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닐라 린드베리. 사진제공=LPGA
[골프한국]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린 퍼닐라 린드베리(32·스웨덴)는 LPGA투어의 야생화 같은 존재다.

그는 데뷔 8년차를 맞지만 골프팬들의 뇌리엔 이렇다 할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대부분의 골프팬들이 첫 라운드부터 선두에 나선 그에 대해 무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리더보드 상단에 이름을 올린 적이 거의 없고 선두경쟁을 벌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우승하기 전까지 그의 최고 성적은 지난해 시즌 마지막 대회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의 4위다. 메이저대회에선 2015년 US 여자오픈에서 공동 5위가 최고 성적이다. 리더보드를 끝까지 찬찬히 훑어보는 주의를 기울여야 그가 중하위권이긴 하지만 LPGA투어에서 퇴출되지 않고 활동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별로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지금까지 LPGA투어에서 버텨왔다는 사실은 그의 골프 생명력이 그만큼 질기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의 골프이력은 3살 때부터 시작되지만 골프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바이킹 후예답게 남자들과 어울려 알파인 스키 등 다양한 야외스포츠를 즐기며 청소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엔 자신만의 우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세계 여자골프를 호령하던 아니카 소렌스탐(47)을 자신의 미래 아바타로 숭배했다.

아니카 소렌스탐은 LPGA투어 통산 72승(메이저 10승)을 포함해 LET, JLPGA, ALPGA 등 프로로 데뷔해 모두 93회의 우승기록을 세운 ‘살아있는 골프 전설’이다.

‘소렌스탐 아바타’의 꿈을 좇아 미국으로 건너가 오클라호마 주립대에 진학, 본격적으로 골프 수련을 시작했다. 165cm의 단신임에도 근육질로 다져진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 세계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을 비롯해 미국 내 아마추어대회를 주름잡았고 스웨덴 국가 대표팀으로도 활약했다. 아마추어로서 LET에 참가해 톱10에 들기도 했다.

2009년 프로로 전향한 그는 2부 투어인 시메트라 투어를 경험한 뒤 LPGA 퀄리파잉 최종토너먼트를 19위로 통과, 2010년부터 LPGA투어에 참가했다. 데뷔 2년까지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내고 간신히 투어자격을 유지한 그는 2012년부터서야 적은 상금이나마 챙기는 투어선수가 되었다. 그래 봐야 상금순위 40~70위를 오르내리는 수준이었다.

기량을 짐작할 수 있는 통계도 시원치 않다. 드라이버 평균거리 253.34야드로 80위, 드라이브샷 정확도 66.57%로 117위, 파온 확률 70.22%로 62위, 라운드 평균 퍼팅 30.12%로 85위, 평균 스코어 72.20타로 72위로 모두 중하위권이다.

그럼에도 린드베리가 살벌한 LPGA투어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의 생존능력이 들풀처럼 질기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샷을 할 때 시간이 걸리는 루틴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납득이 간다.
특히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LPGA 최강자들 틈에서 치이면서도 기어코 박인비, 제니퍼 송 등과 함께 플레이오프에 동참하는 과정, 이틀에 걸친 8차례의 플레이오프에서 결국 돌부처 박인비로부터 축하의 포옹을 받는 대단원은 ‘LPGA의 야생화’ 퍼닐라 린드베리를 위해 준비해둔 최상의 시나리오로 보였다.

박인비나 박성현, 재미동포 제니퍼 송이 우승을 못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퍼닐라 린드베리의 우승은 그것대로 감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의 가슴에 품어온 ‘소렌스탐 아바타’에 비하면 이제 겨우 한 송이 야생화를 피운 것에 불과하지만 그에겐 소렌스탐의 93승을 대신할 소중한 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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