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이 LPGA 투어 캐나다 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사진제공=USGA
[골프한국] 골프는 철저하게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운동이다.

골프만큼 곳곳에 분노의 도화선과 지뢰가 깔려 있는 스포츠도 찾기 힘들 것이다. 주말골퍼라면 가깝게는 함께 라운드 하는 동반자나 캐디로부터 불쾌감이나 분노를 얻는가 하면 앞 조나 뒷 조의 플레이에 의해서도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골프장에서 겪는 분노 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자신으로부터 촉발된 분노다. 좋은 컨디션인데도 연속적으로 OB를 낸다거나, 맞는 소리는 좋았는데 공이 벙커나 러프로 날아가 버리거나, 눈감고 쳐도 될 아주 가까운 거리의 퍼팅을 놓쳤거나, 좋은 드라이브 샷을 날려놓고 버디를 노릴 기회에 뒷 땅을 치거나 할 때 스스로를 자책하고 심한 경우 학대까지 한다.

라운드를 한번 해보면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다고들 하다. 이는 간단없이 일어나는 분노의 순간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번의 라운드만으로도 인내의 깊이는 금방 드러나기 마련이다. 평소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라 해도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삭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잘 참아 나가다가도 끝내 바람이 잔뜩 들어간 풍선처럼 폭발하고 만다.
이때 필요한 것이 인내력이다.

프로 골프선수라면 라운드 중에 겪는 불쾌함이나 분노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인내력을 갖추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스 샷은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기 마련이고 동반자 중에 누구는 언제 어디서나 기막힌 샷을 날리는 일이 일어나기에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 했다가는 자신의 경기를 펼칠 수 없다. 이때 고도의 평정심에서 터득한 인내력이 위력을 발휘함으로써 골퍼를 나락에서 건져낸다.

프로골퍼라면 예외 없이 패배에 따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슬럼프를 경험한다. 아무리 탁월한 골프 재능을 타고 낫다고 해도 늘 승승장구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도 타이거 우즈의 추락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그는 골프무대에서 사실상 흔적을 감추었다. 이처럼 골프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언제나 일어난다.

프로선수들의 경우 진정한 인내의 깊이는 치명적 트라우마의 덫에 걸렸거나 장기간의 슬럼프에 빠졌을 때 드러난다.

우리는 김인경(29)에게서 심연(深淵) 같은 인내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12년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30cm밖에 남지 않은 퍼트를 놓쳐 연장전에서 유선영에게 패한 뒤 ‘비운의 골퍼’라는 꼬리표를 달고 5년여의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나락을 헤매던 김인경은 포기하지 않고 탈출구를 찾아내 올 시즌 숍라이트 LPGA 클래식, 마라톤 클래식에 이어 메이저대회인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KLPGA투어에서 무적의 1인자로 군림하다 ‘큰물’ LPGA투어에 뛰어든 박성현의 인내심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골프팬들은 물론 전문가들로부터 쉽게 LPGA투어 첫 승을 신고하고 승수를 얼마나 늘릴지 관심을 모았던 그는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며 한국으로의 복귀를 생각할 정도로 심리적 위기를 맞았었다.
그런 그가 가장 권위 있는 US여자오픈으로 첫 승 신고를 한데 이어 28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막을 내린 LPGA투어 캐나디언 퍼시픽 여자오픈에서 흠결 없는 플레이로 우승, 자타가 공인하는 LPGA투어의 강자로 부상하는데 성공했다.
언어 문제 등 낯선 환경에서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LPGA투어에서의 생활은 지옥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을 텐데 박성현은 인내에서도 기량 못지않은 내공을 갖췄음을 증명했다.

지난 20일 JLPGA투어 캣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9개월 만에 올 시즌 첫 승을 거둔 이보미(29)와 27일 막을 내린 니토리 레이디스 골프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신지애(29)의 인내심도 돋보인다.

2015년과 2016년 상금왕은 물론 대상과 최저타수상까지 휩쓸어 JLPGA 투어 최고 스타로 우뚝 섰던 이보미는 지난해 11월 이토엔 레이디스 우승 후 부진의 늪에 빠져 그를 아끼는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주위의 충고와 지적을 경청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해 18번째 대회 만에 정상에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부활의 신호탄을 쏜 뒤 강원도 정선 하이원CC에서 열린 하이원 리조트 여자오픈에 참가해 이정은, 장하나에 이어 공동3위에 머물렀지만 그는 이미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신지애 역시 시즌 초 부상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다 뒤늦게 발동을 거는 데 성공, 10개월 만에 15개 대회 출전 끝에 우승의 맛을 보았다.

하이원 리조트 여자오픈 연장전에서 이정은에게 패한 장하나(25)나 캐나디언 퍼시픽 여자오픈에서 마지막 라운드에 2타 차 선두로 나서 우승 갈증을 풀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나 무서운 상승기류를 탄 박성현에게 우승을 내준 전인지(23)도 자신의 인내력을 시험받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선수의 기량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라 승리의 추가는 다만 인내의 문제,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그냥 현재의 고통과 분노를 참아내는 것이 인내가 아니다. 나락과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통과 분노를 도약의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과정이 진정한 인내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내는 지혜의 동반자니라(Patience is the companion of wisdom)’라고 설파했다.
붓타는 '마구 달리는 마차를 몰듯 불같이 일어나는 노여움을 억제하는 사람을 나는 진짜 마부라고 부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고삐만 쥐고 있는데.'(법구경의 「분노의 장」)라고 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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