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프로. 사진제공=USGA
[골프한국] 박성현(24)의 US여자 오픈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문득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시 ‘국화 옆에서’가 떠올랐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긴 세월 아픔을 겪은 뒤 개화한 한 송이 국화꽃은 영락없이 박성현이었다.

KLPGA투어에서 독보적인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가 LPGA투어로 활동무대를 옮기면서 많은 골프팬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했다. LPGA투어 정식멤버가 아니면서 몇 차례 초청받아 참가한 대회에서 쌓인 상금만으로 LPGA투어 자격이 주어졌으니 그의 기량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대부분의 골프팬들은 LPGA투어에서의 우승은 시간문제로 받아들이고 그의 우승 소식을 기다렸다. 그는 이번 대회 전까지 13개 대회에 출전해 컷 탈락 없이 준우승 1회, 3위 1회, 4위 2회 등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신인왕후보로 독주하고 있으나 우승은 거머쥐지 못했다. 언어문제로 고통스러워한다는 소식도 들리고 캐디를 교체하기도 했다.
늦어지는 우승 소식에 박성현 스스로 너무 조급한 나머지 리듬을 잃고 슬럼프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의 소리도 들렸다.

이런 고통과 번민의 시간이 박성현에겐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시간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17일(한국시각) 미국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막을 내린 US 여자오픈 대회에서 박성현은 가장 극적인 시나리오로 자신의 LPGA투어 첫 승을 장식했다. 루키 신분으로 첫 승리를 가장 권위 있는 메이저대회에서 거둠으로써 그가 여느 루키들과 차원이 다른 존재임을 입증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박성현이 가장 화려한 월계관을 쓰기 위해 일부러 때를 기다려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누가 이렇게 극적인 시나리오는 쓸 수 있을까.

첫 라운드를 끝낸 뒤 공동 58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박성현에겐 스포트라이트의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2라운드를 마치면서 이번 US여자오픈의 주인공 자리를 놓고 중국의 대표선수 펑산산(28), 이달 초 열린 초정탄산수 용평리조트 오픈 우승자인 아마추어 최혜진(17), KLPGA투어 상위 랭커 자격으로 출전한 이정은(21), 양희영 이미림 유소연 등 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톱클래스 한국선수들이 다투는 형국이었다.

3라운드에서 타수를 줄인 박성현은 비로소 리더보드에 이름을 보였고 마지막 라운드에선 펑산산, 최혜진과 함께 팽팽한 3파전을 전개하면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골프팬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US여자오픈에서 미국은 없었다. 미국선수들은 자취를 감추다시피 하며 군중역할에 머물렀고 펑산산과 스페인의 카를로타 시간다가 주연들을 위한 조연 역할을 한 정도였다.

올해 US여자오픈은 한 마디로 한국 여자골퍼들의 경연장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경연장에서 박성현은 선두 경쟁을 벌이던 펑산산과 최혜진을 차례로 제치고 스릴 넘치는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챔피언조인 펑산산과 최혜진은 박성현의 우승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한 조연 역할을 훌륭히 해낸 셈이다.

LPGA 신인상을 굳힌 박성현에겐 올해의 선수상도 남의 얘기가 아니다. 이제 가속도가 붙었으니 LPGA투어의 모든 경쟁에서 선두로 치고 나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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