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여보, 이제야 골프가 뭔지 알 것 같애!”
20여 년 전 한창 골프에 재미를 붙일 때 후배가 전해준 일화의 핵심 키워드가 평생 나의 골프 키워드가 될 줄은 몰랐다.
골프를 지독히 좋아하는 후배는 한 겨울 라운드 중 그늘집에서 정종 대포를 나누며 친구의 장인 얘기라며 일화를 털어놨었다.

군 장성 출신인 친구의 장인은 은퇴 후 매주 서너 차례 라운드를 즐겼는데 라운드를 마치고 귀가할 때마다 골프가방을 내려놓으며 “여보 이제 골프가 뭔지 좀 알 것 같애”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친구의 장모는 30년 이상 골프를 치고도 아직 모르는 게 있어요?”하고 되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표현의 차이만 다를 뿐 비슷한 말을 한다고 했다.

“이제껏 골프를 헛쳤어!”
“골프가 그렇게 간단치 않아!”
“이제 겨우 좀 알 것 같애!”
“매번 깨달음이 다르다니까!”
“골프는 소림사 관문을 통과하는 것과 비슷해. 한 관문을 통과해 이제 됐다 하고 생각하면 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어. 문제는 이런 관문이 계속 나타난다는 거야!”
“이래서 골프를 불가사의한 운동이라고 하는가봐. 깨달았다고 믿었는데 새까맣게 잊어버리거든.”
“하기야 내가 골프에 도가 터졌다면 이렇게 골프를 계속하고 있겠어? 내 맘대로 안 되니까 여태 골프에 매달리지.”

친구 장인의 일화는 골프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모든 골퍼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나도 그때는 남의 얘기처럼 들었으나 갈수록 친구 장인의 일화는 바로 나의 일이 되었다.
이 얘기를 들은 지 20여년이 지나 다시 되새기는 것은 그야말로 요즘 새로운 단계를 맞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안정된 싱글 핸디캐퍼로 비거리도 나이에 비해 짧은 편은 아니지만 드라이브 샷엔 불만이 없지 않았다. 간혹 미스 샷도 나오고 무엇보다 흡족한 스윙이 되지 않아 피니쉬가 돼지꼬리처럼 말리는 게 불만이었다. 절친 골프동무였던 고 고우영화백의 완성된 스윙을 꿈꾸었으나 터득하는 데는 실패했었다.

그런데 최근 ‘No Ball Method' 방법을 제대로 터득하고 나서 스윙이 달라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미국의 레슨 프로들이 초보자들에게 즐겨 권하는 ‘No Ball Method'는 특별한 것은 아니다. 앞에 볼이 없다고 생각하고 백 스윙에서 팔로우 스윙까지 한꺼번에 걸림없이 스윙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빈 스윙하듯 볼을 앞에 두고도 볼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윙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볼이 없을 땐 물 흐르듯 부드럽고도 완전한 스윙을 하면서도 막상 볼이 놓이면 어딘가 근육이 경직되고 때려내야겠다는 마음으로 몸이 꿈틀대고 완전한 백스윙과 팔로우 스윙이 이뤄지지 않는다. 중심축도 흔들린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그래서 전문가들로부터 완전한 팔로우 스윙을 만들라는 충고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의 운동 습관이나 신체조건이 완전한 스윙을 하는데 부적합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 골프에 엄청 학구적인 선배가 지나가며 한 마디 툭 던졌다.
“다른 것 다 좋은데 팔로우 스윙만 제대로 하면 거리가 20미터는 더 갈 것 같은데요.”
“저도 알고는 있는데 뜻대로 안 되는 걸 어떡하겠어요.”

이 일이 있은 뒤 한참 잊고 지내다 빈 스윙 하듯 드라이브 샷을 날려보자며 몇 번 시도를 해봤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안 되든 빈 스윙 같은 실제 스윙이 가능했다. 볼을 티 위에 올려놓고도 볼이 없다고 생각한 빈 스윙이 이뤄졌다. 그리고 볼은 연습장의 그물망을 강하게 때렸다. 빈 스윙을 실제 스윙으로 재현하는 일이 가능하다니!
‘이번 겨울에 정말 명품 드라이브 샷을 완성할 수 있겠구나!’
내 경우야말로 “이제야 골프가 뭔지 알 것 같애”라는 독백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초보는 초보대로, 중급은 중급대로, 고수는 고수대로 골프를 하는 한 깨달을 일은 항상 기다린다.
힘을 뺀다는 것, 볼을 때리는 게 아니라 스윙으로 날려 보낸다는 것, 비거리를 늘리려면 작은 근육이 아닌 큰 근육을 써야 한다는 사실, 무슨 일이 있어도 축과 발사각은 지켜야 한다는 철칙 등 수많은 골프 지침에 대한 깨달음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깨달았다고 해서 그 깨달음이 온전히 보전되지 못한다는 것 또한 골프의 특징이다. 아침에 깨달았다가도 저녁이면 잊어버리는 게 골프다.

샷을 날릴 때마다 골프의 지침을 다 지키려면 끝이 없다. 다리가 수십 개나 되는 지네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 각 다리의 움직임을 염두에 둔다면 한 발짝도 옮겨 놓을 수 없듯 골프의 지침 역시 샷을 날릴 때마다 떠올린다면 제대로 된 샷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결코 되풀이할 수 없는 샷,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샷을 하는 마당에 그 많은 지침을 떠올려 샷을 날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숨 쉰다는 생각 없이 숨을 쉬듯, 걷는다는 생각 없이 걸음을 옮겨놓듯, 지네가 아무 생각 없이 물결치듯 이동하듯 골프의 샷이란 무심한 가운데 나와야 한다.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터득했어도 달아나지 않는 습관처럼 굳히려면 상상을 뛰어넘는 노력을 요한다. 그러고도 매번 겸허한 자세로 혹시 내가 간과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수많은 지침을 터득하되 그 지침을 잊고 아무런 구애받음이 없는 스윙을 날릴 수 있을 때 무애자재(無涯自在)의 골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꿈으로 끝나더라도 꿈 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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