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성 프로. 사진제공=대한골프협회


[골프한국] 아일랜드의 골퍼들은 교습서를 멀리 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중엽 헨리 B. 패니 라는 한 에든버러의 인쇄소 주인이 쓴 ‘The Golfer's Manual’이란 책에서 아일랜드 골퍼들이 교습서를 기피하는 까닭을 읽을 수 있다.

“샷이란 클럽을 올렸다 내리는 것일 뿐, 너무 세세히 신경을 쓰면 전체의 리듬이 파괴되어 진보가 저해된다.”라는 것이 샷에 대한 저자의 정의다.

크리스티 오코너라는 골퍼는 “골프는 볼의 중심을 맞히는 게임이다. 모습과 모양은 묻지 말라”고까지 말했다.

1862년 로버트 첸버스 라는 골퍼가 ‘두서없는 골프이야기(A Few Rambling Remarks on Golf)’라는 책을 썼는데 그는 서문에서 “레슨서는 바이블과 다르며 누구에 대해서도 복음을 전해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성격 체형 연령 운동신경 사고력 등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행위를 요구하는 것은 횡포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스페인북부 바스크지방 출신의 알루누 메시라는 무명선수가 1907년 디 오픈에 처녀 출전, 당시 골프의 세 거인인 해리 바든, 존 헨리 테일러, 제임스 브레이드를 꺾고 깜짝 우승을 했다. 그의 스윙은 정통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기괴했던 모양인데 자신의 스윙을 두고 논란이 일자 “골프의 스윙은 자유다. 골프는 과학적인 용구를 가지고 비과학적으로 하는 게임이다. 개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일갈했다.
 

KPGA의 최호성(44)이 ‘낚시꾼 스윙’으로 세계 골프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001년 KPGA 회원이 되어 2부터 투어 2승, 1부터 투어 3승으로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그가 골프와 관련된 SNS를 뜨겁게 달구는 것은 순전히 그의 개성 넘친 스윙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21~24일 충남 천안 우정힐스CC에서 열린 코오롱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3라운드까지 단독선두로 나서면서 그의 스윙이 미디어와 SNS를 타고 세계에 알려지며 희귀한 스윙의 대표골퍼로 일약 유명해졌다.

2013년 JGTO 퀄리파잉스쿨을 거쳐 2014년부터 일본에서 활약하면서 그의 스윙은 한 일본기자에 의해 '낚시꾼 스윙'으로 명명되었지만 유명세를 타지 못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으나 아시아의 비중 있는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그의 스윙이 재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피니시 동작에서 정지하지 않고 상체를 뒤틀고 오른발을 들어 올려 반 바퀴 이상 더 도는 그의 스윙은 교과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포항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수산고 재학 때 참치 손질을 하다 오른손 엄지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해 바다사나이의 꿈을 접은 그는 생존을 위해 전전하다 1998년 안양CC 직원으로 있으면서 처음 골프채와 인연을 맺었다. 만 24세 때다.

골프를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이후에도 정식 지도를 받은 적이 없이 독학의 길을 걸었으니 그의 스윙이 정통파와 거리가 먼 것은 당연했다. 그가 프로가 되겠다는 당돌한 뜻을 드러냈지만 이미 나이가 한참 찼기에 아무도 그의 말을 귀에 담지 않았다.

생존의 절박함에 그는 1년 만에 세미프로 자격증을 따고 2001년부터 2부 투어, 2004년부터 1부 투어에서 뛰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의 스윙이 교과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젊은 선수들과의 비거리 차이가 심해지자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묘안을 찾다 지금의 낚시꾼 스윙을 터득한 것이다. 덕분에 280야드에 머물던 드라이버 비거리가 300야드로 늘었다니 그만의 비법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독특한 스윙이나 인생 히스토리가 그를 갑작스럽게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프로든 아마추어를 불문하고 세계의 골프팬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것은 그가 매몰된 골프의 개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프로선수들의 스윙은 한결같이 교과서적이라 공장에서 찍어서 나온 공산품을 닮았다. 주말골퍼들도 이런 프로선수들의 스윙을 교본 삼아 ‘따라 하기’에 열중한다. 우수한 골프교습가들 역시 교과서를 가르치는 교사로 만족하고 있다. 창조적 스윙, 개성 넘치는 스윙은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인다.

최호성이 아무도 하지 않는 스윙을 하고 처음 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니 눈길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개성을 중시하는 초기 골프의 정신을 유일하게 행동으로 보여주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그렇게 따라 하기 힘든 교과서적 스윙이 아니어도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교과서적인 스윙 혐오파’가 대부분인 아마추어 골퍼들에겐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최호성의 등장은 골프 흥행에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세계랭킹 2위인 저스틴 토머스(미국)가 “연습장에서 따라 해보겠다”며 관심을 보이고 해외 청원전문 사이트에 그를 “위기에 처한 세계 골프를 구해낼 영웅”이라며 디 오픈에 그를 특별 초청해야 한다는 청원 글이 오를 정도다.

디 오픈 출전권 2장이 주어지는 한국오픈에서 공동5위에 머문 최호성은 특별 초청이 없는 한 디 오픈에 출전할 수 없지만 골프 개성의 부활을 갈구하는 골프팬들의 염원이 모아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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