(태국의 바람)’을 실감했다. 자연스럽게 태풍(颱風)을 연상시킨다.

직전대회에서 우승한 아리야 주타누간(23)을 비롯 현재 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12명으로 미국 선수를 제외하면 한국선수(23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이번 대회 참가선수도 한국이 20명, 태국은 9명이다. 더욱이 15세의 아타야 티티쿨이 아마추어 자격으로 참가해 유일하게 컷 통과에 성공한 것을 보면 주타누간 자매에 의해 촉발된 태국의 골프열풍이 LPGA투어에 어떤 기상이변을 일으킬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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