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문
[골프한국] 배상문(32)에게 지난 9~1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페블비치에서 열린 PGA투어 페블비치 프로암 대회는 여러 모로 의미심장한 대회였다.

우선 지난해 9월 군 복무를 마치고 필드로 복귀한 뒤 아홉 경기 만에 컷 통과에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골프 귀환’의 청신호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한국투어, 일본투어, 아시아투어 등에서 13승, PGA투어에서 2승을 올린 배상문은 군 입대 전까지만 해도 한국골프의 개척자 최경주의 뒤를 이를 선수로 주목 받았으나 군 복무로 2년간의 공백 기간을 보낸 뒤 필드로 돌아온 그는 팬들의 기대에 못 미쳤던 게 사실이다.  

그는 복귀 후 PGA투어 대회에 8차례 출전했으나 컷이 없는 CJ컵을 제외한 나머지 7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다. PGA투어 선수에게 우승 없는 2년이란 어둠의 터널이나 다름없다. 2012년 PGA투어에 조인한 배상문은 이듬해인 2013년 HP 바이런넬슨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맛 본 뒤 한해를 건너 2015년 프라이스닷컴 오픈에서 우승하며 신인으로서 순조로운 항해를 했다.

그러나 군 복무로 그의 골프리듬은 깨어졌다. 일과 후 시간에 체력단련을 하고 휴일에 연습했다고 하지만 매일 골프채를 잡고 사는 생활과 총을 잡고 사는 생활은 같을 수가 없다. 그는 제대할 때 필드로의 복귀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지만 열망과 현실의 괴리는 냉엄했다. 그러나 복귀 6개월이 채 안 되어 페블비치 프로암대회에서 공동 15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가 매우 빠르게 전성기 수준에 다가가고 있다는 뜻이다.

우승 없는 긴 침체기간을 보낸 선수나 아예 필드를 벗어난 선수에게 치명적인 증세는 조급증이다. 지난 기간의 부진 또는 공백 기간을 우승으로 단번에 만회하겠다는 조바심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찾아온 기회마저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상문에게 가장 우려되었던 것이 바로 우승에 대한 조급증에 휘둘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드라이버 비거리나 아이언 샷의 감각은 거의 정상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나 그린 주변에서의 어프로치나 퍼팅에서 전성기 때의 정밀함에 도달하지는 못한 듯한 그로서는 페블비치 프로암대회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귀한 경험을 하는 행운을 얻었다.

5년7개월 만에 PGA투어 두 번째 우승컵을 거머쥔 테드 포터 주니어(35·미국)는 배상문에게 용기와 희망이라는 귀한 선물을 한 셈이다. PGA투어 선수로서 테드 포터가 경험한 좌절과 절망의 깊이는 배상문에 비길 바가 아니다.

테드 포터는 아버지의 권유로 두 살 때부터 골프채를 잡았다지만 체계적인 교습을 받아본 적이 없다. 고향인 플로리다 주 오칼라의 골프장에서 카트 관리 일을 하는 아버지의 지도를 받았으나 한계가 있어 나중에는 독학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골퍼로 나섰으나 지역의 작은 투어가 주무대였다. 물론 아버지가 하던 골프장 카트 관리 일도 했다.
2012년 소니오픈으로 PGA투어에 데뷔한 그는 같은 해 7월 더 그린브라이어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했으나 이후 다시 무명의 시절로 돌아갔다. 중하위권을 맴돌다 시드권을 잃고 2014년부터 2부 투어에서 절치부심, 2승을 올려 다시 PGA투어로 돌아왔다.
우승이 없는 기간으로 봐도 배상문의 두 배가 넘는다. 2014년 7월에 입은 발목 부상으로 2016년 4월까지 필드에 나서지 못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이런 그가 페블비치 프로암대회에서 전·현직 세계랭킹 1위 제이슨 데이(호주), 더스틴 존슨(미국), 늘 우승을 노리는 백전노장 필 미켈슨 등의 추격을 뿌리치고 우승컵을 안았다는 것은 배상문에겐 더 이상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랭킹 246위의 무명이라 팬들의 관심을 끌지도 못했다. 비거리도 긴 편이 아니고 샷 역시 화려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에 즐비한 유명선수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오로지 묵묵히 자신의 경기를 펼쳤다. 세계랭킹 상위권의 선수들이 순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경쟁할 때 그는 6년이 다 되어가는 긴 터널을 벗어나는 데만 집중했다. 그 결과가 그에게 우승컵을 안겼다.

이런 테드 포터를 지켜보며 배상문이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질 지는 전적으로 그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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