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요즘처럼 주변에 은퇴자가 많은 시대에는 성공적으로 인생 2모작을 벌이고 때로는 한창때의 전성기보다 더 의미 있는 전성기를 열어가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특정 분야에서 일하며 터득하고 쌓아온 지식과 노하우를 그냥 썩히지 않고 재능기부의 형태로 사회에 환원하며 보람을 얻는 사람, 그동안 생업에 쫓겨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했던 세계 - 이를테면 야생화나 나무에 대한 공부, 가보지 못한 길이나 오지 탐험 등 -으로 인생후반을 살맛나게 사는 사람, 취미나 소질과는 상관없이 마음 끌리는 대로 그림 그리기, 붓글씨 쓰기, 악기 배우기 등 새로운 취미활동에 빠져 즐거운 인생 후반을 사는 사람 등 의외로 제2의 전성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스스로 성공적으로 전성기를 열어가는 재미도 크지만 주위에서 소리 소문 없이 전성기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사람의 경우는 더욱 놀라움을 안긴다.

최근 내 주변에서 충격에 가까운 놀라움을 안긴 사건이 일어났다.
수도권의 작은 위성도시의 한갓진 동네에 사는 나의 일과는 판에 박은 듯 비슷하다. 오전 중엔 동네 골프연습장에 나가 골프 연습 겸 체력단련을 하고 오후엔 칼럼이나 시, 소설 등 글씨기를 하거나 수묵화를 그린다. 날씨가 좋을 때면 자전거를 타고 개천 변 산책로를 서너 시간 달리기도 한다.
일과 중 가장 비중이 크고 생략할 수 없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골프연습이다. 구력 30여년에 골프관련 소설과 에세이집을 쓸 정도의 애호가인 탓도 있지만 매일 빠짐없이 운동을 하게 하는 스포츠는 골프만 한 게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학창시절엔 축구선수도 했고 골프와 만나기 전까지 배드민턴 테니스 조깅 자전거타기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했지만 운동의 일환이었지 매달리지 않고는 못 견디는 즐거움을 얻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골프를 알고부터 상황이 변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없는 짬을 내 연습장을 찾았고, 그마저도 할 수 없을 땐 집안이나 아파트 공터에서 빈 채를 휘둘렀다. 골프 라운드 요청이 들어오면 만사를 제쳐두고 최우선으로 접수했다.
골프 절친이었던 고 고우영 화백이 골프의 세계에 탐닉하는 과정을 내가 그대로 답습한 셈이었다. 골프를 접하기 전 고 화백은 낚시, 사냥, 스쿠버다이빙 등 상당히 사치스런 스포츠에 전문가 수준으로 심취해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골프를 접하곤 그동안 미쳐왔던 취미활동을 모두 접고 골프에만 매달렸다고 실토했던 기억이 난다.

골프의 중독성이 지독하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러나 나는 골프를 하면서 마약이나 도박 같은 것에서 일어나는 중독성이 아닌, 골프라는 세계가 안고 있는 깊은 정신세계가 펼치는 심연을 접하곤 도저히 골프와 멀어질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광적으로 매달리다 보니 언더 파(Under Par)나 에이지 슛(Age Shoot, 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적은 타수를 치는 것)을 기록하는 정도에 이르렀고 지금도 꾸준히 싱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골프는 무엇보다 건강 유지를 위해 억지로 운동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다른 운동은 건강 유지를 위해, 신체의 노쇠를 늦추기 위해 억지로라도 해야 하지만 골프를 배우고 나면 사정이 다르다.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가 바위를 밀어 올렸다가 굴러 떨어지면 다시 밀어 올리는 숙명적 노역을 되풀이하듯 골퍼는 내일이면 잊혀질 골프근육의 기억을 살리기 위해 매일 골프채를 잡지 않곤 못 배긴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 독서를 안 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지만 골프광들은 “하루 연습을 안 하면 온 몸에서 가시가 돋는다.”고 할 정도다.
덕분에 건강을 잘 지키며 젊은이들과 겨룰 수 있는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면 더 무엇을 바라랴’며 내심 자족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골프연습장의 한 지인이 은밀하게 다가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막걸리 한잔 하자고 말했다. 평소 술을 별로 즐기지 않는 분이 먼저 막걸리 한잔 하자는 데 나는 직감적으로 내게 특별히 상의할 일이 있는가보다 느꼈다.
등산로 입구 개울가 식당에서 재촉한 막걸리와 안주가 나오자 그는 입술을 축이기가 무섭게 입을 열었다.
“선배께 처음 털어놓는 얘기입니다. 사실 이번에 골프 티칭프로 자격을 땄습니다. 그동안 철저하게 비밀에 붙였는데 1년 만에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이 사실을 얼마나 털어놓고 싶었을까. 다소 상기된 표정의 그는 휴대폰에 들어있는 증빙자료들을 보이며 1년 사이에 벌어진 역사를 숨 막히듯 쏟아놓았다.
나는 “정말 축하합니다!” “대단하십니다!” “정말 보통 일이 아닙니다. 큰일을 저질렀네요!” 등의 짧은 추임새외엔 할 말이 없었다.
경탄과 감탄의 느낌과 함께 기분 좋은 충격이 내 몸을 감싸는 듯했다. 동시에 내가 이루지 않아도, 남이 이루어도 감동스런 일이 있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골프연습장 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1년 만에 미국골프교습가연맹(USGTF)이 주관하는 모든 시험과 연수과정을 통과하고 동남아시아에서 골프장 수석프로로 이름을 올리는 놀라운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물론 USGTF의 주관 하에 국내에서 진행된 과정이지만 63세의 그가 이런 꿈을 꾸고 실천에 옮겨 성취했다는 것은 내겐 기적으로 보였다.
18홀을 77타 이내로 쳐야 하는 경기능력테스트(PAT)를 통과하고 전문가들로부터 실기, 이론, 경기규칙, 이론을 배우고 소정의 시험에도 최고령으로 합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에 골프여행을 갔다가 그의 정체를 알아본 현지의 골프장 경영자가 바로 현지 수석티칭 프로로 모시는 기분 좋은 경험도 했단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회사의 CEO를 역임한 그는 178cm의 좋은 신체조건에 골프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 여러 차례 지역 시장배 대회에서 우승을 거둘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나와는 서로 기분 좋게 승패를 주고받는 호적수다. 골프 열정을 견준다면 서로 양보할 수 없을 정도다.

미국 PGA투어선수와 맞먹는 세계 최고 교습가자격인 PGA 클래스 A수준은 아니지만 60이 넘어 젊은이들도 합격하기 어려운 USTGF 전 과정을 통과했다는 것은 결코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PGA 클래스 A는 골프교습은 물론 골프장 운영과 경영, 설계, 마케팅 등의 능력을 갖춘 전문가 자격이라면 USTGF는 골프 교습에 집중한 자격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런 모험적 도전을 하게 된 까닭을 물었다.
“제가 정말 골프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혼자서 즐기는 것도 좋지만 골프를 수련하면서 쌓인 노하우를 나만 갖고 있을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돌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족들은 그 나이에 괜한 고생하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내 능력만 닿는다면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겁 없이 덤벼들었지요.”
잘 생긴 그의 얼굴은 정말 행복해보였다. 그와 마주칠 때마다 묵묵히 자신의 제2의 전성기를 열어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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