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투어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준우승 박인비와 차이점

ANA 인스퍼레이션 4라운드에서 박성현. 사진제공=LPGA


[골프한국] 박인비(29)와 박성현(24)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나이와 체격조건은 물론 LPGA투어 경력(11년과 2년)이 다르고 통산 우승 횟수도 19승(메이저 7승)과 2승(메이저 1승)으로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박성현은 데뷔해인 2017년 올해의 선수, 상금왕, 신인상을 차지하면서 신인으로서 39년 만에 3관왕에 등극하는 등 화려한 시즌을 보냈다. 2년차 징크스를 보이고 있지만 세계랭킹 상위에 올라 언제라도 우승 가능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그는 LPGA투어 선수들이 부러워할 호쾌한 스윙을 비장의 무기로 갖고 있다.

박성현에 비해 신체적 조건이나 스윙 메카니즘에서 다소 불리한 박인비의 경우 탁월한 마인드 컨트롤 능력과 노련함으로 두 차례 상금왕(2012년, 2013년)에 올랐고 18홀 평균 최저타수상인 베어트로피(2012년, 2015년)도 두 번이나 받았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같은 해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LPGA의 살아있는 전설의 반열에 올라선 베테랑이다.

나이와 골프이력만 보면 박인비가 중천을 지난 태양이라면 박성현은 갓 떠오른 태양이다. 이 같은 조건을 종합해보면 박성현은 박인비가 이룬 업적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고 박인비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의 미션 힐스CC에서 열린 2018 시즌 LPGA투어 첫 메이저 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보인 두 선수의 대비되는 차이점을 보며 앞으로 박성현이 어떻게 LPGA투어에 적응해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봤다.

열성적인 박성현의 팬으로부터 뭇매 맞을 각오로 박성현이 LPGA투어에 큰 족적을 남기는 대선수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객관적으로 봐서 박성현은 매력 덩어리다. 172cm의 늘씬함 몸매에 미소년을 떠올리는 얼굴, 맑은 피부, 프로선수들도 흉내 내기 어려운 다이내믹한 스윙은 골프계의 아이돌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데뷔 1년차를 성공적으로 보내고 2년차에 접어들어 뭔가 이뤄질 것 같은 분위기가 솔솔 살아나고 있지만 그가 가진 특장들에 비하면 LPGA투어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의 비중은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멋진 스윙을 날리는 한국 선수, 바지를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선수, 인터뷰를 하려면 통역이 필요한 선수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셸 위나 리디아 고, 렉시 톰슨, 모건 프레슬, 코다 자매처럼 팬 몰이를 할 수 있는 선수임에도 그만의 사소한 습관적 행동이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2라운드에서 8언더파를 몰아치며 선두에 오른 그가 3라운드에서 뒤로 쳐졌다가 4라운드에서 한때 단독선두로 오르고도 기회를 움켜쥐지 못하고 11언더파로 공동 9위에 머문 것과 박인비가 2라운드까지 상위권에 들지 못하다 3라운드부터 차근차근 타수를 줄이기 시작해 4라운드 들어 4타 차이 선두를 맹렬히 추격해 스웨덴의 퍼닐라 린드베리, 재미교포 제니퍼 송과 함께 연장 승부에 나간 것은 큰 차이다. 이틀에 걸쳐 벌어진 8홀 연장승부 끝에 퍼닐라 린드베리에게 우승컵을 넘겨줬지만 박인비의 선전은 눈부셨다.

무엇이 박인비 박성현 두 선수의 경기를 갈랐을까.

직전 대회인 기아클래식에서 우승한 지은희가 컷 탈락한 것처럼 골프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경기를 지배하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 요소들의 흐름이다. 바이오리듬과 멘탈 리듬이 얼마나 긍정적 흐름을 만들어내느냐 여부가 경기를 좌우한다. 쉽게 말해 컨디션이 어떠하냐가 중요하다.

문제는 바이오리듬, 멘탈 리듬을 4라운드 내내 최상의 상태로 이끌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흐름이란 출렁이는 것이다. 바이오리듬, 멘탈 리듬도 출렁이게 돼있다. 뛰어난 선수들은 사소한 습관, 루틴들로 출렁이는 리듬을 다스리며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북돋울 줄 안다.

ANA 인스퍼레이션 대회에서 박성현과 박인비의 차이를 딱 하나 꼽으라면 샷이 마음에 안 들 때 박성현은 고개를 숙이고 박인비는 그러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성현은 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개부터 숙인다. 심한 경우 아이언으로 땅을 찍기도 한다. 그리곤 땅을 보며 걷는다. 필경 미스 샷을 낸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책할 것이다.
도마뱀이 위기에 꼬리를 자르고 생명을 구하듯 미스 샷을 잊고 다음 샷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계제에 미스 샷의 멍에를 지고 가니 다음 경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자연히 경기리듬은 하강국면으로 접어든다.

반면 박인비는 미스 샷이 나와도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꼿꼿이 들고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그의 모습은 위엄마저 느끼게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부끄러움이나 머뭇거림도 없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샷을 만들어낸다.   
 
골프에서 미스 샷은 어느 순간에도 나오게 돼있다. 많은 사람들이 골프에 미치는 것도 사실 미스 샷 때문이다. 미스 샷을 줄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골프를 존재케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스 샷을 내고 죄를 지은 양 고개를 숙이는 것은 다음 경기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다. 오히려 아무 일 아닌 듯 당당하게 고개 쳐들고 씩씩한 걸음으로 나가야 한다. 흘러간 물은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새물을 맞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들이 박성현 선수의 눈을 볼 수 있도록 모자챙을 살짝 올리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모자를 푹 눌러쓴다는 것은 외부와의 교감을 거부하고 나를 드러내지 않겠다는 표시다. 현장검증에 응하는 사람이나 검찰 포토라인에 선 사람들이 한결같이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마스크로 입을 가리는 것도 이 같은 심리 때문이다.
모자챙을 올리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팬의 반응이 보이고 환호가 들린다. 자신에게 이로운 긍정의 기가 움직이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로소 내 마음도 열리고 귀도 열린다. 드디어 입도 열린다.
통로 옆에서 손을 부딪치겠다고 까치발을 한 꼬마가 눈에 들어오고 그 꼬마와 하이 파이브를 하는 박성현의 모습은 얼마나 멋진가. 
 
바지를 고집하는 것까지 탓하진 않는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굳어버린 습관이니 바꾸기 어렵다. 미셸 위나 모건 프레슬처럼 패션에 남다른 감각을 갖고 패션 자체를 즐기는 취향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편한 대로 하면 된다.
다만 ‘닥공(닥치고 공격)’스타일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박성현은 ‘닥공’을 자신의 독특한 개성으로 생각하고 그의 팬들이 좋아할지 몰라도 모든 ‘닥공’엔 치명적 함정이 있다.

동창 중에 이름을 대면 알만한 된 복싱선수가 있다. 유명인사가 된 그로부터 들은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도 ‘닥공’스타일에 가까운 편인데 제 입으로 “상대하기 편한 선수가 닥공 스타일”이라고 털어놨다. ‘닥공’스타일은 일정시간 잘 피하면 제풀에 지쳐 허점을 보여 상대하기가 수월하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골프에서 ‘닥공’은 어림없다. 코스에 숨은 장애물이나 함정을 찾아내고 이를 피해 공략하려면 ‘닥공’스타일은 부적절하다. 구경하는 사람은 재미있겠지만 ‘닥공’의 주인공은 실패에 따른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정글의 맹수들도 하찮은 먹잇감을 사냥할 때 조심조심 가까이 다가가 눈치 채기 전에 기습한다. 맹수들이 대놓고 먹이를 쫓는다면 십중팔구 사냥에 실패할 것이다. 
 
박성현처럼 잠재가치가 높은 선수라면 스스로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일에 신경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체를 뜯어고칠 필요는 없다. 개성을 죽이고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최소한의 교정이나 습관 변화만으로 외부와 즐겁게 교감하고 그래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대성의 길이 열린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박성현 스스로 자신의 잠재가치가 대단하고 LPGA 역사에 남다른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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