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 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 우승

고진영
[골프한국] 고진영(22) 하면 2015년 8월초를 잊을 수 없다.

무대는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이 열리는 스코틀랜드 턴베리의 트럼프 턴베리 리조트 에일사 코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수한 스코틀랜드의 유서 깊은 해안가 골프코스다.
각국의 내로라는 선수가 총출동한 이 대회에 세계랭킹 28위 자격으로 초청받은 고진영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본인도 예선만 통과하면 대성공이라는 생각으로 대회에 임했다.

그러나 첫 라운드부터 고진영은 리더보드 첫 페이지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악명 높은 강풍에 낯선 링크스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첫 라운드에서 4언더파로 공동 6위에 포진했다.
김효주가 7언더파로 단독 1위, 리디아 고가 6언더파로 2위, 유소연과 백규정이 5언더파로 공동 4위였고 이어 고진영이 4언더파로 리더보드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때부터 그는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 대회장을 자신의 무대로 이끌기 시작했다. 갓 20세의 어린 선수가 아닌 대회장을 지배하는 여전사로 변신했다. 4라운드 내내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고 그는 그것을 즐길 줄 알았다. 중계방송을 지켜보는 국내 골프팬들도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2라운드에서 공동 2위로 발 돋음 한 그는 3라운드에 접어들어 처녀출전한 선수로는 믿기지 않는 플레이로 공동선두로 나섰다.
1타 차 공동선두로 4라운드를 맞은 고진영의 전반은 파죽지세였다. 이글과 버디 2개를 보태 3타 차 단독선두로 올라섰다.
그러나 후반 들어 우승을 내다보면서 압박감이 더했는지 13번 홀에서 보기를 범하고 16번 홀에서 볼을 물에 빠뜨려 더블보기를 기록하면서 마지막 라운드에서 65타를 몰아친 박인비에게 선두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첫 출전에 메이저대회 우승이라는 꿈같은 일이 벌어질 뻔했지만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만도 그로선 큰 영광이었다.

고진영은 이 대회 참가 이후 골프를 보고 대하는 눈과 자세가 달라졌다.
자신에게 쏟아진 갤러리들의 환성과 박수, 밤 10시가 다 되어 끝낸 라운드 경험, 그리고 나서의 외국기자들과의 인터뷰, 나흘 내내 전신을 타고 흐르는 전율 어린 쾌감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특히 16번 홀에서 더블보기를 범한 뒤 지옥과 천국을 오간 경험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16번 홀을 마치고 굳은 얼굴로 땅만 보고 걷는 그에게 캐디가 말을 걸었다.
“괜찮냐?”
“안 괜찮다”
“넌 여기에 즐기러 오지 않았느냐. 난 너의 백만 불짜리 미소가 그립다. 그 미소를 마지막 홀까지 계속 보여줬으면 좋겠다”
캐디의 이 한 마디에 그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 난 아직 스무 살이야. 초심을 잃지 말고 남은 두 홀까지 멋지게 마무리하자’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덕분에 나머지 홀을 그 특유의 매력 넘치는 미소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무대가 LPGA투어라는 확신을 가졌고 LPGA투어에서의 개화를 위한 만반의 준비에 들어갔다. 16번 홀의 악몽을 트라우마로 남기지 않고 인생의 보약으로 삼는 지혜도 터득했다.
국내 투어를 돌면서 호주의 딘 허든을 캐디로 고용한 것도 LPGA투어에 진출해서도 외국어가 서툴러 뿌리를 못 내리는 경우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자신의 골프 생각을 맘대로 표현하고 자신만의 얘기를 할 수 있는 매력을 실감했기에 무엇보다 언어의 장벽은 제거하기로 맘먹었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3일 제주 오라CC에서 막을 내린 KLPGA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시즌 첫 번째이자 통산 8승을 올림으로써 2년 전 스코틀랜드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보인 그의 위용을 재현했다.
특히 2라운드에서 후반 8홀 연속 버디라는 최다 연속 버디 타이 기록을 세우며 노도처럼 경기를 펼치는 능력,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여세를 멈추지 않고 이끌어가는 능력은 이제 그가 보다 큰물로 갈 때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보다 높이, 보다 멀리 날기를 꿈꾸는 조나단 리빙스턴의 꿈이 고진영의 꿈으로 실현되는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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