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사진제공=LPGA
[골프한국] 지난 17~2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즈 티뷰론GC에서 열린 LPGA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은 한마디로 ‘파이 쟁탈전’이었다.

이 대회 직전까지 이미 박성현(24)으로 확정된 신인상을 빼곤 각 부문의 수상자가 확정되지 않아 대회 결과에 따라 CME글로브의 1백만달러 보너스라는 먹음직한 토핑이 얹힌 파이를 독식하거나 몇 조각씩 나눠 갖는 상황이 예견되었다.

박성현이 우승한다면 신인상에 이어 올해의 선수상, 상금왕, CME글로브 포인트 1위의 보너스를 차지할 수 있었고 렉시 톰슨(22)과의 스코어 차이에 따라 최저타상(베어트로피) 수상 가능성도 있었다. 그야말로 박성현의 독식 잔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한편 렉시 톰슨이 우승한다면 신인상과 상금왕을 제외한 CME글로브 보너스를 포함한 나머지 상은 톰슨 차지가 된다. 박성현이 극도로 부진해 상금을 더 보태지 못한다면 상금왕까지 넘볼 수 있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2라운드를 마친 뒤엔 박성현의 독식을 위한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듯 했다. 그러나 3 라운드로 접어들어 다른 선수들이 타수를 크게 줄여나가는 상황에서 박성현은 오히려 타수를 잃는 부진에 빠지면서 시즌 마지막 대회는 렉시 톰슨을 위한 시즌 마지막 파티가 되는 듯했다. 렉시 톰슨을 위한 시나리오는 태극낭자들에게 LPGA투어 주도권을 빼앗긴 미국의 자존심도 살릴 수 있는 수 있는 것이었기에 미국의 골프팬들은 열광했고 미디어들도 렉시 톰슨의 부활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쳤다.

마지막 라운드 17홀까지만 해도 렉시 톰슨을 위한 파티가 차려지는 듯했다. 워낙 먹음직스런 파이를 놓고 벌이는 마지막 경쟁인 탓인지 마지막 라운드에서 우승 경쟁은 전에 없이 치열했다. 올해 열린 대회 중 가장 핫한 선두경쟁이었다. 공동선두와 한 타 차이 그룹이 10여명에 이를 정도로 난전이 펼쳐졌다. 3라운드에서 부진했던 박성현도 기력을 되찾아 한때 단독선두에 올랐으나 1년차의 긴장감 탓인지 버티지 못하고 선두대열에서 밀려났다.

이변은 18번 홀에서 일어났다. 한 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리던 렉시 톰슨이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50cm 파 퍼트를 놓치며 합계 14언더파로 미국의 제시카 코르다와 동타를 이루었다. 더 이상의 추격자가 없다면 미국 선수끼리 편안하게 우승자를 가리는 플레이오프를 치르면 되는 상황이었다.

공교롭게도 렉시 톰슨이 18홀에서 보기를 기록하는 순간 바로 뒷 조의 아리아 주타누간(21)은 17번홀(파5)에서 버디를 챙기며 공동선두에 진입, 변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리아 주타누간이 가세한 연장전이라면 미국의 우승, 특히 렉시 톰슨의 우승을 장담할 수 없었다. 

아리아 주타누간은 여세를 몰아 파4 18번 홀에서도 깨끗하게 버디를 낚으면서 합계 15 언더파로 극적 우승, 모두가 욕심내는 큰 파이를 어느 정도 골고루 분배하는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아리아 주타누간의 활약 덕에 LPGA투어 마지막 파티의 파이를 누군가 독식하는 사태는 피했다. 독식이란 누군가에겐 축복이지만 더 많은 누군가에겐 실망과 아픔을 주기 마련이기에 어찌 보면 평화로운 결말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리품 품목을 놓고 보면 비교적 골고루 나눠가진 셈이다.
우선 아리야 주타누간은 우승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우승상금을 챙겼고 신인상을 제외한 전관왕을 노린 렉시 톰슨은 CME 글로브 포인트 1위로 100만 달러의 보너스와 함께 18홀 평균 최저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베어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마음 한 구석에 전관왕을 꿈꾸었을 박성현도 비록 전관왕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신인상에 상금왕(누계 233만 5,883달러, 한화 약 25억 6,700만원), 가장 영예로운 올해의 선수상을 보탰다. 올해의 선수상은 유소연의 단독 수상이 유력시 되었으나 이번 대회에서 유소연이 박성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성적을 내면서 점수가 동점이 되면서 공동수상을 하게 됐다.
LPGA투어를 총정리하는 대회에서 박성현이 가장 큰 파이조각을 챙긴 셈이다.

박성현이 신인으로서 LPGA투어에서 이룬 성과는 LPGA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신인왕에 이어 올해의 선수상, 상금왕 등 3관왕에 오른 것은 1978년 낸시 로페즈 이후 39년 만의 일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낸시 로페즈의 위업을 뛰어넘는 업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당시 LPGA무대는 미국선수가 대부분이었고 가끔 영국이나 호주 선수가 구색을 맞추는 정도로 미국 중심의 스포츠 무대였다.

그러나 지금의 LPGA투어는 미국 외에 영국 캐나다 멕시코 독일 스웨덴 스페인 덴마크 이태리 등 북미와 유럽 각국의 선수들과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태국, 이스라엘, 남아공, 호주, 뉴질랜드 등 그야말로 세계 각지의 강자들이 모인 지구촌의 경연장이다.
낸시 로페즈가 활동하던 시기가 그들만의 안방 리그였다면 지금은 진정한 지구촌 리그인 셈이니 박성현의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할 일이 아니다.
2015년 김세영, 2016년 전인지에 이어 3년 연속 한국선수가 신인왕을 차지한 것도 대단한 전통이다.

필자의 눈엔 박성현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보인다.
그의 스윙은 1950년대 세계 골프계를 주름잡은 '근대 스윙의 창시자' 벤 호건에 비유될 정도로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데다 ‘남달라’와 ‘닥공(닥치고 공격)’의 경기 스타일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어 앞으로 많은 경험이 쌓이면서 노련미와 여유를 더하면 눈부신 보석으로 빛을 발할 때가 올 것으로 기대된다.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로레나 오초아 같은 골프여제(女帝)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선수 후보군의 맨 앞자리에 박성현의 이름을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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